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기 좋은 나만의 스타벅스와 햇살같은 아침시장(大立市場)
[히]
몇 년 전부터 ‘살아보고 싶은 외국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실행하며
저희 나름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여행일기는 반드시 현지에서 다 쓰고 돌아오기.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첫째, 여행일기는 결국 냄새와 소리, 기온과 표정이 아직 몸에 남아 있을 때
현장에서 써야 가장 솔직하고 생생할 것 같은 생각에서입니다.
둘째, 한국으로 돌아가는 순간, 여행의 여운보다 일상의 속도가
더 빠르게 우리를 덮칠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달 살기가 시작되면, 분명 놀러 온 것인데도
여행하랴, 기록하랴 하루가 한국에 있을 때보다 두 배로 바빠집니다.
그래도 그 바쁨마저 여행의 일부로 즐기고 있습니다.
이곳의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리듬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쓸 장소를 찾는 것도, 여행의 일부
오늘은 요 며칠 다녀온 여행지들을 정리하는 날입니다.
아침부터 머릿속은 온통 하나입니다.
“오늘은 어디에서 글을 쓸까?”
다행히 숙소의 와이파이가 빠르니 숙소에서 쓰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걸 잘 압니다.
그래서 실제로 그렇게 해보기도 하지만, 그런데도 자꾸만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네요.
그래야 지금 이 순간도 ‘여행 중’이라는 감각이 유지되니까.
그러다 보니 외국 도시에서 한달살기를 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공간이 바로 도서관입니다.
가오슝 시립도서관은 이 도시가 얼마나 문화 인프라에 진심인지 단번에 보여줍니다.
고급 호텔 로비처럼 넓고 세련된 공간, 조용하지만 답답하지 않은 공기,
그리고 장시간 앉아 있어도 전혀 부담 없는 자리들.
이곳은 ‘글을 써도 괜찮은 공간’이 아니라 ‘글을 쓰라고 마련해둔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지정석도 생겼습니다.
(물론 도서관 오픈시간인 10시에 맞춰 입장해야 가능합니다.^^)
카페에서도 글을 씁니다.
숙소가 있는 보얼예술특구 주변에도 이름난 카페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한달살기가 거의 끝나가는 데도 아직까지(불과 몇군데 밖에 못가보긴 했지만)
노트북을 펴고 몇 시간 집중하기 좋은 카페는 쉽게 만나지 못했습니다.
와이파이가 불규칙하거나, 의자가 오래 앉기엔 불편하거나,
혹은 괜히 눈치가 보이거나, 게다가 우리의 하루 시작 리듬과 카페들의 오픈 시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빠르면 오전 10시, 심하면 오후 1시에 문을 여는 곳도 있으니.
그럴 때 가장 무난하고, 가장 확실한 선택지가 바로 스타벅스입니다.
일반 카페보다 오픈시간도 빠릅니다.
결국, 노트북 가방을 메고 굳이 멀리 가고 싶진 않았지만
숙소(보얼예술특구)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중앙공원 옆, 스타벅스(STARBUCKS Central Park Shop)로 향했습니다.
(숙소 가까이 보얼예술특구 안에도 스벅이 있긴 한데, 서점 건물 안에 있어서 그런지
늦은 11시에 오픈이네요.)
예상치 못한 선물, 대립시장(大立市場)
스타벅스 앞까지 거의 다 왔을 무렵 갑자기 옆 도로가 왁자지껄합니다.
‘뭐지?’
고개를 돌려보니 아침에만 서는 로컬 시장,
대립시장(大立市場) 입구였습니다.
매일 새벽 5시 반부터 오후 1시까지만 시장이 열리는 곳.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쉽게는 마주치지 못할 풍경입니다.
이 순간, 실시간 여행 중이라는 감각이 온몸으로 확 들어옵니다.
계획에 없던 장면을 만났을 때 여행의 감흥은 늘 최고조인거죠.
자동으로 시장 구경부터 시작합니다.
야시장도, 재래시장도 많이 봤지만 아침 시장은 확실히 다르군요.
채소도, 생선도, 사람들도 모두가 하루의 시작에 있는 얼굴입니다.
풋풋하고, 활기차고, 괜히 저까지 부지런해지는 기분.
잠깐 구경만 해도 몸과 마음이 상쾌하고 즐겁습니다.
딱히 살 건 없지만 그냥 지나치긴 아쉬워 아침에 먹기 좋은 간식들 몇 가지를 삽니다.
우무 같은 주스, 어마어마하게 걸쭉한 또우장, 그리고 만두.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아침 햇살 같던 대립시장을 뒤로하고
드디어 시장 바로 옆 건물의 스타벅스로 들어갑니다.
입구는 소박하지만 2층으로 올라가는 순간 탁 트인 공간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이 스타벅스는 '가오슝에서 오랫동안 앉아서 글 쓰기 좋은 곳'이라는 평처럼
빠른 와이파이, 편안한 테이블, 그리고 시원한 전망까지 알려진 그대로입니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든 글쓰기가 막막해질 때
늘 같은 얼굴로 반겨주는 공간.
그래서일까요?
스타벅스에 앉아 있으면 잠시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 듭니다.
(갑자기 스벅 홍보대사가 된 느낌이지만.ㅎㅎ)
먹음직스러운 간식을 앞에 두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오늘 하루를 정리합니다.
오늘은 글을 쓰며 여행했고, 여행하며 글을 쓴 하루였습니다.
이렇게 또 하나의 가오슝 한달살기 기록이 완성됩니다.^^
*이 글은 대만 가오슝 한달살기 중(2023년 가을), 가족 카페에 실시간으로 남겼던
기록을 바탕으로 '현재의 생각'을 때때로 덧붙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