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은주, 임형남 저 <집을 위한 인문학>, <골목 인문학>
p27
그들은 집의 이름을 '적당과 작당의 집'이라고 미리 정해서 왔다. '적당'하다는 것은 넘치지 않도록 중용을 지킨다는 의미일 것이고, '작당'은 가족들끼리 화목하게 즐거운 모의를 하겠노라는 선언으로 들렸다.
p33
전세를 구해서 가셨는데 왜 집을 안 사셨냐 했더니, 거기서 바닷가에서 산책도 하고 등산도 하고 재미있게 사시다가 계약기간이 끝나면 다시 남해로 내려가 통영쯤에 살아보고, 그 다음에는 또 다른 곳을 가실 거라고 한다. 말하자면 전국에서 좋아하는 도시를 소유에 구애받지 않고 살아보시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p36
어떤 공간이 절대적으로 좋은 게 아니고, 그 안에서 어떤 프로그램이 있었는지,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떤 느낌이 있었고, 어떤 생활을 했는지, 그곳에서 만들었던 추억과 분위기, 이런 것들이 집에 대한 생각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p58
우리의 문제는 도를 넘는 과잉학습에 있다고 생각한다. 창조적인 능력은 사고에 여백이 있을 때, 다시 말해 심심할 때 키워지고 강화된다고 믿고 있다.
p66
선향재는 '좋은 향기가 서린 집'이라는 뜻으로 여기에서 '책 향기'를 말한다.
p84
서백당은 평이함 속에 고귀함을 담고 있으나 절대 남에게 그 고귀함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p121
그는 건축은 감각을 통해 보이는 것, 듣는 것, 맡아지는 것, 맛보는 것이 통합적으로, 즉 공감각적으로 추구되어야 하며, 그 감각들을 해체해서 논리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건축이 만질 수 있는 세 가지가 있다. 빛과 소리와 풍경이 그것이다. 이 감각이야말로 건축의 진정한 재료라는 것이다.
p161
프라즈나가 의미하는 지혜란 현명하다는 의미가 더 확장되어, 모든 것을 막힘없이 두루두루 알면서도 경계가 없는 이를테면 가장 이상적인 지혜를 의미한다. 즉, '인간이 진실한 생명을 깨달았을 때 얻어지는 지혜'라고 하는데, 보통 말하는 판단능력인 분별지와 구분해 무분별지라고도 한다.
p167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깨달음'에 있다. (...)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절대적인 어떤 상이나 절대적인 어떤 위치는 없다. 모든 존재는 실체이며 그림자이고 영혼이며 육체이기도 하다. 집이라는 공간 역시 하나의 길이라고 하면, 그 길은 깨달음이나 지혜에 이르는 길일 수도 있고, 인간의 불완전성을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 걸어가는 길이기도 하다.
p175
반면 한국의 선은 어떤가. 무척 모호한 선이다. 버선코처럼 무언가 뾰족한 듯하면서도 뭉툭하고 우리 도자기의 선처럼 우아하지만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곡선이다. (...) 의도를 명확하게 알 수 없는 묘한 곡선이 보인다.
p187
오래된 집에는 아주 복잡하고 깊고 깊은 자아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보통 집을 짓는다는 것은 건축주와 건축가와 땅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 양보하며 서로 자기 주장을 하는 일이다.
p194
땅은 사람을 고른다. 맞는 사람을 고르고 자리 잡게 한다. 그렇게 선택된 사람이 그 땅으로 들어가서 진심으로 섬기면 그곳에서 별 문제 없이 잘 살게 되고, 사람들이 그곳을 명당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땅이나 나쁜 땅을 찾지 말고 나에게 맞는 땅을 찾으라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준다. 그곳이 바로 당신에게는 명당이라고...
p267
이미 80여 년 전의 건축가가 실현했듯이, 전통은 계승해야 하는 것이지 답습하는 것이 아니다.
p272
한옥의 마당에는 마사토라고 부르는 하얗고 알이 굵은 모래가 깔려 있다. 그리고 항상 정갈하게 빗자루로 쓸어놓아서 단정하고 하얀 마당에 햇빛이 비추면 그 햇빛이 마당에서 반사되어 집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 빛이 아래에서 위로 올려 비치고 천장까지 가는 것이다.
p21
건축물이나 도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재료는 시간이다. 추했던 건물이건 아름다웠던 건물이건 시간은 모든 것을 덮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이 아니고, 시간이라는 포장이 덮이며 아주 다양한 연상과 감흥을 불러오는 아름다움이다.
p76
이 동네는 온금동이라고 불리지만 원래 이름은 '다순구미'다. 순수한 우리말로 된 예쁜 지명이 꽤 있는데, 다순구미라는 지명도 예쁘기로는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이름이다. 다순구미는 '양지바른 곳'이라는 뜻이다. 다순은 '다습다', '다수운'에서 파생된 따뜻하다는 말이고, 구미는 바다나 강의 곶처럼 길게 휘어진 곳을 이르는 말이다.
p109
범려, 그는 대업을 이루고 권력의 정점에 오르는 순간, 친구에게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를 삶아 먹게 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몸을 숨긴다. (...) 사마천의 <사기>에 등장하는 그 어떤 호걸이나 천재도 월나라의 재상 범려처럼 현명하게 처신하고 행복하게 인생을 마감한 사람은 없었다.
p145
동네의 이름은 단순히 명칭일 뿐 아니라 상징이며 상상이며 무엇보다 어떤 장소의 실존적 증명이다. 이런 이름들을 도로명으로 획일화하는 일은 입체를 평평한 판 위에 올려놓고 평면적으로 펴고 두들겨서 그 성질을 없애는 것과 똑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로 위주로 구성된 서양의 도시 체계와 다른 우리나라의 도시 체계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p166
사람의 편의를 위한 것 같지만, 결국 넓어진 길은 자동차들이 점령하고 사람은 자동차와 담의 틈으로 조심조심 걸어다녀야 한다. 도로 폭이 넓어져도 자동차를 피해야 하니, 결국 사람이 영유하는 폭은 50센티미터도 안 된다.
p180
긴 취재 기사였는데 말미에 "문제는 접근성이 아니고 콘텐츠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냉정하게 말해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에는 독자적인 콘텐츠가 없다. 물론 그런 현상은 로데오거리뿐 아니라 대다수 우리나라 도시가 안고 있는 약점이기도 하다.
p184-185
슬로 시티 운동은 "자연 생태를 슬기롭게 보전하면서 느림의 미학을 기반으로 인류의 지속적인 발전과 진화를 추구해나가는 도시"의 가치를 찾는다는 뜻이다.
그렇게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곳이 삼지내마을이다. (...)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인상을 주는 곳은 3.6킬로미터나 이어지는 둥근 화강석을 진흙으로 쌓은 토담길이다.
인간이 살면서 누리는 큰 즐거움 중 하나는 좋은 길을 걷는 것일 것이다. 특히 포실한 흙길을 목적 없이 천천히 걸을 때 사람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땅과 직접 교감을 할 수 있다.
p222
세상이 너무 변하고 나 또한 그에 못지않게 변하지만 어딘가, 누군가는 변하지 않고 세상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
p227
동네에 흔히 있던 서점, 문방구, 구멍가게가 어느 순간 커다란 블랙홀처럼 반경 몇 킬로미터의 상권을 모두 말려버리는 대형 매장에 고사해버린 후 10여 년이 지나자 다시 사람들은 '동네 가게'를 아쉬워하고 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버리고 너무나 간단하게 그리워한다.
p310
도시에는 무수한 골목이 있다. 그리고 사람의 몸처럼 모세혈관 역할을 하는 골목이 잘 살아 있고 건강해야 도시 또한 생기 있게 살아나는 것이다. 큰길이 과시와 소비와 속도를 위한 것이라면, 골목은 그 도시의 맨얼굴이며 그 도시의 정체성이며 또한 삶의 여유를 주는 공간이다.
p313
우리나라 도시나 마을에는 직선이 드물다. 도시 계획이라든가 마을의 계획에 흔히 수반되는 필수적인 직선이나 위계가 뚜렷한 구성을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렵다. 그것은 우리나라만의 자연에 대한 독특한 시각이며, 자연의 길을 막고 방해하지 않으려 했던 아주 현명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p319
그 개울은 집 앞으로 흐르며 집에서 나오는 생활하수를 받아내고, 이렇게 오염된 물은 모기가 유충을 낳기 적합한 장소가 된다. 그런데 그 유충들은 연못에 사는 미꾸라지가 먹고, 사람들은 그 미꾸라지를 먹는다. 또한 마을에서 흘러들어온 하수는 연못 주변에 심은 미나리에 의해 정화되어 강으로 흘러나간다. 결국은 산에서 흘러나온 물이 강으로 가기까지, 인간이 갱비하고 자연의 여러 가지 생명체가 공존하면서 정화되고 소비되는 가장 완벽한 '친환경 사이클'을 완성한다.
우리가 아는 마을들은 그냥 단순히 집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하고 그 안에서 순환이 이루어지고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는 복합체다. 마을은 이런 단위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p343
집을 구경하는 것은 물리적인 집의 몸뚱아리를 보는 것만이 아니다. 집을 구경한다는 것은 그 집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동네를 구경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골목과 담장과 대문들로 이루어진 물리적인 공간을 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동네가 만들어낸,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p362
제대로 그 도시를, 문화를, 역사를 보기 위해서는 버스가 안내하는 길을 잠시 벗어나 그 도시의 가장 오래된 골목을 걸어다녀 보아야 한다. 스쳐가는 거리의 장막 뒤로 한 걸음 걸어 들어가면, 우리를 압도하는 놀랍고 거대한 스케일의 유적이 아닌 사람 이야기가 담긴 역사를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