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하지심부터 물길따라 보얼예술특구까지
[히]
한달살기를 하며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사실 특별한 여행이라기보다는
아무 목적 없이 걷는 것입니다.
오늘은 가오슝을 흐르는 강 가운데,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먼저 느슨해지는 곳,
아이허 강(愛河,Love River) 강변길을 걸어봤습니다.
아이허 강은 가오슝 시민이 가장 아끼는 휴식공간이자,
관광객에게 인기있는 명소로도 알려져 있답니다.
가오슝 도심 중심부를 길게 흐르는 아이허 강은 총길이가 12km라고 합니다.
그중에 아이허 강 중상류에 위치한 애하지심(愛河之心), Heart of Love River에서
하류의 보얼 예술특구 (정확히는 맛집 항원우육면까지ㅎㅎ)까지
강물의 방향을 따라 천천히 걸었습니다. (편도 약 2시간 소요)
(애하지심은 MRT를 타면 아오쯔디 역과 호우이 역 사이에 있고, 트램을 타면 종점인 C24 인근에 있음)
먼저 애하지심 풍경을 사진으로 한번 보겠습니다.
실제로 제 눈앞에 보이던 애하지심은 아래 사진들처럼 입체적이지가 않아서^^
가오슝 관광청 사진을 가져와봤습니다.
애하지심이 가오슝의 야경명소 중 하나이자, 사랑과 낭만을 상징하는 그 이름에 걸맞게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유명하다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그러나 저희가 걷는 지금 시각은 뙤약볕 내리쬐는 한낮,
아이허 강의 현실풍경입니다. ㅎㅎ
사실, 처음 걷는 길이라 좀 망설이긴 했습니다.
여행지에서의 산책은 늘 반반같습니다.
가오슝 지도를 보면 아이허 강물은 가오슝 바다까지 구비구비 잘도 이어져 내려가는데
막상 실제로 걸어보면 수변둘레길은 지도와 다르게 중간에 끊어져 있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오늘 아이허 강변을 따라 걸어보니,
즐비하게 늘어선 우람한 열대나무들 사이로 걷기 편안한 산책로가
이만하면 상당히 잘 조성돼 있었습니다.
물길따라 걷는 길은 세상 그 어디라도 좋겠지만,
산책로 옆으로 열대수림이 뿜어내는 청량한 기운까지 함께 하니
흔히 보던 수변 산책로와는 다른 품격을 느끼게 합니다.
'쉼'은 이런 것임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자연과 사람들.ㅎㅎ
그런가하면 강변 건너, 하늘거리는 열대 수림 사이로
시원스레 우뚝 솟은 아파트들, 그림같은 고급 빌라촌도 눈길을 끌어당기네요?
세상 최고의 자연을 정원으로 둔 가오슝의 부촌인 듯?
아이허 강 주변으로 펼쳐지는 도심 속 자연의 이런저런 풍경을 구경하느라
지루할 새 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아이허 강 하류,
오늘의 걷기 종착지인 보얼예술 특구가 가까워져갑니다.
아이허 강 강변길 중에 관광차원의 화려한 볼거리, 먹을거리, 살거리는
이곳 하류 지역에 주로 모여 있어서
시간이 부족한 여행객들은 이 주변을 찾아서 여행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해양 스포츠를 비롯, 아이허 강 하구를 한바퀴 도는 유람선,
곤돌라 등을 탈 수 있는 선착장들도 이쯤에서 나타나네요.
드디어 '가오슝 다리'를 건넙니다.
아이허 강 중상류, 애하지심(Heart of Love River)에서 걷기 시작,
거의 두시간 여 만입니다.
오후 한 시의 뜨거운 햇살,
텅 빈 체력과 배고픔을 안고 도착한 항원우육면 앞에서
오늘의 산책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사랑의 강’이라는 이름은 단지 낭만적인 수식어가 아니라,
걷는 사람의 속도에 맞춰,
걸으면 걸을수록 자꾸만 사랑스러워지는 길이었습니다.
*이 글은 가오슝 한달살기 중(2023년 가을), 가족 카페에 실시간으로 남겼던
기록을 바탕으로 '현재의 생각'을 때때로 덧붙인 글입니다.
[히]
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 다시 읽어보니,
그날의 풍경보다 더 또렷하게 남아 있는 건
천천히 걸을 수 있었던 마음의 여유입니다.
관광 명소만 빠르게 훑는 여행이었다면 이 길을 이렇게 오래 걷지 못했을 테죠.
더위에 지치고 배고파도 한달살기였기에 가능했던 하루같습니다.
아이허 강은 가오슝이라는 도시가
얼마나 ‘쉼’에 진심인지를 보여주는 공간이었습니다.
여행지에서든, 일상에서든
사랑스러운 강 하나쯤 마음속에 품고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아이허 강은 그런 장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