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상수첩, 열한 번째 기록
"유아의 엉치뼈부, 등 아래 등의 피부에 나타나는 진피 내의 멜라닌 색소세포 침착에 의한 짙은 푸른색 반점."
바로 몽고반점이다.
태어날 때부터 나만 볼 수 없는 점이 내 몸에 생겨나 있다. 비단 몽고반점뿐만 아니라 다른 점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점이란 게 그렇다. 때론 점의 위치, 크기에 따라 사람의 진위를 판단하기도 한다. 이 사람이 확실하다는 확신을 내려주는 ‘점’. 안동반점도 마찬가지다. 이 탕수육, 확실하다.
그릇의 크기를 오해하면 안 된다. 가로세로 직경 30cm에 달하는 월척 그릇이다. 간장 종지도 족히 10cm는 넘을 거다. 그렇다고 차고 넘치게 간장을 따라 부으면 환경 보호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땅불바람물마음, 다섯 가지 힘을 하나로 모아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화합시다.
유리막 코팅처럼 탕수육 표면을 둘러싼 저 달콤한 소스를 보고 있노라면 이 탕수육을 접한 누구라도 경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먹는 순간, 그 경외는 현실이 된다.
탕수육을 처음 먹었던 건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친구의 생일잔치에서였다. 열댓 명의 친구를 집에 초대해 부모님의 정성이 담긴 기깔난 배달 음식을 먹는 자리. 피자, 후라이드치킨, 양념통닭 등 한국인 선호 야식 순위 1위를 다투는 다양한 음식을 접할 수 있었지만, 탕수육이 준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탕수육을 떠올리면 침을 질질 흘리는 내 습관은 저 때의 강렬한 기억이 대뇌에 깊숙이 자리매김한 결과가 아닐까.
탕수육 아니다. 깐풍기다. 보통 깐풍기엔 그래도 개미 똥구멍만한 소스가 있기 마련인데, 이 깐풍기는 그렇지 않다. 상식을 벗어난 깐풍기. 새롭다. 새로운 건 늘 흥미를 돋우는 부분이다.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 깐풍기는 그냥 중식 닭강정 아닌가 싶다. 어디 건방진 중식 닭강정 나부랭이가 치느님에게 도전을 해? 기절을 해? 진모가 또? 죄송합니다. 건방진 중식 닭강정 나부랭이를 먹을 바엔 치킨을 시켜먹는 게 낫다고 생각하려던 찰나, 가만, 다시 생각해보니 닭강정도 치킨 못지않게 맛있는 음식 아니던가?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깐풍기 나부랭이가 깐느님으로 승격이 됐다. 언젠가는 꼭 깐느 영화제에 가볼 생각이다.
이제는 사라져, 모든 기억이 내게 그러하듯 이 곳도 하나의 추억이 되어 버렸다. 온데간데없음을 끝끝내 인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되새기고 아로새긴, 지워지지 않는 맛으로 각인된 안동반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