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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꿍 Jan 28. 2016

내 인생의 쉼표, 1년간의 휴직

셀프 난임 치유기

     

1년 쉬는 것은 어떨까?’    

   

복잡하게 꼬인 내 인생.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일상. 원하면 원할수록 몸과 마음은 더 다쳐갔다. 나는 구렁텅이에 빠진 나를 구해주고 싶었다. 아니 구해주어야만 했다. 회사, 병원 반드시 둘 중 하나는 그만두어야 숨을 쉴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쉼 없이 달려온 시간은 점점 나를 황폐하게 했고, 아프게 했고, 지치게 했다. 어깨 위로 무겁게 지고 있던 것들을, 그리고 손 안에 꽉 쥐고 있던 것들을 잠시 놓고 싶었다.      


 회사와 시험관 일정을 병행하는 것은 여러모로 어렵다. 첫째로는 시간을 내는 것이 힘들다. 난임 전문 병원들이 집 앞, 회사 앞에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대부분의 난임이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옴을 감안할 때 회사를 다니며 시술하는 것은 효율성 면에서도 떨어진다. 어느 책에서 보기를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여 근육과 심장 등 생명유지에 꼭 필요한 주요 장기에 피를 몰아준다고 한다. 그러니 생명에 큰 영향이 없는 생식기 쪽에는 혈액순환이 다소 우선순위에 밀린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난임 환자들은 절대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일을 하다보면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막을 방도는 없다.


 시험관 일정과 회사를 병행하기 어려운 현실은 많은 난임 여성이 퇴사의 길을 선택하게 했다. 그러나 이미 공무원들은 난임 휴직이 일찌감치 생겨서 사용하고 있었고, 일반 회사들도 사회적 트렌드에 맞춰 난임 휴직이 조금씩 생겨나는 분위기였다. 마침 우리 회사에도‘난임 휴직’이라는 제도가 생겼다. 시험관시술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경우 한 번에 1년, 최대 2년까지 휴직을 쓸 수 있는 제도가 생긴 것이다. 드디어 숨통이 트였다.      


 이왕 쓸 거라면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시술에 집중하려는 목적으로 1년간의 휴직을 쓰기로 결심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는 난임 휴직을 쓰는 것은 무척이나 용기가 필요했다. 남들과 다른 선택, 주변의 시선도 신경이 쓰였지만,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휴직으로 인해 다치게 될지도 모르는 내 자신이었다. 만약 1년간의 휴직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간 동안 임신이 되지 않는다면? 과연 나는 또 얼마나 더 절망할 것이며, 어떤 마음으로 복직을 할 수 있을까.


무척이나 많은 고민 끝에 휴직을 하기로 결심했다. 임신도 좋지만, 그 당시 너무 지쳐있었기 때문에 지친 나를 일으키고 싶었다. 나에게 진정한 휴식을 주고 싶었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부서원들의 배려와 이해 덕분에 드디어 난임 휴직을 쓸 수 있게 되었다. 회사는 너무 바빴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자기 몸 챙기기도 바쁜 와중에 동료의 개인적 사정에 배려를 보내준 부서원에게는 지금도 너무나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휴직 전 마지막 퇴근을 할 때가 생각이 난다.

휴직해서 좋겠다. 부러움 반, 그동안 힘들었구나. 위로 반.

하루 종일 눈물을 꾹꾹 참았다.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눈물을 하루 종일 잘 참았는데, 나보다도 한참 어린 후배가  쿠키를 선물로 주면서 ‘꼭 건강해지세요.’라고 얘기하는데 참고 있던 눈물이 펑하고 터졌다.


내일부터는 회사 안가도 되니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거 같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내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인간적으로 나를 걱정해주는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도 밀려왔다.      


회사를 이렇게 길게 쉬게 된 건 처음이었다.  잠시 뒤로 물러나서 내 인생을 다시 되 돌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일 년의 휴직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훗날 내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난 휴직 기간은 진정한 나를 찾아준 너무나도 값진 시간이었다.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걸 깨우 칠 수 있었던 보석보다 값진 시간들이었다.     


 자고 싶은 만큼 실컷 자고, 쉬고 싶을 만큼 쉬고,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아무것도 안했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육아 휴직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고, 보고 싶은 공연을 찾아다녔다. 평소에는 시간이 나지 않아 할 수 없었던 것들을 배웠다. 하와이 악기 우쿨렐레도 배우고, 연필 인물화와 뜨개질도 배우고, 그리고 여행 작가 과정도 수강했다.

 임신을 위한 노력도 했다. 아침, 저녁으로 운동을 거르지 않았고, 왕뜸이 자궁에 좋다고 하여 왕뜸을 해주는 한의원을 매일 갔다. 마음이 편안해 지기 위해 명상을 하고 해독주스를 만들어 마셨다.

그리고 책도 실컨 보았다. 인생공부를 위해 닥치는

대로 다양한 책을 본 것은 마음 수련에 큰 도움이

되었다.


 복잡하게 채워져 있던 나를 비우는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앞만 보며 달리느라 보지 못하고 지나친 행복한 일상에 대해 깨우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작아져버린 내 자신을 틀 밖으로 이끌어 준 것도 이 시간들이었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하나하나 지워나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방송국 공개방송 방청하기, 뜨개질 배워서 식구들, 친구들 선물하기, 고등학교 (모교) 방문, 요리 배우기, 양말인형 만들기, 동네 친구 사귀기, 엄마 생신 상 차려드리기

 

 하루하루가 너무도 재미가 있었다. 매일이 주말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생활에 만족 할수록 다시 회사를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신기한 것은 여행은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회사를 다닐 때는 너무도 간절히 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쉬고 있으니 여행이 그리 당기지 않았다. 나는 제이슨 므라즈의 음악을 참 좋아하는데 ‘Everything is sound’노래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You don't need a vacation when there's nothing to escape from.’ 

 도망치고 싶은 곳이 없다면 여행은 필요 없다. 우리는 벗어나고 싶은 곳이 있기 때문에 여행이 필요한 것이다.  


아. 그래서 구나. 나는 지금 내 삶을 즐기고 있기 때문에 여행이라는 게 필요 없구나.

 

 쉬어 가기를 잘했어.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목표 달성은 하지 못했지만 지난 휴직기간은

나의 많은 것을 다르게 바꾸어 놓았다. 처음으로

멈춰서 나를 내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서 벗어나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로지 내가 나만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


복직한지 7개월째. 그시간이 너무도 그립다.

그리고 무척 휴가를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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