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의 '작게 걷기'
여행을 생활처럼 하고 생활을 여행처럼 해봐.
여행지에서 랜드마크만 찾아가서 보지 말고 동네 카페에서 동네 사람들과 사는 이야기도 하고 벼룩시장가서 구경도 하면서 거기 사는 사람처럼 여행하는 거야. 그리고 생활은 여행처럼 해. 이 도시를 네가 3일만 있다가 떠날 곳이라고 생각해.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거기에서 3일밖에 못 머물기 때문이야. 마음의 문제야.
(박웅현, 여덟단어)
박웅현씨가 딸에게 한 말이다.
여행을 생활처럼, 생활을 여행처럼.
이 말이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했는데 '여행을 생활처럼, 생활을 여행처럼' 하는 책을 만났다.
작게 걸으며 동네든 여행지든 사진이 아닌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감성을 담은 책이다.
그 그림과 글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이다’라는 작가에 푹 빠져들었다.
궁금했다. 길거리 ,지나가는 사람들 어떻게 그리는 것인지.
사진을 왕창 찍고 와서 집에 와서 그리는 것인지. 그런데 아니었다.
나도 처음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을 땐 언제나 시간에 쫓겼다. 한정된 시간에 좋다는 건 다 보고, 맛있다는 건 다 먹으려니 늘 전투적으로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길에 있는 간판 하나도 놓치기 싫었다. 수천 장의 사진을 찍었고 수없이 많은 것을 모두 기록해 기억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행 다녀온 후였다. 여행에서 찍은 엄청나게 많은 사진들과, 탐나서 챙겨온 여러 가지 잡다한 물건들이 돌아와서는 그때처럼 하나하나가 신선하고 신기하지 않았다. 점점 의미는 퇴색했고 수천 장의 사진 중 내가 기억하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그 후부터는 여행을 다니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사진을 보며 그리는 것보다 여행지에서 그리는 것이 훨씬 생동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다보니 어쩔 수 없이 한 장소에 오래 있게 되었다. 같은 장소, 같은 사물도 훨씬 오래 바라보아야 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많이 보고, 많이 다닌다고 꼭 좋은 게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이다의 '작게 걷기' 중)
작가는 여행을 다니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한 장소에 오래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오히려 더욱 더 많이 보고 많이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여행을 생활처럼'의 의미가 아닐까?
일반적으로 어딜 가야겠다. 라고 정하면 인터넷을 뒤진다. 각종 인터넷을 통해 맛집, 꼭 가야하는 곳, 유명한 숙소를 검색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언제 다시 또 올 수 있을지도 모르니 왔을 때 중요한 랜드 마크, 맛집, 쇼핑목록을 다 해야 후회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동안 최대한 많이 둘러보고 많이 먹어보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쓴다.
그러나 여행을 끝나고 돌아왔을 때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여행 다니며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대고 잠깐 경치를 감상하며 ‘나는 보았어. 나는 느꼈어’ 라는 게 얼마나 거짓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똑같은 경치를 30분간 보며 지나다니는 사람과 간판과 나무와 나무위에 올라간 새들까지 그림을 그리며 관찰하면 얼마나 더 깊이 볼 수 있을까?
여행을 일상으로 바꿔버리는 전환이다. 보고 보면 또 보이고 그리다 보면 느끼게 되고 과연 내가 살고 있는 동네라도 난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갑자기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는데..)
나는 그림 대신 여행지에서 글을 쓴다. 아무것도 안할 때보다 여행지에서 글을 쓸 때, 쓰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제대로 보고 느낀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더 많이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여행을 일상인 것처럼 여유롭게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더욱더 느끼며 보내는 것은 얼추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일상을 여행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
일상을 여행처럼 보내려면 여행했을 때의 마음을 떠올리면 된다. 똑같은 길을 그냥 왔다갔다 똑같은 메뉴를 먹지 말고 같은 길도 때로는 이쪽으로, 다음엔 저쪽으로 가보고, 안 먹어본 메뉴도 하나씩 시켜서 먹어본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는 것을 즐기고 새로운 것들을 배운다. (회사에서 이런저런 동호회를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가 있다.)
그리고 내가 매일 가는 길이라고 해도 자세히 눈여겨 보면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다.
아침 출근길은 공원을 지나쳐서 전철을 타는데 매일 걷는 공원이지만 자세히 보면 매일이 다르다. 꽃이 피는 정도도 다르고, 각각의 나무와 풀들이 자라는 속도와 꽃피는 순서도 다르다.
나무도 각기 다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써있는 문구들도 자세히 보면 너무도 새롭다.
너무 많이 보려 하지 말고, 본 것들을 소화하려고 노력했으면 합니다.
참된 지혜는 모든 것들을 다 해보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개별적인 것들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끝까지 탐구하면서 생겨나는 것이다.
길거리의 풀 한 포기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아무 생각 없이 먹는 간장게장에서 새로운 세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깊이 들여다본 순간들이 모여 찬란한 삶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박웅현의 여덣단어 중에서)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여러 변화를 주어 마치 여행하듯 하는 것이다. 맨 날 보던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책 말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 가진 책도 읽어보고 취향이라는 것에서 조금 벗어나 이것 저것 해보는 것.
정리를 하자면 여행도, 생활도 깊이 들여다보자는 의미인거 같다. 여행에서 빨리빨리 많은 것을 보고자 하면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과 같고 일상에서 마치 눈을 감은 것처럼 살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행에서는 천천히. 일상에서는 다양하게.
여행을 생활처럼, 생활을 여행처럼.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 말임이 분명하다. 결국 마음가짐의 문제라는 거겠지. 당장 일상을 여행으로 바꿔보는 시도를 해봐야겠다.
* 특히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맘에 든다.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사는 것만큼 행복한게 있을까?
작가의 행복한 마음이 전해진다.
즐거워 정말 즐거워
그림 그리는 건 정말 즐겁고 즐겁구나
언제까지나
잊지 말았으면
또, 변하지 말았으면
지금의 이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