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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꿍 Jan 26. 2016

여행 중 천재지변

여행 중 느낌표


며칠 동안 제주도에 폭설로 많은 사람들이 공항에 갇혔다.


몇 년 전 나 또한 필리핀의 작은 섬 보홀에서 태풍으로 갇힌 적이 있었다. 그 때 경험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보홀은 세부에서 배로 두 시간 타고 들어가는 작은 섬이다.  4일 동안 너무도 행복한 여행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태풍이 온 것이다. 배를 타고 두 시간을 나가야 세부 공항을 갈 수 있는데, 큰 일이 난 것이다. 태풍으로 인해 국가에서 모든 해상활동을 금지하였고, 세부로 가는 모든 여객선이 취소되었다.


 여행지에서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그야말로 난리가 난다. 모든 배가 취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항구에는 수많은 여행객들이 언제 배가 출발할지도 몰라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 관경을 보고 있자니 너무도 두려웠다. 우리도 정체모를 줄을 서고 있었다.


그 때 무섭게 생긴 필리핀 아저씨가 슬그머니 우리 쪽으로 오더니, 자기가 개인 배가 있으니 그걸 타겠냐고 들이댔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못들은 척 했는데, 옆에서 우리 신랑이 관심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한국인 10명을 모아와라. 한 명당 5만원씩 내고 타라.”

한국 사람이 많진 않았지만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 환갑여행을 기념으로 온 4명의 가족, 몇몇 혼자 여행 온 배낭여행객, 2명의 싱가포르인까지 10명은 모았는데 좀 겁이 났다.

“이거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래요.”

4명의 가족 중 둘째 아들이 보홀 리조트 한인 사장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한 말이다.

 나도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그동안 너무도 즐거웠던 파라다이스는 일순간 탈출하고 싶은 지옥으로 전락했다.


한국인들이 전날 경비행기를 타고 나갔다는 말도 들려왔다. 과연 내일은 나갈 수 있을까? 고민이 꼬리를 물면서, 빨리 여기를 벗어나고 싶었다. 두렵긴 했지만 눈 딱 감고 이 배를 타기로 했다.

 배는 항구에 있지 않았고 그 필리피노들은 우리를 차에 태우고 보홀 섬 저 끝자락으로 갔다. 아마도 해상활동이 금지되었는데 배를 띄우려니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간 모양이었다.


그렇게 1시간을 차를 타고 외진 곳으로 우릴 데리고 갔다. 구명조끼가 있냐고 수십 번 미리 확인할 때는 있다고 해놓고 덩그러니 작은 통통배 안에 구명조끼는 어디에도 없었다. 배를 타기가 두려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에 생명을 맡긴 채 배에 올랐다.


 파도가 양쪽으로 심하게 몰아쳤다. 배는 심하게 흔들렸고,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은 겁에 질린 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이러다 쥐도 새도 모르게 필리핀 바다에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이 들자 너무도 두려웠다. 남편 또한 내 손을 꼭 잡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부로 가는 육지는 금세 닿을 듯 보였지만 2시간 반을 지나서야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를 내려준 마을은 세부 공항에서도 3시간 이상 떨어진 곳이며, 관광객은 전혀 보이지 않는 오지마을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낯선 이방인들을 보기 위해 전부 구경나왔으니 말 다했다.

“차이니즈? 자패니즈?”

“노노. 코리안”

“아 코리아니즈”

필리핀이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라 세부, 보홀을 여행할 때 불편함이 없었다. 그런데 사실 필리핀인들은 자기 나라 말인 따갈로어가 있고 같은 나라 사람끼리는 무조건 따갈로어로 말한다. 이 동네는 영어를 거의 못 알아들었다. 커뮤니케이션에 완전 비상등이 들어왔다.


 나는 빨리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했지만, 이 동네에는 택시가 없다고 했다. 단지 동네 가장 부호인 사람이 큰 벤이 있으니 그걸 빌려 타고 가라고 했다.

(    .  

주인과 협상하는데 1시간이 걸렸다ㅜ 내가 대표중

한명으로 뽑혀서 남편과 잠시 헤어지기까지ㅠ)


우여곡절 끝에 그 벤을 타고 공항을 도착했지만, 안타깝게도 눈앞에서 우리 비행기는 이륙하고 있었다. 다시 비행기 표를 끊고 그 다음날 안전하게 한국을 돌아왔다.

 

우리는 아직도 그 태풍이 몰아치는 통통배를 탔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진짜 죽을 뻔했다. 지금 생각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날 만큼 아찔한 순간

.  나중에 이야기 해보니 남편도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때 그 배 안에서 내가 느낀 게 있었다. 이렇게 될 건데, 그동안 왜 그렇게 임신에 집착하면서 힘들게 나 스스로를 괴롭혀 왔을까. 그냥 즐겁게 살면 되는 건데, 무엇을 그렇게 다 가지려고 안절부절 했을까. 만약 무사히 살아 돌아간다면, 현실에 만족하며 즐겁게 살아야지.  그때 느낀 게 아마 진짜 일 것이다.


 그 당시에는 절대 향후 10년간 필리핀은 오지 말아야지. 몇 년간은 해외여행도 가지 말아야지 해놓고, 다시 어디 갈지 정하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은 역시 망각의 동물이다.


다시 가고 싶은 보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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