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고통과 통제의 쾌락에 대한
고찰

꼬꼬마의 글공간

by 꼬꼬Ma


7장 - 고통과 통제의 쾌락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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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거부할 수밖에 없는 부정적인 감각일까?
신체적인 고통
마음의 고통
학교생활의 고통
직장의 고통
이별의 고통
부모와의 갈등 고통
친구 사이의 갈등 고통
생계에 대한 고통
마음이 느끼는 모든 이 세상의 부담감에 대한 고통들은 과연 인간이란 존재에게 벗어나야 하는 부정들일까?
긍정의 힘, 성공하는 법, 내면의 치유 등으로 우리는 수없이 고통들을 완화시키고 치료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모든 고통들은 이겨내야 되고 치료해야 되는 악이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고통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우리를 망치게 된다.
당연히 고통은 인간에게 좋지 못하다는 인식으로 신체에도 악영향으로 비례하게 된다.
학습에 대한 영향은 인간에게 아주 크다.
인간은 애초에 두뇌에 본능 말고는 아무것도 입력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나 이 세상의, 이승의 모든 것들을 학습하고 교육받고 주입받아 터득하기에 당연히 우리는 그렇게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고통은 인간에게 어떤 것일까?
인간은 태초부터 고통에 익숙하다.
태어나면서부터 고통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핍박에 의한 고통의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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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는 과연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지구, 나라, 지역, 학교, 직장, 유치원 등 체계 속에 갇혀 통제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태어나면서부터 통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지금 자신이 속해있는 통제의 수단은 어떤 것인지 머리속에서 떠오를 것이다.
통제의 수단은 고통과도 같은 의미를 가진다.
통제는 곧 고통이다는 것이다.


인간마다 버틸 수 있는 고통의 강도는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적당한 고통이 중요한데 인간 사회는 보편화라는 명목하에 고통의 강도를 비슷하게 만든다.
직장의 사직, 비행 청소년, 유치원에 다니기 싫어 때쓰는 어린아이 등 인간은 통제의 고통에 강도를 버티지 못할 때 이탈하려는 습성을 가진다.
고통이란 신체적, 정신적으로 영향을 주기에 곧 생존본능을 자극하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정 고통의 강도를 넘어섰을 경우 반사회적 행동을 하게 된다.
이렇듯이 통제 수단은 곧 고통과 항상 함께 한다.


과거 통제 수단의 고통에 반역하는 인간들이 많았지만 우린 똑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통제에 의한 고통의 틀을 벗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제, 고통 속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벗어나 새로운 나라를 꿈꾼다 해도 결국은 인간을 사용하기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통제와 고통이다.
그리고 그 수단 속에서 벗어나려 해도 결국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벗어나지 않을까?
쾌락을 느끼기 때문이다.
통제, 억압, 고통 속에서 우린 안정감과 쾌락을 느낀다.


예를 들어보자.
나쁜 남자를 만나는 여자는 왜 헤어지지 못할까?
남자의 폭력에 시달리는 여인은 왜 이별하지 못할까?
의처증이 심한 남자를 왜 계속 만나는 것일까?
예로 좋지 못한 남자만 언급했지 세상은 나쁜 남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는 것을 명심해 주었으면 한다.


앞서 얘기했듯이 고통의 강도가 크면 분명 관계를 이탈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주위의 조언도, 얘기도, 만류에도 그 통제와 억압을 잡고 있다.
고통과 통제의 쾌락을 맛본 사람은 분명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는 무미건조함을 버티지 못할 것이고 다시 나쁜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렇듯 국가적 차원의 큰 기준에서의 통제 외에도 관계에서 오는 통제와 억압도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쾌감과 쾌락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별하고 나서 왜 오랜 시간 힘이 들까?
관계의 우위에 있는 사람은 그리 힘들지 않다.
우위에 있다는 것은 상대방을 통제하고 억압하고 고통을 준다는 것이다.
고통과 통제를 받았던 대상은 이별 후에도 어느 정도 기간 동안 힘이들게 된다.
심한 경우는 극심하게 상대방에게 매달릴 것이다.
고통에 의한 쾌락의 금단증상은 인간의 이성을 완전히 덮어버린다.
그렇기에 고통으로 느낀 쾌락의 정도에 따라 처절할 정도로 매달리거나 고통의 금단증상을 이별 후 아파하는 것으로 대체하게 된다.
관계의 우위에 있던 대상이 뒤늦게 마음이 아프고 뒤늦게 연락을 하며 매달린다면 이는 성적인 욕구와 관계가 있다. 이 부분은 주제에서 벗어나니 언급하지 않겠다.


우린 지속적인 통제와 고통이 필요하다.
항상 삶 속에서 통제와 고통을 받고 있다.
이것은 긍정도 아니지만 부정도 아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기준은 될 수 없다.


***
인간은 태어나면서 아주 악하지만 선해야 된다는 것을 평생 주입받으며 악을 통제한다.
그렇기에 본성에는 항상 악이 존재한다.
통제, 고통, 억압 등에 쾌락을 느낀다는 것은 악하기에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다면 왜 통제와 고통을 보편화하듯 인생과 함께하게 만들면서 그것을 부정으로 강요할까?
그것은 인간을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을 위한 존재가 아닌 다른 인간을 위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악의 부분을 감소시켜야 할 필요성이 많다는 것이다.
악의 본성에 의문을 크게 가지게 될수록 쾌락의 행위가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통제, 고통 속에서 우린 안정감과 쾌락을 느낀다.
안정적인 삶이 안정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통제와 고통이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다.
신체적으로 약한 인간은 항상 무언가를 의존하여 생존한다.
그런 인간에게 통제는 곧 자신을 위한 관심이 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통제를 통해 악의 본성을 조절하여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울타리를 만든다.
통제의 울타리 안에서 과거는 신체적으로 강할수록 우위에 섰으며 현대로 올수록 두뇌 또는 돈이 결정하고 있다.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구도로 고통을 준다.
위에 언급했듯이 관계의 우위에 설수록 고통을 받는 경우가 덜하기에 쾌락의 목마름을 느끼는 경우가 많으며 그럴 경우 더욱 아래로 고통을 주게 된다. 이것이 고통의 쾌락이 변질되는 한 가지의 경우다.
하지만 통제 속의 고통에 의한 쾌락은 삶을 붙잡는 좋은 수단이다.


산으로 들어간 혼자 사는 인간은 그럼 무엇일까?
그것은 통제, 억압, 고통의 울타리가 주는 강도를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주입되어온 이생의 기준들일뿐 정답은 어차피 인간들의 기준일뿐이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통제, 억압, 고통 속에서 쾌락을 느끼고 있는가?



글이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 속에서 자신의 생각이 솟아났으면 좋겠다.
글의 내용을 부정하든 긍정하든 모든 기준의 정답은 인간이 아직 찾지 못 했다.
모든 진리의 가능성은 보편화로 결정지어왔을뿐 당신이 가지는 새로운 생각은 세상의 진리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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