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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꿍 Dec 18. 2015

정말로 '쉬는' 여행

순간의 느낌표


우리는 언젠가부터 = 소비로 생각하고 있다. 휴가를 받으면 어디로든 여행을 간다. 어디로 여행을 간다는 것이 휴식의 자부심이 되었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멋진 곳으로 떠난다는 사실은 마치 휴가의 품격인양 착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나도 그랬다. 얼마나 잘 쉬고 얼마나 큰 에너지를 얻었는지보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큼 멋진 여행지를 떠나는 것, 그리고  사진을 남겨 내가 '멋지게' 쉬었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제대로 쉼을 주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시점. 방콕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방콕 여행을 찾다보면 호텔, 볼만한 곳, 먹거리. 그리고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은 쇼핑목록이다. 나는 무엇무엇을 샀고 더 사올걸 후회가 된다는 이야기등. 호텔 침대에 산 물건들을 죽 늘어놓고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사진 등등.


물론 방콕 뿐 만이 아니고 여러 블로그에서 그렇게 쇼핑목록을 나열한다.

      . 물론 평소에 필요한 물건을 저렴하게 사오는 것이    .        . 

 문제는 여행과 쇼핑이 주객이 전도되었을 때이다.


어느 한 매장에서는 눈이 뒤집혀 정신없이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기 시작했고 1시간 넘게 계속되자 남편은 드디어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냈다. 쇼핑을 하러 온거냐고 말이다. 내 것, 시댁, 친정꺼 다 사느라 오래 걸린거라고. 가족들꺼 사느라 오래걸린거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남편의 그 표정은 거의 경멸에 가까웠다.

(참고로 남편은 오래 쇼핑하는걸 무지 힘들어하는

스타일이다.)


원래는 그곳에서 소소하게 재미있는 것들을 구경하고 멋진 야경을 보며 맛있는 걸 먹기로 했는데, 결국 둘다 토닥토닥 싸우고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 호텔로 돌아왔다.


쉬러 여행와서 쇼핑에 집착하는 나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 것이 분명했다. 생각해보니 남편이 맞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사가지고 온 것들이 집에서 보면 그 빛을 상실했다. 꼭 필요한 물건도 아니었고, 그렇게 가치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그저 그런 물건 중에 하나였다. 그냥 방에 이리저리 뒹굴어 다니는 무리중 일부가 되어버리는.


게다가 내 취향에 맞추어 물건을 사다보니 선물을 받은 사람들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디자인이 서로 달랐을 때 '저게 더 이쁘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여행에서의 금쪽과도 같은 소중한 시간을 '쇼핑+남편과의 싸움' 과 맞바꾼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였는지  .


왜 그랬을까?


내가 정신없이 물건을 담았던 그 매장에는 대부분이 중국인과 한국인이었다. 방콕은 서양인들도 무척 많이 오는 여행지이다. 그럼에도 난 그 매장에서 파란 눈을 가진 사람을 못 본거 같다. 엄청난 중국인 무리와 한국인들이 앞다투어 물건을 담았던 기억만 있다.


외국인들을 많이 보았던 곳은 호텔 수영장 비치의자에 누워 책을 보는 모습.     한 잔을 마시며 쉬고 있는 모습.

그 모습은 어느 호텔을 가든 늘 보는 모습이다. 반면 한국인들은 수영은 뒷전이고 예쁘게 사진찍는 인증샷에 집중한다.


 휴식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일상을 떠나 버리고 오는 것. 무언가 잔뜩 사서 다시 짊어지고 가는 여행이 아니라 최소한으로 가서 많은 경험들을 가지고 마음은 더 가벼워지는 것.


조금더 나아간다면, 떠났을 때보다 돌아왔을 때

조금이라도 shift된 자신을 발견하는 것( 물론

긍정적인 쪽으로)

그것이 진정한 쉼이자 진정한 여행이라는 것을 30대 중반, 뒤늦은 나이에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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