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상수첩, 첫 번째 기록
국내 지하철역 중 환승 거리가 가장 짧은 곳은 아마 1, 4호선 환승역인 금정역일 거다. 뛰어가면 1초, 걸어가면 3초 정도 걸릴 텐데, 역방향으로 갈아타는 경우라면 좀 더 걸리기도 한다. 근데 심리적 마지노선이라는 게 있어서 말이야, 하행선을 타면 경기도 남부로 여행, 상행선을 타면 서울로 여행 가는 거 같은, 애매하게 있으니 어딜 가도 고향에서 멀어지는 그런 기분이 든다 이 말이야. '모 아니면 도지!' 했다가는 '시장이 반찬이네'를 몸소 체험하게 되는데, 합리적인 의심을 거듭하여 대한민국 인구의 5분의 1이 모여 사는 서울에 진출할 마음을 먹은 후엔 '그럼 어디로 가지'라는 마음을 다시 먹게 된다. 하도 먹어서 탕수육은 안 먹어도 될 것 같지만, 그래도 송죽장 한 번 가보기로 한다.
줄 서 있는 동안 미리 탕수육, 간짜장, 삼선짬뽕을 주문하곤 이런 종이를 받았다. 심심하지 말라고 퀴즈를 내주는가 보다. 역시, 유명한 중식당은 다르긴 다르다. 할 것도 없어서 풀긴 풀어봤는데, 도통 풀리지 않는다. 깐따삐아, 우주로 보내는 미스테리서클인 것 같다.
소스의 점도가 굉장히 높아 모아 모아 소스 인형을 하나 만들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시도하진 않았다. 기다리는 손님들과의 눈치싸움에서 늘 승복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딱 봐도 케첩 베이스 소스인데, 딱 봐도 그렇다는 건 정말 그렇다는 것이다. 다만 딱 그런 만큼 케첩 맛이 도드라지지는 않는다. 케첩 베이스 소스를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희소식이다. 근데, 그럴 거면 이 집에는 올 필요가 없지. 그래도 나는 케첩 소스를 좋아한다.
일반면의 약 1.5배 두께를 가진 우량면이다. 단 두 줄기만으로도 입안에서 압도적인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다람쥐가 좋아할 것 같은 그런 면이다. 면의 두께 때문일지는 몰라도 전반적으로 맛이 슴슴하게 느껴지는데, 다만 그건 면과 함께 먹었을 때의 얘기고 양념만 따로 먹는다면 아싸라비야 콜롬비야다. 근데 간짜장 시켜놓고 면 없이 양념만 먹는 건 '앙꼬 없는 찐빵'에서 '찐'을 뺀 것과 다름없으니까, 사부작사부작 비벼서 먹어보기로 한다.
특별하게 맛있는 부분을 찾지 못했다는 건, 떠드느라 바빴던 세 치 혀가 제 기능을 다 못했던지, 아니면 정말 별맛이 없었던지 둘 중 하나다. 나를 상처 입히는 건 그만하기로 언젠가 결정했으니까, 그냥 맛이 없었다고 결론 내리기로 한다. 기다리는 이유는 사랑을 혼자서도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퀴즈에 푹 빠져있기 때문인 것으로 다시 결론 내리기로 한다. 탕탕탕!
슴슴해서 오히려 좋았던 삼선짬뽕. 누가 더 자극적으로 위를 공격하는가, 누가 더 효과적으로 대설을 유발하는가. 누가 더 고통스럽게 혓바닥을 상처 입히는가. 모든 매운맛을 대변하는 새빨간 요리의 표준에서 살짝 벗어난, 평범해서 나쁘지 않았던 짬뽕이다. 언젠간, 삼선 쓰레빠들 사이에서도 이선, 일선 쓰레빠가 각광 받는 날이 오겠지. 개성이 표준이 되고, 평범이 개성이 되는 세상은 요지경.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살지 말자. 세상은 늘 요지경 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