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속에 자란 아이의 기록
우리 언니로 말할 것 같으면
학창 시절 내내 반장과 학생회장을 도맡았고,
여섯 살에 한문을 떼며 늘 공부를 잘하던 사람이었다.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이미 ‘위인전’에 나올 법한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언니를 키우는 내내 성에 찬 자식이었다고 했다.
나 역시 아이를 낳고 나서야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나는 언니와 정반대의 아이였다.
태어나자마자 많이 울었고, 한글도 엄마에게 매 맞으며배웠으며
공부보다는 자유롭게 크는 쪽에 가까웠다.
내게 언니는 늘 비교 대상이었다.
가족도, 친척도, 이웃도
“어쩜 저렇게 다를까”라는 말을 쉽게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언니는 하루를 조잘조잘 풀어놓았지만
나는 엄마가 물어야 겨우 대답했고
할 말이 없어 “기억이 안 난다”고 둘러대기 일쑤였다.
그랬더니 엄마는
“넌 참 말을 조리 있게 못한다”고 했다.
지금에 와서야 이 이야기를 웃으며 할 수 있는 건
내가 꽤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화장품을 팔 수 있을 만큼.
글도 못 쓰는 줄 알았다.
중학교 때 반성문 하나로 선생님의 마음을 돌리기 전까지는.
그 뒤로는 친구들 반성문을 대신 써주게 되었고
어느 순간, 쓰는 일이 재미가 되었다.
나는 늘 너무 크고 높은 벽 앞에 서 있었다.
그래서 넘어서기가 어려웠고 그 시간은 꽤 괴로웠다.
비교는 아무리 마음이 단단한 사람에게도 상처를 남긴다.
그래서 나는 자라면서
언니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랑받으려 애썼다.
내 주장을 분명히 말했고,
어른들이 원하는 센스를 빠르게 읽었으며
엄마의 말은 귀등으로 흘리는 재주도 늘었다.
나는 안다.
비교는 나무의 뿌리를 썩게 만든다는 걸.
요즘 나는 둘째 조카를 보며 자주 마음이 시큰해진다.
나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아서.
사랑스럽고, 능력이 있는데도
괜히 움츠러드는 모습이 안쓰럽다.
잘난 언니를 둔 둘째의 비애일까.
그래서인지 나는 그 아이에게 마음이 더 쓰인다.
한 번이라도 더 쓰다듬어 주고
무엇이든 잘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우리 가족은 모두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부디 너도
너만의 길을 잃지 않고 잘 찾아가기를.
K-장녀의 비애가 있다면
잘난 언니를 둔 K-둘째의 비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