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알바일기

알바 일기#1 - 의약품 배송 보조(2)

화장실은 병원에서 빨리, 마실 건 약국에서 주는 것으로 해결

by 루틴강

5톤 트럭에 몸을 싣고 배송작업을 하기 위해 출발했다. 차에 타자 배송기사분이 심은 먹었냐며 자신이 받은 김밥 한 줄을 나에게 건넸다. 내가 점심 드신 거냐고 여쭤보니 본인은 밥을 잘 안 먹는다고 했다. 눈 앞에 바나나맛 빵 한 덩어리가 있는 것이 보였다. 대략 10개 남짓 들어가 있었을 것 같은 플라스틱 박스에 한 개만 남아 있었다. 이 빵이 배송기사분의 점심이며, 허기를 달랠 무언가 겠구나 싶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차 내부에는 세월의 흔적이 짙었다. 시트는 곳곳이 파이고 꺼져있었고, 모든 곳에 먼지가 수북했다. 운전석의 문 손잡이가 부러진 곳에는 나사못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는 영수증을 보관하는 박스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기어봉 옆에는 쓰레기를 버릴 수 있도록 종이 박스가 놓여있었다. 이 열악한 환경에서 나는 안정감을 느꼈다. 그 이유는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오전 작업 내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도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난처했다. 지금은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알려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토록 큰 것인지 이때서야 알았다.


'처음 해보는 것, 나이는 31세, 미혼 등' 간단한 소개를 마치고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전달받았다. 배송지에 도착하면 물건을 전달한다. 물건을 전달하면서 수취 영수증에 도장을 받아야 한다. 납품할 곳은 약국, 병원, 동물병원, 안경점 등이 있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도 오전과 마찬가지로 복잡하지 않았다. 일 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면서 첫 배송지로 향했다. 첫 배송지는 홈플러스에 있는 화장품 가게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끄고, 카트를 내리고, 카트 위에 박스를 쌓아서 가게로 갔다. 가게에 도착하면 물건을 한쪽에 쌓아서 전달하고, 기사분은 영수증을 받는다. 그리고 다시 트럭으로 돌아와 카트를 싣고, 차량에 탑승해서 다음 목적지로 간다. 단순하다 못해 쉬운 일의 반복이었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있다가 기사분이 차를 세우면 얼른 내려서 뒤쪽으로 가 뒷문을 열고 기사분이 올라가 짐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 만약 기사분이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끈다면 마찬가지로 뒤쪽으로 가서 문을 열고, 이번에는 카트를 내린다. 시동을 끈다는 말은 조금 멀리 간다는 의미였다. 기사님은 나에게 짐을 주었고, 때로는 본인도 짐을 갖고 가게에 다녀오기도 했다.


몇 차례 배송을 해보니 금방 익숙해졌다. 그리고 배송기사분에게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 물었다.



아저씨는 올해로 경력이 7년이 되셨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셨는데, 그곳에서 부서장까지 지내셨다고 했다. 약 60여 명이 부서원으로 있었다고 했다. 부하 직원의 수에서 자부심을 드러내시기도 했다. 부인분과 함께 장사를 시작하시려고 퇴사를 했다. 그런데 부인분께서 암에 걸리셨고,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어 배송 일을 시작하셨다고 했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아저씨는 평온한 얼굴을 한 채로 말씀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배송지에 도착해서 박스를 내렸다. 다시 차에 탔을 때 아저씨는 담배를 한 대 피우셨다. 그리고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고, 또 다음 배송지에서는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났을 때에는 회사 생활과 술에 대한 무용담을 늘어놓으셨다. 때로는 내게 결혼은 언제 할 것인지, 직장은 어디에 다녔는지 묻곤 하셨다. 김밥을 건넸던 인상이 좋아서였는지, 혹은 고된 일에 엉켜 사는 얼굴색을 보아서 그런 것인지 그분께 애정 어린 마음이 생겼다. 물론, 한국의 4-50대 남성이 갖고 있는 꼰대 기질과 허세를 갖고 계셔서 때때로 마음이 멀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 이 아저씨와 함께 보내야 된다는 생각을 하며 조금 더 알아가기로 했다.


이 일을 하며 가장 힘든 것에 대해 여쭤보았다. 화장실을 꼽으셨다.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다음 목적지가 병원이 아니라면 참아야 된다고 했다. 그 큰 트럭을 아무 곳에 세워두고 볼일을 보러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병원이나 상가 건물에 배송을 할 때 급하게 다녀온다고 하셨다. 운송업에 종사하시는 분들 대부분은 이러한 환경에서 근무하시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또 배송기사 특성상 배송을 시작하면 중간에 쉬는 것이 어려워진다. 배송 물품은 빼곡히 쌓여있고, 이 물품을 모두 배송해야 일이 끝나는 것이 정해져 있다. 정확하진 않지만 하루 동안 같이 일을 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추측해보면, 영수증을 받아야 배송이 완료되는 프로세스를 보면 병원과 약국 등 가게가 영업을 닫기 전에 배송을 완료해야 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하면 결국 배송을 완료해야 하는 시점이 정해져 있는 것인데, 이런 경우엔 중간에 쉬기가 어려워진다. 또 퇴근 시간대가 겹치면 다음 배송지로 가는 시간이 지체되어 여유를 부릴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시간 내에 끝내기도 빠듯한 물량을 배정받는 것이 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점심도 거르는 경우가 많다고 하셨다. 이 큰 차를 세워두고 밥을 먹으러 갈 수가 없다며 본인은 하루에 1끼 저녁만 먹는다고 했다. 아침부터 저녁 전까지 빵 한 덩이가 전부인 듯 보였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새벽 6시 반에 출근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배송, 저녁 7시까지 복귀 후 서류 정리 후 퇴근하는 것이 아저씨의 일상이었다.


아저씨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배송지를 돌아다녔다. 개인적으로 기쁘고 성취를 느꼈던 순간(?)은 트럭에 있는 배송품들이 조금씩 줄어드는 게 느껴질 때였다. 테트리스의 맨 아랫칸을 한 줄씩 없애는 기분이었다. 배송을 계속하다 4-5시가 되니 체력이 많이 줄어든 게 느껴졌다. 동시에 오른쪽 발목이 쑤셔왔다. 2.5톤 트럭 높이에서 물건을 꺼내러 갈 때마다 뛰어내린 것 때문이었다. 높은 높이는 아니었지만 4시간이 넘게 반복하니 안 아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전에 했던 까대기 때문인지 허리도 조금씩 아파왔다. 슬슬 일이 언제쯤 끝날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구직사이트에 올라온 공고에는 오후 5시까지 근무라고 적혀있었는데, 아저씨는 저녁 7시쯤 배송이 끝날 것이라고 했다. 오전에 물건 분류가 2시간 딜레이 된 것 때문에 배송도 2시간 늦어졌다고 했다. 연락 온 번호로 문자를 보내 연장근무 수당을 물어보았고, 퇴근 시간에 맞춰 일급을 계산해서 지급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연장수당이 없다고 했으면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렇다고 김포 어디인지도 모를 곳에서 무작정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또 공고에서는 오후 배송은 서울로 와서 하기 때문에 서울에서 내려준다고 말했지만, 앞서 세 번이나 배송기사가 바뀌면서 결국 김포 시내를 돌게 되었다. 결국 7시까지 마지막 배송을 하고 아저씨가 근처 역에 내려주었다. 생각보다 일이 힘들었다. 매일 같이 이 일을 하시는 분들의 몸은 괜찮은 건지 걱정되었다.


일을 마무리하고 집에 오는 길에 오늘 하루를 정리해보았다. 거대한 물류단지가 주는 압박감도 느꼈고, 환대의 문화가 없는 곳에 덩그러니 서있었고, 눈치 보며 일을 시작했고, 이리저리 팔려다니다 배송작업을 시작했고, 정신없이 배송을 반복했고,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퇴근을 했다. 정말 하루 종일 김포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내보니 '한 도시에 약국과 병원이 정말 많구나' 하는 생각과 '약 종류는 셀 수 없이 많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하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다. 아저씨가 약국에 물건을 드리고 나서 박카스 두 병을 가지고 오셨다. 약국에서 마시라고 준 거라고 하시면서 나에게도 주셨는데,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약국에서 비타민 음료를 받았다. 아저씨는 약국에서 주시는 음료들로 갈증을 해소한다고 하셨다. 약국에 주로 출입하는 배송기사들이 경험하는 특징이 아닐까 싶었다. 하루였지만 배송 보조로 일을 해보니 활동량이 엄청 많다는 걸 느꼈다. 아저씨의 사례를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배송업 종사자 분들이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고 계시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고, 조금 더 관심 있게 바라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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