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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꿍 Dec 09. 2015

당신은 나에게 남편이자 큰 아들

셀프 난임 치유기

    

 힘든 일을 같이 겪어가면서 우리는 그 어떤 부부보다도 단단해 짐을 느꼈다. 

자궁내막증으로 수술 했을 때에도 3일간 내 병실을 함께 지켜준 사람은 남편이었다. 3일이나 휴가를 내고 좁은 간의 의자에 몸을 구겨서 잠을 청하는 남편에게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지, 내 옆에 있어준 남편. 그런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서로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아갔다. 분명히 그 시간은 우리에게 독이 아니라, 감사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이 시간 동안 서로를 위로하는 법을, 서로를 아껴주는 법을, 그리고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확실히 견고해졌다. 혹자는 아이가 있어야 부부 사이도 단단해 진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진짜로 단단해 졌다. 정말로 견고한 사이가 되었다.       


친구들은 농담 삼아 말한다.

“아직도 남편을 사랑하는 구나”

‘아직도’라는 말이 주는 느낌이 서늘하면서도 슬프다.     

나에게 남편은 ‘아직도’연애할 때처럼, 어쩌면 그 보다도 더 큰 조력자이다. 우리 등본에 유일하게 쓰여 있는 내 가족이다. 나는 남편이 ‘아직도’ 너무 좋다.  그리고 바람이건데 언제까지나 계속 좋았으면 좋겠다.     

  

남편은 나에게 부모님 같다고 느껴진 적이 있었다. 한 참 시험관 시술 실패로 내가 힘들어 할 때 남편은 말했다. 나는 정말 아이가 없어도 괜찮다고. 힘들면 그만하자고. 


나는 안다. 남편이 아이를 끔찍이 원한다는 것을. 홍콩여행에서 딸을 데리고 온 가족이 있었는데 그 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남편이었다. 그렇게 아이를 좋아하면서 진짜 상관없다고 의연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그 모습에서 그가 부모님처럼 느껴진 적이 있었다.     


  아이를 낳고 싶은 이유는 누군가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싶어서 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족만큼 서로를 무한정, 맘 놓고 사랑할 타인을 찾기는 힘들다. 인간인 지라, 준만큼 받고 싶은 게 인지상정. 내가 마음을 주었는데 그만큼 받지 못하면 상처받게 된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이 어찌 계산이 있을 수 있을 것이며, 받지 못한다는 상처가 두려워 사랑하지 않은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자식이 부모를 사랑한다고 해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크기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무조건적인 사랑.


그 사랑을 아끼지 말기로 했다.

남편은 나에게 남편이자, 큰아들이 되어주기로 했고, 나는 남편에게 아내이자 큰 딸이 되어 주기로 했다.


아직 있지도 않은 존재에 대한 사랑을 아껴두지 말고, 지금 서로를 더욱더 사랑해 주면 된다. 

서로를 자식 대하듯 아끼고 더 사랑해주면 되는 것이다. 머리도 쓰담 쓰담 해주고.

한 번은 내가 뭐가 갖고 싶다고 남편에게 이야기 했더니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그래 우리 큰 딸이 갖고 싶다는데 사줘야지~” 


우리는 인당 2개의 역할을 맡고 있으며, 향후 아이가 만약 태어난다면 그 녀석은 늦둥이이다. 우리는 이미 큰딸, 큰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 낳는 것이 늦어진다고 해서 두려울 것이 없었다. 원래 늦둥이는 늦게 태어나는 거니까. 마흔에 낳으면 어떠한가. 늦게 얻은 자식이 그리 예쁘다고 하지 않는가. 늦는다고 두려워말자.    


게다가 서로가 큰 딸, 큰 아들이니 아이가 생겨도 서로에게 소홀할 일이 없다. 왜냐면 남편 또한 나에게 큰 아들인 자식이고, 나 또한 남편에게 큰 딸이니 말이다. 


생각만 잠시 바꾸었더니 모든 것이 시원하게 해결 되었다.

 

남편을 아들이라고 생각하니 더 잘해주고 싶다. 지압 빗으로 머리도 톡톡 빗어주고, 밤에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은 손이 많이 가도 해주었다. 남편은 귀찮아도 자식은 귀찮지 않으니 말이다. ‘아직도’ 사랑하느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권유해 주고 싶다. 남편을 큰 아들, 우리 집 장남이라고 불러보라고.     


결혼 6년차, 우리는 1인 2역으로 4명의 가족이 있다. 나, 남편, 큰딸, 큰아들. 

남편은 나에게 배우자이자, 큰아들이자, 베스트프렌드이다. 

그리고 수줍은 고백.

“당신 덕분에 내 인생은 100배는 더 즐거워.”    


가족의 중심은 부부이다. 부부가 행복해야 나중에 태어날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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