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떠나자!
(2018/1월중순~2월중순)
[히]
사는 동안 수차례 뱅기를 탈 때마다
이코노미 좌석에서 바라보이는 저 앞 커튼으로 가리워진 비즈니스석이 궁금하곤 했다.
뱅기 타고 내릴 때 비즈니스석을 지나치며 힐끔,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 옆눈으로 살펴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전부이곤 했는데,
해외 장거리 여행 때 온몸이 피곤에 쩔어있을 때는 “아 나도 비즈니스석!”
하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부럽기도 했던 비즈니스석이다.
그럴 때마다 “에잇 한번 타봐?” 하고 돈을 계산해보면
한치의 망설일 시간도 안주고 “절대 안됨!” 하고 바로 답이 나오니
나의 얄팍한 주머니의 한계만 다시금 되새기게 만들던 비즈니스석이었는데
살다보니 이런 날도 다 있다.
내가 타보게 된 것이다.
그 비즈니스석을!(남편 카드 마일리지 적립된 걸로 탔네요ㅋㅋ)
뱅기가 도착할 때쯤 되니 캐빈 매니저쯤 돼보이는 고참 스튜어디스가 다가와서는
내 무릎높이로 주저앉더니 눈을 맞추며 말한다.
"뱅기를 타는 동안 편안했는지? 손님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뻤다고!"
한사람 한사람 손님마다 일일히 정중한 인사를 한다.
돈의 액수만큼 접대를 해주는 자본주의 경제논리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거 참, 역시나 남의 옷을 입은 듯 어색하고 쑥스러울 뿐이었다. ㅎㅎ
생각해보면 비즈니스석이든 이코노미석이든 다행히 가고자 하는 도착지는 같다.
뱅기를 타고서 어딘가 목적지를 향해 떠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고
이코노미석에서도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난생 처음 비즈니스석을 타고서 또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30여년 남짓을 유목민기질 남편과 호흡을 맞추고 살다보니 이제는 나도 반 유목민이 된 듯하다.
불과 며칠 전까지 눈이 펑펑 내리는 한국에 있다가 갑자기 선선한 태국 치앙마이에 와서
이렇게 현지인마냥 국립도서관에 앉아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고 있으니,
그것도 며칠간의 단기여행이 아닌 한달남짓 일정으로 말이다.
여행준비만 해도 그렇다.
불과 일주일 남짓 걸렸는데 그야말로 정신없이 뒤도 안돌아보고 밀어부쳤다.
여행기간으로 치면 참 길다고 할 수 있는 한달씩이나 낯선 외국의 도시에서 머물거면서
일주일만에 후다닥 준비를 한 데는, 그러나 되레 그만한 연유가 있다.
체계적인 계획속에서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기에는 현실적으로 발목을 붙드는 것들이 많다보니
여행을 진행시키는 쪽으로 도무지 결정이 안나는 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근데 세월만 흐르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건강도 점점 약해진다.
몇년전부터는 건강하게만 보이던 남편도 조금만 힘든 일을 하고 나면 허리, 무릎이 아프단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
첫딸을 낳고 뭐가 그리 바쁘다고ㅎㅎ 1년 2개월만에 쌍둥이를 연달아 낳은 데다가
살면서 발목을 둬번 접지르고 나니 좀만 움직이면 다리가 후덜 거린다.ㅠㅠ
그래 떠나자, 어려움은 언제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결정, 확정, 도장 꽝꽝!
그러니 이제는 앞만 보고 달릴 수밖에 ㅎㅎ
어쨌거나 한달살기 여행 앞에서 우리의 나름 거침없는 행동의 배경을 생각해보면
참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20여년 전, 가족세계여행을 다닐 때이다.
1년이라는 긴 시간을 여행에 투자했음에도 여러나라, 도시를 다녀보고 싶은 욕심으로 마냥 바쁘던 중에
한 도시에서 느긋이 여행을 일상처럼 즐기는 나이 지긋한 부부여행자들을 만나곤 했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보기가 좋았고, 우리도 언젠가 호감가는 새로운 도시에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장기 세계여행은 말할 것도 없고,
제주를 비롯한 우리나라 도시 또는 세계 여러 도시에서
한달씩 살다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현실과 일상을 벗어나는 일이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기 자기 자리에서 나름의 용기와 결단을 갖지 않으면 한발짝도 문밖을 나서기가 어려울 정도로
삶의 현실은 그렇듯 만만치가 않다.
우리도 마음뿐이지 도무지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가
2014년, 딸이 대학 졸업과 함께 (학교 지원으로) 뉴욕필름아카데미에서 한달간 영화 공부를 하게 되어
뉴욕에서 머물게 되자 '옳다구나 기회는 이때다' 하고 함께 빌붙어ㅎㅎ
뉴욕에서 한달을 보낸 것이 시작이다.
두 번째는 또 딸이 낸 책과 관련된 강연일정으로 인도와 네팔 방문을 하게 되자
이번에도 그걸 빌미로ㅎㅎ 네팔 포카라에서 한달 보름간을 지내본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이번에는 세 번째 도시, 치앙마이에 왔다.
이번 여행의 빌미는(그렇게 쓰고 이제는 간절함으로 부르고 싶다)
홍콩에 거주중인 남편 선배가 있는데 모처럼 친구들 모임을 그곳에서 한다고 한다.
그리고 세계 여행자들이 잠시라도 현지인처럼 살고 싶어 하는 도시,
치앙마이는 홍콩 바로 옆(?)에 붙어 있다.ㅎㅎ
(2018/1월중순~2월중순, 태국 치앙마이 한달살기 중에 가족카페에 '실시간'으로 쓴 글입니다. 가족카페다보니 격의없이 씌어지거나 미처 생각이 걸러지지 못한 부분들도 있지만, 그 시절만의 옛스러운 정서와 감정에 의미를 두고 공유합니다. 가끔 글 중간에 2025년 현재의 상황과 심정을 삽입하기도 하고, 글 맨아래에도 2025년의 현재 생각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호]
값싼 세계일주 항공권을 내 돈 주고 사서
1997~1998년과 2002~2003년
일년씩 두차례 세계여행을 다니면서도
남부러운 줄 몰랐던 순수한 열정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비좁은 이코노미석 중에서도 맨 뒷자리에 앉게 되면
의자가 뒤로 젖혀지지 않아 장거리 비행시간 내내 꼿꼿이 앉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도 좋기만 했습니다.
그땐 어린 세 딸에게 세계를 보여주겠다는 일념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젠 비지니스석을 한번 타봤으니
전용기나 전세기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고,
아내한테 퍼스트클래스 항공권을 짠~하고 선물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제 얼마남지 않은 비행할 체력이 유지될 때까지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꿈꿔봅니다.
"간절히 꿈꾸면 꼭 이루어진다"는 말만 믿습니다.
또한 하느님도 저를 도와주실 줄 꼬~옥 믿씀미다.^^
[히]
허얼~ '호'님! 그런 (헛된)꿈을 꾸면 아니되어욧!ㅋㅋ
하고... 글을 쓰다말고 과연 '퍼스트클래스 항공권' 가격은 얼마나 하는지?
갑자기 궁금해져서 (생전 처음으로) 검색해보니...
으아~~ 뱅기값이 어마무시, 상상을 초월하는군요.
정색하고! 마음이나마 아주아주 기쁘게 받겠습니다.
이코노미석도 감지덕지니 감사히 버티고 갈 수 있는 체력을 선물해 주시라고
기원합시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