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탕상수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호할무니 Jul 10. 2019

맛의 레이어드란 이런 것이다, 야래향

탕상수첩, 열 번째 기록

다양한 식재료들이 한 데 모여 '맛'으로 골인하는 일련의 과정을 우리는 '요리'라 칭한다. 세상엔 차마 다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요리가 존재하고, 그만큼의 맛이 존재한다. 그 맛은 하나, 또는 둘 이상으로 혼합되어 더욱 복합적인 맛으로 진화하는데, 아무리 좋은 맛이라도 아무렇게나 막 섞으면 이도 저도 아닌 게 되어 버린다. 그렇지만 요리사의 손을 거쳐 하나의 맛과 또 다른 맛으로 빈틈없는 층위를 쌓은 그것은 마치 일 더하기 일은 귀요미, 가 아니라 일 더하기 일이 이가 아닌 삼, 사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맛의 분화 과정은 수많은 식재료만큼이나 굉장히 다방면으로,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흩어진다. 훌륭한 맛을 구현하는 과정에 성공과 실패의 부등호를 굳이 매겨보자면 확률적으로 실패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크다. 딱 그만큼의, 적당한 양이 아니면 그 맛이 언제나 실패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맛과 맛을 중첩하는 과정은, 그리고 그 결과가 성공이라는 사실은 정말 믿기 힘들 정도의 우연과 우연이 겹친 산물일 수밖에 없다.


말은 우연이지만, 실은 전적으로 그 우연을 가능하게 한 요리사의 공, 또는 요리 개발자의 공이 제일 클 거다. 만 가지 우연의 가능성을 뒤로하고, 하나의 성공을 실재의 영역으로 불러온 그 시도와 노력의 산물, '맛'은 그렇게 탄생한다.




'맛'은 혀가 인식하는 소위 다섯 가지 미각 외에도 풍미와 함께 입안 전체로 인식하는 요리의 촉감, 저항감, 포만감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이 탕수육은 그중에서도 상당히 다양한 층위의 촉감을 제공하는데, 튀김옷의 가장 바깥 단계를 깨어 들어가고 나면 고기가 아니라 다시 튀김옷을 영접하게 된다. 그 튀김옷을 깨어 들어가면 다시 튀김옷을 만나게 되고, 그걸 또 깨면? 또 튀김옷. 또 깨면? 튀김. 또 깨? 튀.

튀김옷 무한루프에 빠지기 전에 얼른 그 맛을 상기해보면, 수십 겹의 튀김옷을 레이어드 한, 말 그대로 레이어드 탕수육의 진수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오징어와 같은 연체동물 구이를 먹지 않는 이상, 맛보는 재미에 앞서 씹는 재미를 먼저 느끼기는 쉽지 않은데, 그런 면에서 야래야래 탕수육은 상당히 전위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맛이 뒷전이냐? 그럴 거면 물어보지도 않았겠지. 가려진 촉감 틈 사이로 처음 그댈 보았지. 순간 모든 것이 멈춘 듯했고, 가슴엔 사랑이. 꿈이라도 좋겠어가 아니라 이것이 현실이기만을 바랄 정도로 그 맛이 황홀경이다. 꿈이었다면 너무 슬픈 꿈일 것만 같은 그런 맛이기도 하고.




모나게 튀는 맛 없이 대단했던 중국냉면. 하필 냉면이 있어서 '중국' 냉면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이제는 당당하게 중화요리의 한 가락을 차지할 만큼은 그 위상을 가지게 된 중국냉면. 자고로 냉면은 쫄깃한 면발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진한 육수의 맛으로 먹는 건데, 미처 음미하기도 전에 형형색색의 고명 압박으로 냉면이란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게 되고, 그렇게 면발과 육수에 대한 기대치는 한껏 아래로, 대신 다채로움과 새로움에 대한 기대는 에잇 포리 파이브, 그대는 하늘나라로, 한껏 높아진 채 한 젓가락 접촉을 시도하게 된다.




보는 순간 '맛이 있겠다'라고 기대했다면, 놀라울 것 하나 없이, 마치 그런 기대를 가진 내가 죄스러움이라도 가져야 될 것마냥 훌륭한 맛의 위용을 내뿜는다. 죄의식에 대한 조건반사처럼 두 무릎을 땅에 접지하려던 찰나, 역시 냉면은 냉면이지를 증명하듯 끊어지지 않은 면발 덕으로 무사히 무릎과 땅이 하나가 되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인생은 얇고 길게, 잘리지 않는 냉면발처럼. 큰 교훈을 얻게 된 순간이다.




유니짜장도 맛있고, 간짜장도 맛있는데, 유니간짜장이라면? 야래야래. 야래향 레이어드, 맛의 퍼레이드, 화룡정점을 꼽자면 이 유니간짜장이 바로 그것이다. 어쩌면, 방향성을 잃은 내 마음이 사방팔방으로 머리를 내린 무순의 배치에 평안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먹기도 전에 이미 만족했을 지도. 그렇지만 올곧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어도 유니간짜장이라면 언제든 마음에 평화가 내려앉을 수 있다.




이렇게 덮어버리는 것으로 말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있다면, 이 짜장면엔 틀림없이 유니간을 아낌없이 주었을 거다. 불쑥 고개를 내민 무순을 다 덮어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상상을 자극하는 매혹적인 향과 담음새로 그 미안함은 찰나에 불과하게 된다. 허겁지겁 먹다보면 체하기 마련. 체하면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드르렁드르렁 바다하리. 한 가지 문장에 세 가지 콤비네이션을 섞는 나는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게 될 때까지 야래향, 잊지 않을 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동하세요, 안동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