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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꿍 May 04. 2016

착한 딸 콤플렉스는 이제 그만

미움받을 용기


나는 동생이 부러웠다. 노력하지 않고도 혼나지 않았고 부모를 위해 애쓰지 않아도 사랑받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기대는 내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그 기대를 충당하며 사는 것이 내가 지켜야할 의무라고 생각했다.          .


그러다 할머니가 사촌동생과 통화하는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우리 사촌들 중에 가장 할머니에게 애교 있게 자주 연락하고 잘하는 동생이 있다. 내가 전화하면 손녀딸이 왠일이냐며 울먹거리시는데 사촌동생에

누구셔~ 왜 그동안 전화안한거여’ 라고 투정을 부리시는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아!’하고 깨달았다.

투정은 받아줄 사람에게 부린다는 것을.


부모님의 계속된 기대와 투정이 나에게 쏠리는 것은 받아준다는 기대와 안심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받아준다는 전제하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사랑해준다는 강력한 믿음이 있을 때 상대방에게 쉽게 토라질 수 있다. 우리가 부모님에게 함부로 하는 것은 ‘엄마니까 내가 이래도 날 사랑해줄거야.’라는 강력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자식은 안 아픈 손가락 없듯이 다 똑같지만 또 다 다르다고 한다. 위안이 되는 아이, 걱정이 되는 아이.      


부모님에게 나는 어떤 자식일까? 부모의 기대를 받는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그만큼 부담감이 있다. 친한 모녀 사이, 부모와 깊은 관계를 맺는 사이는 좋게 말하면 효녀, 나쁘게 말하면 마마걸의 딱지가 주어졌다.     

 

결혼을 하고도 착한 딸 콤플렉스는 더 심해졌다. 나는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딸, 믿음직한 딸, 부모를 위해 애쓰는 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되지 않는 임신에도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엄마와 얼기설기 엮여 있는 수십개의 줄 중에 몇 가지는 조금 풀어 서로에 대한 죄책감이나 기대를 느슨하게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기대를 충족하는 것을 그만 두기로 했다. 이제는 부모님이 원하는 딸, 남에게 늘 자랑거리를 안겨주는 딸이 아니라 그냥 자신의 삶을 사는 딸이 되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부모님이 섭섭해 하실 텐데.. 나를 기다리고 계실 텐데..

라는 생각을 지우기로 했다. 부모님의 기대에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면 마음이 충만해야 하는데 항상 그럼에도 늘 죄책감이 따랐다. 그래서 이제는 내 방식대로 죄책감을 떨치고 내 삶에 집중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나름의 효도를 하기로 했다.


학교 후배 중 집안이 어려운 친구가 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 사업이 잘 되지 않아 가세가 기운 이후로 후배는 집안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 지금도 자신이 번 돈의 일부만 떼고 나머지를 전부 부모님에게 보내드리고 있다. 동네에선 둘도 없는 효자라고 칭찬이 자자하지만 후배의 속마음은 달랐다.


‘제 인생은 뭔지 모르겠어요. 돈을 대부분 다 보내드리지만 집안이 나아지는 거 같지도 않고 제 삶은 어떻게 되어 가는지 모르겠어요. 행복하지 않아요.’      


후배는 착한 아들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계속 착한 아들이 되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끙끙 앓았다.      



부모님들은 알고 있을까? 끊임없이 자랑거리를 제공하는 아들딸이 되기 위해 자녀들이 자신의 행복을, 순간의 즐거움을 포기할 때가 많다는 사실을.

 자녀들도 부모의 희생을 너무 의식하지 말아야 좀 더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그래야 인생의 목표가 ‘부모가 자랑스러워하는 성공’이 아니라 ‘나의 행복’이 될 수 있다. 결국엔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효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정은길 저, '나는 더 이상 여행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중에서 )      



‘이렇게 하면 서운해 하실거야’ 라는 생각을 지워버리자 마음이 놀랍게도 평온해졌다. 동생처럼 나도 때로는 제 멋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눈치 보지 않고 살기로 했다.      


것은 부모님과의 이야기에 한정되지 않는다. 착한 친구 콤플렉스, 착한 동료 콤플렉스.. 우리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움받을 용기’ 라는 책이 작년에 불티나게 팔렸다.

우리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굉장히 민감하다. 제목이 주는 안도감이 있다.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줄을 긋고 표시를 해가며 여러번 읽었다.      




‘그 사람’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지 말라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타인에게 인정받기 원하는 마음을 부정한다네.

타인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일세. 도리어 인정받기를 바라서는 안 되네. 타인의 인정을 바라고 타인의 평가에만 신경을 기울이면, 끝내는 타인의 인생을 살게 된다네.


타인에게 인정받는 삶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인정받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삶을 택할 것인가.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어.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일세.

행복해지려면 ‘미움받을 용기’도 있어야 하네.      


- 미움받을 용기 중에서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 사람의 20%는 나를 싫어하고 세상 사람의 70%는 아무 생각없고 세상 사람의 10%만이 나를 좋아해주죠     




내가 아무리 모든 사람한테 사랑받기 위해서 노력을 해봤자 둘은 날 싫어하고 일곱은 관심없고 하나는 나를 좋아해요.   

세상 사람 중에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기에,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세상에는 나를 미워할 사람이 최소 20퍼센트가 있기 때문에 내 맷집을 길러야 된단 얘깁니다.

이상한 것도 아니고 저 사람도 나를 미워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거예요.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     


공지영 작가는 딸에게 말한다.

‘엄마가 나무라는 것은 ’너의 게으름‘이지 ’게으른 너‘가 아니라는 거야.’ 우리가 비난에 상처 입는 것은 대개는 이 둘을 잘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결론은 가족을 비롯한 타인의 눈치를 너무 보지 않고 살면 된다. 내 삶을 이끌어 가는 주인은 나다. 타인에게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렇다고 막 대하자는 게 아니다. 남을 너무 의식하느라 자신의 행복을 잃어가지는 말자는 말이다.


자존감이 충만할 때 미움받을 용기도 생기지 않을까? 나를 사랑하자. 결론은 오늘도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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