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오래된 창고가 예술이 되다
[호]
보얼예술특구에 숙소를 정한 것은 참 잘 한 선택 같습니다.
가오슝항 2번 부두 일대에 자리잡은 보얼예술특구(駁二藝術特區)는
가오슝에서도 가장 핫(Hot)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에게는 매일같이 아침, 저녁 드나드는 길목이다보니
가오슝 한달살기가 10여일 째 된 지금은
처음의 신기함보다는 익숙함이 느껴질 정도로
어느새 여행지라기보다 친근한 동네같은 느낌이 듭니다.
보얼예술특구를 찾는 관광객들을 구경하는 관찰자 같은 느낌이랄까요?ㅎㅎ
이곳에 있어보니 보얼예술특구의 낮과 밤, 평일과 주말의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나 다릅니다.
1,2편으로 나누어 1편에서는 평일의 한산하고 여유로운,
보얼예술특구의 낮풍경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2편은 화려하게 변신하는 특구의 밤풍경과 함께,
주말에만 열리는 참신하고 개성 넘치는, 풋풋한 플리마켓 모습을 소개하겠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부두 창고를 개조해 만든 보얼예술특구는
재미있고 다양한 모습의 독특한 색깔을 지닌 곳이랍니다.
1984년 청나라와 일본의 청일전쟁이 끝난 뒤,
청나라가 대만을 일본에 넘겨주며 시작된 식민지배는
1945년 일본이 전쟁에서 패할 때까지 51년간 계속됐다고 합니다.
그 당시 가오슝은 일본의 군수물자를 생산, 수송하던 중요한 물동항이자 군항이었으며,
2000년 초반까지도 홍콩, 싱가포르에 이은 물동량 기준 세계 3위의 거대 항만이었다지요.
가오슝시는 이처럼 과거의 창고들이 폐허로 남아있던 곳을
관광지로 진흥시키기 위해 2000년부터 전폭적인 노력을 쏟아부었습니다.
대만을 포함한 세계 여러나라 작가들의 예술품을 전시하거나 유치해
포스트 모더니즘의 색채가 짙은 예술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배경을 마음에 두고 걷다 보니,
깊은 과거를 품은 공간이 지금은 이렇게 가볍고 평온한 산책로가 되었다는 사실이
묘하게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특구 안의 항만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연출하는
그레이트 하버 브릿지(Great Harbor Bridge, 다강교)의
아름다운 자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20년 개통한 다강교는 '타이완 최초의 수평 회전다리'이자
'아시아 최장의 항구를 회전하는 다리'로서 조개껍질과 돌고래의 형상을 본뜨고 있습니다.
다강교는 매일 오후3시와, 주말(금토,일)에는 저녁7시 한차례 더 회전해
배가 드나들도록 하고 있습니다만,
이곳으로 다니는 배가 없는지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보얼예술특구를 가로지르는 경전철 노선을 다니는 트램은 정물화처럼,
아니, 느릿느릿한 무성영화처럼 또 하나의 볼 거리를 제공합니다.
대략 10여 분 간격으로 오가는 트램은 서두르지도, 재촉하지도 않습니다.
간혹 주말 저녁, 트램 찻길 위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을
기사님이 조용히 기다려주는 장면도 보게 되는데, 마치 이곳의 속도를 알고 있는 듯한
이런 여유가 예술특구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낮의 보얼예술특구가 오래된 창고와 넓은 공간이 주는 여백의 풍경이라면,
이곳의 밤은 전혀 다른 풍경으로 채워집니다.
특히 주말저녁에는 얼마나 화려하게 다른 분위기로 변신하는지
다음 글, '보얼 예술특구의 낮과 밤(2)'에서 이어집니다.
*이 글은 대만 가오슝 한달살기 중(2023년 가을), 가족 카페에 실시간으로 남겼던
기록을 바탕으로 '현재의 생각'을 때때로 덧붙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