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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틴강 Dec 01. 2022

12월 1일(목) 보약과 마약, 그리고 권력

지금 캠프를 이끌고 있는 선생님은 강의 중 '수험생에게 보약은 점수가 잘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체감은 못 했다. 그동안 점수가 생각보다 잘 나온 적은 있었어도, 높은 점수가 지속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캠프에는 12명의 학생이 있다. 그리고 내달 중순이나 다음 달부터 20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캠프에서는 몇 가지 종류의 시험이 있다. 첫 번째는 아침에 보는 20문제로 구성된 진도별 모의고사, 그리고 11월 한 달 동안 3번 진행된 무림대회(매주 수요일), 그리고 토요일에 한 차례 진행된 경찰학 관련 법령 암기대회가 있다. 매주 과목은 헌법, 형사법, 경찰학이 있다. 그중에서 경찰학 무림대회와 암기대회에서 1등을 했다. 그리고 이번 주에 진행된 경찰행정법 파트 아침 진도별 모의고사도 1등을 했다. 초반에는 특정인을 이겨보겠다는 목표로 했다. 그리고 그 친구를 이긴 뒤에는 1등을 유지하고 싶어서 공부했다.


선생님이 말씀한 것처럼 점수가 잘 나오는 건 수험생에게 보약과 같다. 그리고 1등은 보약과 마약 두 가지를 합쳐놓은 것 같다. 1등을 하는 날은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피곤하지 않다. 그리고 기분이 너무너무 좋아서 더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또한 지겹도록 보는 기본서와 기출문제가 예능처럼 느껴진다. 읽을수록 재미있다. 마약 같은 이유는 중독성이 가장 큰 것 같다. 1등을 하면 자꾸 다음 시험에도 1등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중독성에 있어서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1등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권력도 한몫하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특정 행동을 지시할 수 있는 권력도 있겠지만 이곳에서의 1등은 이것과는 조금 다른 양상이다. 가만히 있어도 무엇인가 물어보러 찾아오는 것, 점수를 말할 때 느낄 수 있는 시선, 앞뒤에서 말하는 수군거림이 권력을 형성하는 것처럼 보였다. 직접적 권력관계는 형성되지 않지만, 1등에게 사람이 모이는 것 자체만으로 소수의 인원들이 모여있는 공간에서는 충분한 권력이 생긴다.


고등학교 때도 반에서 2등을 했다. 당시에는 이렇게 발생된 권력을 나 보다 등수가 낮은 친구들을 무시하며 나의 자존감을 높이는 방식으로 사용했던 것 같다. 당시에 나는 나름 장난처럼 말하고 장난처럼 무시하는 행동 했지만, 아마 친구들은 그런 행동을 고까워하며 나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이 권력을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알려주고 함께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방향으로 말이다. 그리고 같이 공부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결과가 어떠하든 다 같이 성적을 올리고 목표로 하는 시험에 합격했으면 좋겠는 마음이다.


덧 붙이면, 지금 캠프에는 과거 고등학교 때의 내가 했던 행동을 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를 은근히 신경 쓰면서 지내는데, 양가적인 마음이 든다. 아직 이 마음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그 친구의 말하는 것이나 하는 행동을 보면서는 화가 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다. 시험이 끝날 때까지, 이 캠프가 마무리될 때까지 결코 가까워지지 않겠지만 그 친구에게 내심으로 쏟는 에너지를 줄여가야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럼에도 자꾸 눈에 밟히고 불편한 것을 어찌해야 할지 참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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