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틴강 Dec 15. 2022

12월 14일(수) 스카이캐슬과 1등의 과정

여자 친구와 대화 주제는 항상 공부 이야기다. 아침에 학원 가는 길, 끝나고 집에 오는 차 안에서 항상 학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어느 날인가 여자 친구가 내 이야기 듣는 게 꼭 드라마 스카이캐슬 같다고 했다. 당시 스카이캐슬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났다. 재미있는 키워드 같아서 글 주제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라마의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진 않지만 입시와 관련한 암투와 극적 전개가 기억이 난다. 지금의 학원은 드라마에 비하면 그 정도로 다이내믹하지도 않고, 드라마틱한 암투와 경쟁은 없다. 그럼에도 공부와 수험이라는 주제는 맞닿아 있는 것 같다. 학원에 온 지 이제 세 달을 맞이 했다. 그 기간을 짤막한 이야기로 남긴다.


수험생활을 시작할 때 학원에 다니는 걸 고려했지만 몇 가지 이유로 선택하지 않았다. 첫 번째는 지나친 경쟁에 거부감이 가장 컸고, 두 번째 이유는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이었다. 10년을 수평적 조직문화와 평등한 곳에서 지내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고, 경쟁에서 오는 불편함이 컸다. 그리고 나는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판단해서 학원을 다니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1년 여 정도를 혼자 독서실에서 공부했다. 1년 동안 나름의 고충을 겪으며 공부를 했지만, 혼자 하는 것에서 오는 한계가 분명히 느껴졌고, 9월부터 고민이 깊어졌다. 그리고 아주 좋은 기회를 통해 10월부터 학원에 다니며 캠프식으로(수업은 거의 하지 않고 각자 학습하되 일정하나 룰이 있는) 공부를 하게 됐다. 10월 캠프는 초반부터 무척 괴로울 정도로 공부를 시켰고, 그중 소수의 인원을 선별해서 11월 캠프의 구성원을 꾸렸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처음에는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나는 낯선 환경에 적응 초반에 가장 에너지를 많이 쓴다. 적응이 되어가면서 경쟁의 전선에 뛰어들었다. 1등이 너무 하고 싶었다. 이기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그 목표로 정말 열심히 했다. 명확하게 '내가 이겼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길 때도 있었고 질 때도 있었다. 어떤 목표를 이룰 때 경쟁이라는 수단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걸 체감했다. 그리고 경쟁이란 것의 부정적 측면을 주로 봐왔던 것에서 조금 떨어져 긍정적인 측면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내가 경쟁을 싫어한다고 말은 하지만(여전히 싫어하지만 좋아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경쟁상황 속에서 승부욕이 높아진다는 것도 새로이 알게 됐다. 어떤 면에서는 1등을 하고 싶다는 동기보다 특정인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욕구가 더 컸을 수도 있다. 예전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경쟁을 하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무너뜨려서 이기겠다는 마음보다는 적절한 자극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경쟁하는 방법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협업해서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그것을 선택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과는 다른 점이 이런 부분이 아닐까 싶다. 내부적으로 관계에서 오는 진통도 있었다. 이 부분은 길게 쓰는 것이 조심스럽고, 조금 떨어져 살펴보면 어느 집단에나 있을 법한 갈등과 부침이었다고 평가한다. 성적으로 평가되는 경쟁 시스템과 관계에서 오는 진통들은 이곳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진행형이 될 것 같다. 


일전에 1등에 대한 생각을 적은 적이 있다. 1등이라는 목표는 아주 거대한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 그리고 중독성이 강하다는 점, 그로 인해 다시 열의를 발휘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최근 들어서는 그 이면도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성적을 올릴 수 있는지 매일 방법을 고민하고, 고민했던 것을 적용해보고 평가한다. 그리고 약간 변형해서 시도해보는 것을 매일 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공부하는지 관찰해보고, 관찰로 해소가 안 되면 물어본다. 물어보고 나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을 살핀다. 그리고 같이 공부도 해본다. 스터디를 하면서 좋았던 점은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꼼꼼하게 공부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방법을 차용하기도 하고, 자극을 받기도 한다. 서로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것, 시행착오를 공유하며 조금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는 것에 도움을 주고받는다. 경쟁 속에서의 협력과 협동 같다. 성적이 잘 나온 사람이든 아닌 사람이든 배울 점은 항상 있다는 말이 와닿는다. 당장의 성적은 잘 나오지 않지만 매일 같이 남들보다 30분 먼저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 보다 30분 늦게 나가는 사람도 있다. 쉬는 날 학원 밖에서도 공부하는 사람이 있고,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책을 펴고 공부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공부를 제일 많이 하고 있다고 자만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공부에 진심인 사람들을 모아두니 꽤 건강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그것이 결국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이곳에 와서 참 다행이고, 너무 좋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좋은 기회를 얻었고, 그것을 잘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같이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성적에서, 각자의 성향과 방법으로, 각자 할 수 있는 최대치로 공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특히 성적이 잘 안 나오는 날에는)은 다른 사람이 하는 방법이 더 좋아 보이고, 그 사람이 쓰는 책과 강의가 더 좋아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마음에 허가 들어온다. 그리고 고민이 깊어지기도 한다. 이곳에 오면서 나는 뱁새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의 그 뱁새다. 이 속담을 이중적으로 생각했다. 혼자 공부했던 시기가 있어서 그런지 공부 잘하는 황새를 쫓다 보면 적어도 성적은 오르고 합격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황새가 길을 가는 방법과 뱁새가 길을 가는 방법은 다를 것이니 무조건 황새의 방법만을 고집하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황새의 뒤를 쫓되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쫓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수험기간이 끝날 때까지 나는 '나는 뱁새다'라는 생각을 갖고 수험에 임할 것 같다. 여기에서 같이 공부하는 모두가 합격해서 경찰이 되어서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이때를 그때 그 시절로 추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가까운 사람이든 먼 사람이든.


어제 본시험에 내부에서 1등, 전국에서 10등 이내로 들었다. 1등은 역시 기분이 좋다. 행복감을 안겨준다. 그럼에도 숨은 고수들이 많다고 느꼈다. 여전히 부족하다는 적절한 불안감을 가지고 앞으로도 공부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12월 8일(목) RPG 게임과 마음의 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