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남동생

by 호곤 별다방

낳았느냐고

인생이 제공하는 모든 경험을 전부 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경험을 선택하고, 놓친 경험에는 크게 마음 쓰지 않고 넘길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인생이 놀이공원이라면 아이를 키운다는 건 거대한 롤러코스터와 같다. 어떤 사람들은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는다면 중요한 경험 하나를 놓친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놀이 기구를 다 타볼 필요는 없다.


"아이 없는 완전한 삶"이라는 '엘런 L. 워커'라는 미국사람이 쓴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나에게는 여동생 두 명 다음에 마지막으로 나온 남동생이 한 명 있다. 나는 자라면서 오빠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주위에 오빠라고 부르는 아이들처럼 나도 오빠가 있었으면 했다. 여동생들이 매일 부르는 '언니'라는 말이 지겨웠다. 오빠가 있다면 동생이 원하는 일은 뭐든 해줄 것만 같았다.


"언니, 이거 해줘"

"큰언니, 나도 해줘"


나를 부르는 언니라는 말 다음에는 항상 부탁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아홉 살 터울이던 남동생은 말을 배울 때쯤 여동생이 나를 부르듯이 언니라고 불렀다.


"넌, 남자니까 누나라고 해야지, 누나라고 해봐"

"누나? 아냐, 큰언니야"


남동생의 모델은 두 여동생이었기에 남동생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야 누나라는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어릴 적 가끔 엄마는 시장에 나를 데리고 가곤 했다. 아빠는 집에서 어린 동생들을 보고 나는 그나마 오래 걸을 수 있어 따라다녔던 모양이다. 그래봐야 초등학교 다닐 나이였다. 버스를 타고 시장에 따라가면 내가 갖고 싶은 장난감이 보였다.


"엄마 이거사 줘"

"안돼, 동생들이 갖고 싶어 하잖아. 그럼 4개를 사야 하는데 너무 비싸"


하루는 엄마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동생을 많이 낳았느냐고 말이다. 동생이 하나만 있었으면 장난감을 사줬을 텐데 아이가 넷이나 되니 못 사주는 거 아니냐고 투정을 부렸다. 그러면 엄마는 네가 아들로 태어나지 그랬냐고 했다.


우리 집의 수입원은 아빠가 일해서 벌어온 공무원 월급이 전부라 매달 정확히 들어오지만 액수는 적었다. 정해진 금액에서 매달 생활해야 하는 엄마는 아끼고 아껴 저축하는 생활이 일상이었다. 우리 집 화장실 휴지는 아빠가 가져온 손바닥만 한 크기의 지난달 잡지였다.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는 동안 이 종이를 구깃구깃해야 부드러워진다. 큰일이 끝날 무렵 열심히 구겨서 부드러워져야 엉덩이가 안 아팠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화장실에 새로운 물건이 보였다. 샴푸와 린스였다. 그 향이 너무나 좋아서 매일 머리를 감았더니 금방 동이 났다. 엄마는 비누로 감아도 된다고 아껴 쓰라고 했다.


다시 동생을 왜 이리 많이 나았냐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자라면서 남자가 없어 서러움을 많이 당했단다. 그래서 결혼하면 꼭 아들을 낳고 싶었단다. 너희에게는 엄마처럼 집안에 남자가 없어서 겪는 서러움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누가 아들을 찾아, 딸이 더 잘해"

"예전에는 달랐어"


엄마는 7살 때 외할머니가 떠나고 남겨진 이모(엄마의 언니) 그리고 친할머니와 큰엄마 사이에서 자랐다. 집안에 남자가 없이 여자넷이 자란 것이다. 배고픔을 모르고 시골에서 일꾼도 부리면서 살았고, 할머니가 명절 때면 때때옷을 사줘서 동네에서 같이 자란 엄마 친구는 이렇게 말했단다.


"너희 언니랑 너는 우리 동네 공주였어, 옷도 깨끗하게 입고 다녔잖아"

"그래, 나는 몰랐네"


엄마는 자라면서 가끔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와 연락을 했다고 한다. 외할머니가 가끔 찾아오시면 문 앞에 서있다가 만나기도 했단다. 작년까지도 명절이면 외할머니를 찾아 아빠와 함께 가서 새 옷도 사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성장기에 함께하지 못했던 외할머니는 엄마의 엄마가 아니었다. 애틋한 추억이 없는 엄마이다. 생물학적 엄마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았던 것일까.


엄마는 가끔 내 질문에 퉁명스럽게 답한다. 꼭 화난 사람처럼 말이다. 대꾸가 퉁명스러우면 듣는 사람도 다시 퉁명스러워지고 그러다가 언성이 높아져 말싸움이 나곤 했다.


나중에 엄마가 말했다. 좀 자라서 외할머니를 찾아가면 그렇게 퉁명스럽게 대했단다. 나중에 물어보니 정을 떼려고 그랬단다. 엄마가 나에게 퉁명스럽게 대했던 그 말은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에게 우리 엄마가 자연스럽게 배운 것이었다.


엄마의 가까운 피붙이가 대했듯 엄마와 가까운 피붙이인 나에게도 그렇게 대했던 것이다. 퉁명스러운 엄마를 가진 우리 엄마가 안쓰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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