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슝 한달살기(11)/대만의 부산, 가오슝의 이모저모

타이완을 대표하는 오래된 항구도시

by 호히부부

[호]



가오슝에 온지 오늘로써 일주일째.

그동안 몇군데를 다녀보긴 했지만,

아직은 이 도시를 안다고 말하기엔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행이라는 게 늘 그렇듯, 걷고 보고 먹은 것보다 보지 못한 것들이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얼마를 더 머문다 한들 한 도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고,

오히려 이런 어정쩡한 시점의 인상이 가장 솔직할지도 모르죠.

이곳저곳 다니며 느낀 인상과 인터넷을 뒤져가며 주워 담은 지식을 섞어본,

말 그대로 수박 겉핥기 같은 기록입니다.


20231101_103151.jpg?type=w1600 치친섬 등대에서 바라본 가오슝 항 전경
20231024_093255.jpg?type=w1600 글로리 피어에서 바라본 가오슝 항과 건너편 가오슝 대중음악센터


치진섬 등대에서 내려다본 가오슝 항은, 단순한 풍경이라기보다는

도시가 바다를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왔는지를 단번에 보여주는 듯 합니다.

그런가하면 글로리 피어에서 바라본 가오슝 항과 건너편 가오슝 대중음악센터는
과거의 산업 항구와 현재의 문화 도시가 한 프레임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이질적인 두 풍경이 어색하지 않게 이어지는 것이 가오슝의 지금 얼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들어 인구수가 타이중에 밀리고 있지만,

280만여 명이 살아가는 가오슝은 여전히 타이완을 대표하는 직할시이자 제2의 도시로 불립니다.
대만의 부산이라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

부산과 마찬가지로 가오슝 역시 바다와 항구를 기반으로 성장해 온 도시랍니다.
실제로 부산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고 하는군요.


가오슝은 오랫동안 무역항으로 이름을 알렸고,
1960년대 이후에는 경공업과 중화학공업 단지를 조성하며 대만 남부 경제의 엔진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래서인지 도시 곳곳에서 느껴지는 넓은 도로와 산업단지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대만 산업의 중심이 전자·IT 산업으로 이동하면서,
타이페이를 비롯한 북부 도시들이 급성장한 반면 가오슝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었습니다.
도시의 속도가 한 박자 늦춰진 듯한 인상은, 어쩌면 그 시기의 그림자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가오슝에 최근 다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답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TSMC가 가오슝 공장에

최첨단 반도체 공정을 추가 설치할 것이라는 소식은
이 도시가 다시 산업 지도 위로 올라오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과거 중화학공업의 도시에서,
첨단 반도체 산업의 거점으로 옮겨가는 이 흐름이
가오슝의 다음 세대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은근히 궁금해집니다.

SE-685de1b0-d388-430f-b316-b3c1ad2e1756.jpg?type=w1600 가오슝항 패루(牌樓,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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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가오슝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가오슝 85 대루. 우)고층 아파트가 늘어선 아이허(愛河) 강변


좌측의 가오슝 85대루는 가오슝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지만,
임시 휴관 중이라(2026년 1월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라는군요) 내부에 들어가 볼 수는 없습니다.
활용되지 못한 채 서 있는 모습이, 한때의 야심과 현재의 공백을 동시에 드러내는 듯합니다.

반면 아이허 강변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고,
저녁이 되면 산책하는 사람들로 강변이 채워집니다.
도시는 멈춰 있는 곳과, 앞으로 나아가는 곳이 늘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홍콩과 같은 위도인 북위 22도에 위치한 가오슝은
완연한 열대, 그중에서도 사바나 기후에 속해

실제 베트남북부 하노이와 같은 기온을 보인다고 합니다.

10월 하순임에도 한낮 기온은 30도를 오르내리고,
햇빛은 여전히 강렬합니다.
이곳의 시간은 한국의 계절 감각과는 다른 속도로 흐르는 듯합니다.

공원 곳곳에 자리한 나무들은 마치 이 기후를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며
자신들의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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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공원의 열대성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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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가오슝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시가지를 재정비하는 한편,

관광청이 나서서 해외 관광객 유치에 힘쓴 결과,

매년 가오슝 방문객이 늘어나 타이페이와 함께 대만의 대표적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미려도 역은 가오슝에서 유일하게 두 개의 지하철 노선이 교차하는 환승역이자,
한 해외 여행 사이트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운 역으로 꼽은 곳이기도 합니다.
출퇴근 시간의 분주함 속에서도, 잠시 고개를 들게 만드는 공간입니다.


20231030_171545.jpg?type=w1600 조명이 아름다운 미려도 역


이렇게 적다 보니 어느새 제가 가오슝 관광청 홍보대사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듭니다만,
물론 입국 시 대만 관광청이 제공하는 여행 지원금에도 당첨되지 못한,
수많은 관광객 중 한 명일 뿐입니다.ㅎㅎ




마지막으로, 새로운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할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찾게 되는 장소인 가오슝 시립도서관을 소개합니다.
여행지에서 도서관을 찾는 일은, 그 도시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가장 조용한 방법 같습니다.


CSwWamJPyVnTKMPrDSTu5LtmGgU 가오슝시립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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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좋은 노트북 컴퓨터 좌석에 앉기 위해서는 적어도

도서관이 문을 여는 오전 10시 정각에 입구에서 줄서서 기다렸다가

오픈런을 해야 가능합니다.

10시 1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의 행렬은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생활 공간임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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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지어 에스컬레이트로 입장하는 사람들....


5층 다문화 자료실에는 한국어 책도 천여 권 남짓 비치되어 있습니다.

『태백산맥』이나 『토지』 같은 대하소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은 꽤 컸습니다.

정기간행물 코너에는 디자인, 보그, 우먼센스 등
한국에서 발행되는 잡지도 몇 종 보입니다.
낯선 도시에서 마주친 익숙한 활자는 생각보다 큰 안도감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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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게도 층마다 도서관 바깥으로 나무가 심어져 있다


층마다 도서관 외부로 나무가 심어져 있는 구조도 인상적입니다.
책과 자연을 동시에 품으려는 이 공간의 의도가

가오슝이라는 도시의 성격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고로 이 글은,
가오슝이 자랑하는 이 시립도서관에 앉아 작성했습니다.
이 도시를 이해하려 애쓰는 가장 사적인 순간이기도 합니다.

아직 가오슝은 나에게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닙니다.

다만 몇 장면과 몇 개의 인상이 느슨하게 쌓여 있을 뿐이죠.

이 도시를 이해하려 애쓰는 대신,

당분간은 이렇게 곁에 두고 지내보려 합니다.



*이 글은 대만 가오슝 한달살기 중(2023년 가을), 가족 카페에 실시간으로 남겼던

기록을 바탕으로 '현재의 생각'을 때때로 덧붙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