김애란 신작단편집 「바깥은 여름」
김애란을 알게 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이다. 독서 토론 대회가 열렸다. 주제 책은 김애란의 단펼소설집 「침이 고인다」였다. 토론의 주제를 보고, 뭐 이런 주제가 다 있나 싶었다. 시골에서 상경하여 어느 정도 성공한 학원강사 주인공이 시골에서 갓 상경한 후배에게 따라준 '와인'이 바로 토론의 주제였다. 하필이면 소주가 아닌 와인일까? 후에 후배도 학원에서 일을 하고, 와인을 시작하면서 주인공은 후배를 집에서 내보낸다. 주인공에게 와인은 후배에게 '내가 이 정도 성공했다. 난 너와 다른 클래스야'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과시의 용도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토론이 끝나고 2부 순서로 김애란이 자신이 글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강연을 했다. 강연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다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와인 한 잔에 이렇게 열띤 토론을 했는데, 사실 작가는 아무 생각 없이 쓴 거면 정말 웃기겠다.'
그녀의 강연이 끝나자마자, 손을 들고 질문했다. 정말로 우리가 토론한 것처럼 단어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면서 글을 쓰시냐고. 그녀의 대답은 '네'였다. 그녀의 소설 속의 주인공의 환경, 직업, 말투, 등장하는 모든 물건과 대사에는 메타포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열렬한 독자가 되었다. 그녀의 책을 읽을수록 어느 순간 나는 그녀에게 홀려버렸다.
김애란의 초기작은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의 삶을 대변해주고 위로했다. 소설을 집필할 당시 그녀의 나이가 그래 서였을지 모른다. 그래서 내 이야기다 싶어 하면서 그녀의 소설을 탐독했다. 그녀의 초반 작품은 유머가 있어서 피식 웃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그녀의 신작 「바깥은 여름」에서는 이전작보다는 조금 더 어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떠나간 사람과의 이별이나, 죽음, 다문화 등의 주제를 풀어낸다. 이런 점들이 책을 읽을 때 무겁고, 먹먹한 생각이 들게도 한다. 조금은 달라졌지만 나는 이미 김애란에게 홀렸다. 그녀의 메타포는 여전했고, 문장은 더욱 세련됐다. 책을 술술 읽어냈다. 장수가 넘어가는 것이 아까울 정도였다. 나는 며칠 굶은 사람이 양푼에 밥을 슥슥 비벼먹듯이 게걸스럽게 책을 읽었다. 그렇게 그녀의 책을 하루 만에 다 읽어버렸다. 손에서 책을 놓는 것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얼마 전 읽었던 에세이에서 작가는 김애란에 대한 이야기를 실었다. 김애란이 신작 소설을 내고, 그 소설을 읽은 후 에세이 작가는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고 고백한다. 그만큼 김애란은 독보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다. 문학은 짜임새가 있다. 단어 하나 물건 하나에도 배치한 의도가 있다. 그런 점에서 문학은 예술이다. 그 문학들 중에서도 김애란의 소설은 뛰어나다.
그녀의 책은 추리하는 느낌으로 읽게 된다. 왜 이러한 배경에, 이러한 등장인물을, 이러한 사건을 벌어지게 했을까? 를 고민하며 읽게 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나만의 답이 정해졌을 때 묘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문장은 내가 차마 말로 표현 못했던,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한다.
더 이상 고요할 리도, 거룩할 리도 없는, 유구한 축제 뒷날, 영원한 평일, 12월 26일이었다. -119p
뛰어난 하지만 나와 익숙하지 않은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그에 숨겨진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 지적 성장의 감정을 느낀다. 김애란의 소설은 내가 그동안 접하지 못하였던 새로움이다. 그 새로움이 매끄럽게 나에게 다가오지는 않지만, 이 덕분에 나는 성장하게 된다. 그녀의 소설을 읽고 나면 뛰어난 예술작품을 하나 감상하고 공부한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