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꾹꿍 Feb 02. 2016

자연에서 살고 싶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와 책 '월든'

      

나의 상상 속에는 이런 집이 있다.


 앞으로 강이 흐르고 뒤로 산이 있는 마을에 마당이 있는 작은 집이 있다. 서재는 2층 인데 전체 벽면이 창으로 되어 있어서 책상 위에서 앉아 있으면 바깥 경치가 한 눈에 들어온다.

(글이 술술 써질거 같다^^)

바람에 일렁이는 큰 포퓰러 나무의 잎사귀가 햇빛에 반짝거린다. 마당엔 큰 개 2마리와 작은 강아지 2마리가 있고 과일과 채소는 종류별로 조금씩 심어 놓았다.     

  

우리 부부는 자연을 너무도 사랑하고 언젠간 도시생활의 소음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 푹 파뭍혀 살고 싶은 꿈이 있다.      


그런데 한 영화와 한 책이 이런 내 마음속 깊은 곳의 소망을 일으켜 주고 있다.


바로 이 두 집의 주인공이다.   

   


좌측의 집 주인부터 설명하자면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이치코이다.


선배의 추천으로 보게 된 이 영화는 시작부터 탄성을 자아냈다. 자전거를 타며 숲 속으로 들어가는 소녀. 영화 속 피톤치드 가득한 공기가 마치 내 방 안을 가득 채운 듯 복잡했던 머릿 속을 인공호흡하기 시작했다.      


20살 남짓 되어보이는 조용한 소녀 이치코는 직접 기르고 자연에서 채취한 것들로 조근조근 요리를 잘 해먹는다.  영화는 일본판 삼시세끼라고 불린다. 영화는 여름/가을편과 겨울/봄편으로 2개로 나뉜다. 각 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와 기르는 농작물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계절의 음식들.


조용히 이치코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억지 웃음을 자아내거나 급격한 스토리라인으로 시선을 잡는 영화와는 정 반대다. 조용한 호흡, 그리고 차분한 진행.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평화로워지고 편안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차분하게 정성껏 만들어서 이렇게 맛있게 먹는다.  '오이시이~'

그렇게 자신이 직접 심고 기르며 길들인 농작물들을 먹는 것.

뱃속 뿐 아니라 영혼까지 채워지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특히 맛있어 보인 것은 말린 고구마 화로구이와 밤조림. 겨울이라 그런지 요런 걸 만들어 놓고 이불 속에 들어가 티비를 보며 한 개씩 먹고 싶다.

15분만에 뭔가를 만들어내는 쾌감이 아니라 요리 자체에서 정체성을 찾는 순수함이 있다. 조미료를 넣지 않고도 깊은 맛이 날 거 같은 느낌이랄까. 각각의 식재료들이 가진 이야기와 과정이 있다.


물론 스토리 라인도 있다. 함께 살던 엄마는 어느날 불현듯 말도 없이 이 집을 떠난다. 이치코도 성인이 되어 도시생활을 했지만 도망치듯 고향으로 다시 내려왔다. 잘 지내는 거 같지만 이치코는 아직은 고향에 정착하는 것을 두려워 한다.  잔뜩 움츠리고 서서히 소통을 시작한다.    

 

그녀처럼 같은 동네 친구인 유우타도 도시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가 했던 말이 인상적이다.


유우타) 말은 믿을 수 없지만 내 몸이 느낀 거라면 믿을 수 있어.

자신의 몸으로 직접 체험해서 그 과정에서 느끼고 생각하며 배운 것.

자신이 진짜 말할 수 있는 건 그런거잖아.

아무것도 한게 없는 주제에 뭐든 아는 체하고 남이 만든 걸 옮기기만 하는 놈일수록 잘난 척 해. 천박한 인간이 하는 멍청한 말을 듣는데 질렸어.      


도시에서는 모르는 것도 아는 척. 심지어 남이 한 것을 자기가 한 것처럼 옮기는 사람들.

그러나 자연 속에서는 오직 몸으로 직접 일궈내야 얻을 수 있다. 거기엔 어떤 요행도 거짓말도 없다.


이쯤에서 두번째 집의 주인공을 소개해야 겠다. 한 참 위에 두 집 중에 우측 작은 통나무집의 주인공은 책 '월든'의 소로우이다.


소로우 또한 도시생활을 하다가  숲 (월든호수) 으로 들어왔다. 미국의 월든 호수에 가면 소로우의 통나무집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삶을 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보기 위함이었다. 다시 말해 오직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만을 마주하면서, 삶이 가르쳐 주는 것들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깨닫고 싶었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그토록 소중한 일이기에 나는 진정한 삶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숲에서 일종의 실험을 한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얼마만큼의 물건들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한지 말이다. 왜 우리는 그토록 많은 것을 가지려 하는지, 그 과정에서 더욱더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고 있는지 깨닫기 위해서이다.


'리틀포레스트'의 유우타가 한 말과 비슷한 말을 소로우도 했다.


인간이 향상하려면 자신의 무지를 항상 기억해야 하는데, 자기가 아는 바를 수시로 사용해야만 하는 그가 어떻게 항상 자신의 무지를 기억할 수 있겠는가?      


지혜가 많은 사람일수록 '모른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한다. 모르는 것을 인정해야 겸손한 태도가 나오고 타인의 말에 귀기울인다.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무지'라는 것.


  책 '월든'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편에 더 자세히 해야겠다.


'월든'의 소로우, 그리고 '리틀 포레스트'의 이치코.

둘다 도시 생활을 하다 숲으로 왔다. 도시 생활의 퍽퍽함과 감동없는 일상의 대안은 숲일까? 자연일까?

그 또한 잘 모르겠다.  영화를 통해, 그리고 책을 통해 자연 속에 사는 것은 어떠한 것일지 대리 경험을 해보기를 추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삶과 죽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