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 대기시간, 이것은 꿀 알바인가?
솔직히 말하면 이튿날부터 꿀 알바의 향기가 났다. 매일 아침 10시 즈음 일어났다. 씻고 준비하고 11시에 집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하천 따라 10분 정도 달려가면 일할 곳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언덕을 올라가면 호텔에 도착했다. 2층으로 올라가 행사 기획사가 잠시 사용하고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면 출근이 끝났다. 다른 사람들이 오기까지 10분 정도 기다리면 우리에게 일거리를 주는 담당자가 밖으로 나왔다. 20대 후반의 다소 가벼운 성격의 사람이었다. 재미있게도 항상 아침마다 자신이 몇 시에 퇴근했는지(대개 새벽에 퇴근했다고 말했다) 이야기하며 말을 시작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회초년생의 느낌을 받았다. 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얼추 다 모이면 일할 곳으로 이동했다. 힘들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고 단순한 작업이었다.
행사 스태프 일은 총 4일 동안 했으며, 같이 일했던 사람은 많게는 6명이고 적을 때는 4명이었다. 행사는 정신의학과 관련 있는 학술대회였다. 내가 하는 일은 점심식사 시간에 맞춰 코로나 예방을 위해 식사 좌석마다 투명 가림판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어느 식당에 가면 다 있는 칸막이, 가림판과 동일한 것이었다. 가림판 하나씩은 무겁지 않았으나 한 번에 10개 내외를 들고 설치하러 돌아다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첫날은 배송받은 가림판 500개에 붙어있는 스크래치 방지 비닐을 떼어내는 것이었다. 이 날은 4시간 정도 작업하고, 행사장 뒤쪽 안 보이는 곳으로 옮겨놓고 끝났다. 둘째 날부터는 2인 1조로 편성되어 3층과 4층 각 층의 행사장 홀을 맡았다. 점심 전 행사가 끝나면 런치 심포지엄이라고 해서 도시락을 먹으면서 포럼을 진행하는 행사였다. 이 행사가 시작하기 전에 얼른 가림판을 설치하는 것이 나의 업무였다. 짧은 시간 내에 신속하고 빠르게 해야 된다고 지시를 받았지만 막상 해보니 10분, 길어도 15분 안에 다 끝났다. 예상했던 것보다 민첩성이 그리 필요하지 않았다. 반대로 행사가 끝나면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가림판을 수거했다. 그리고 그것을 잘 안 보이는 곳에 가져다 두면 일은 다 끝났다.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면, 오전 11시 20분 출근, 10분 대기, 11시 30분 업무 브리핑, 12시 30분까지 대기(직전 행사가 빨리 끝나면 시간 당겨짐), 12시 40분 가림판 세팅 완료, 12시 45분 점심 식사 시작, 13시 15분 점심 식사 완료, 13시 25분 가림판 수거 시작, 13시 40분 가림판 수거 완료, 13시 50분 업무시간 기록 후 퇴근.
출근을 하고 난 뒤 약 1시간 정도를 대기했다. 그리고 15분 정도 일을 하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시간도 사실상 대기시간과 비슷했다. 그리고 15분 정도 작업을 하면 맡은 일이 끝났다. 같은 과정을 3일 동안 반복했다.
대기하는 시간 동안 휴대폰을 보거나 같은 조에 있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있던 시기였고, 같은 조의 친구가 20대 남성이어서 20대 남성 투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외에도 그 친구의 진로와 적성에 대한 이야기, 내가 그동안 해왔던 일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일련의 이야기를 나눴던 공간은 호텔 측 청소, 미화 담당하시는 분들이 쉬는 공간이었다. 그 공간의 위치는 화장실 옆쪽이었으며, 행사장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담아 모아놓는 쓰레기통을 보관하는 구석이었다. 그래서 약간 쓰레기 냄새가 났다. 우리는 그 공간에 안 쓰는 의자를 가지고 와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이따금씩 '우리는 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쉬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며칠만 머무르고 가는 사람이었지만, 청소와 미화하시는 직원 분들은 매번 이곳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웠다. 짧은 시간만 관찰한 것이니 정확하진 않을 수 있지만, 휴식 여건이 열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대기시간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배송 보조 아르바이트나 다른 일에 비해서 몸이 편하니까 좋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조의 친구는 실제로 일하는 건 30분도 안 되는데, 시급과 일급을 다 받는 게 적절한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고, 나는 '대기시간도 일하는 시간으로 봐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라는 생각과 '당연한 권리라는 건 내가 활동가여서, 노동조합 조합원이어서 하는 나만의 생각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 매일 같이 이렇게 잠깐 나와서 앉아 있다 가는 것이 나른하게 느껴졌다. 같은 조였던 친구는 생활력이 강한 친구 같았다.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왔고, 이 일이 끝나면 다시 다른 아르바이트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처럼 단기 아르바이트를 할 때 이런 행사 스태프 아르바이트는 개꿀 알바라고 말했다. 코로나 시국에 몸 쓰지 않고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알바가 바로 행사 스태프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에 할 알바도 운이 좋아서 행사 진행요원 아르바이트를 구했다고 했다. 마지막 날 일이 끝나고 그 친구와 기회가 되면 다음에 또 보자고 인사하며 헤어졌다. 어쩌면 다른 장소에서 열리는 다른 행사에서 볼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대기시간을 두고 나의 당연한 인식과 그 친구의 개꿀 알바라는 단어 사이에서 지금은 잘 표현하지 못하지 못하겠는(?) 알 수 없는 갈팡질팡을 하며 다시 집으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