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상수첩, 열다섯 번째 기록
뭐든 맘에 드는 것을 찾기란 쉽지 않은 법이고, 그 이전에 내 취향이 무엇인지를 찾는 건 더 어렵다. 취향은 언제부턴가 알게 모르게 그냥 좋아하는 것이 되어버릴 수도 있고, 아니면 다 커서 학습을 통해 형성될 수도 있으니까. 학습으로 생긴 취향은 사실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취향이란 거 자체가 또 워낙에 변덕꾸러기다 보니까 딱 이거다라고 말하기 힘든 면도 있다. 아무튼, 취향에 맞는 무언갈 찾았다면, 질릴 때까지 탐닉해보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음식은 그럴 수가 없다는 거다. 위는 하나고, 받아들일 준비는 늘 되어 있는데, 모두 받아들일 수가 없으니 이거야 원.
설령 받아들일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게 내 옆에 있지 않으면 그건 그냥 그림의 떡, 상상 속의 음식이 되고 만다. 상상을 안 했으면 또 몰라요. 상상해버리니까 안 먹고는 못 배기잖아. 비슷한 거 찾아서 먹을라치면 아이고 내 입맛도 니 입맛도 아니네 이거. 배고플 때 맛없는 거 먹는 것만큼 기분 나쁜 일도 없을 텐데, 탕수육으로 그래버리면 더 기분 나쁘지. 이런 복잡한 일들 겪기 싫어, 갈 수만 있다면 얼른 가서 먹는 게 최고의 방법인데,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정수리에 닿을 정도로는 가까운, 동순원이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고.
잰걸음으로 발길 조심히 옮겨도 무더위 속에선 아무 소용이 없다. 무더위가 괜히 무더위겠어. 이럴 땐 뛰어가는 것과 걸어가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늘 걸어가는 걸 선택하기는 하지만. 힘에 부쳐서 그런 거다 생각 안 하고 탕수육 못 먹어서 그런 거다 생각하련다. 그럼 먹고 나서 뛸 거냐? 거 뭐 뜨뜻미지근한 소리를. 먹고 나면 당연히 배부르니까 못 뛰지. 그럼 언제 뛸 거냐?
건강하고 오래 살려면 운동은 필수다. 거 동순원까지 안 뛰어갔다고 타박하지 말고, 동순원을 향하는 내 걸음의 노동을 생각해주게. 전철이 다했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하하호호 동순원 가는 길은 늘 신나니까 이해해주게. 기대가 크고, 그 기대가 충족될 걸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소복이 담긴 탕수육의 자태가 가히 침즙을 자아내게 하고, 알맞게 익어 부드러운 양파와 더 알맞게 익어 아삭한 어슷 오이가 함께하니 이리 절묘할 수가 있나. 목이 빠진 목이버섯은 부드러울 수밖에 없고, 비타민 A 부족으로 야맹증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균형 잡힌 영양 섭취를 위해 당근을 올렸구나.
이리 짐작 저리 짐작하다 보면 탕수육은 어느새 뒷전. 급하게 한입 베어 물면 화씨 911 저리 가라, 혀 껍데기 다 벗겨질 듯 뜨거운 탕수육 튀김을 영접하게 된다. 고소한 풍미가 튀김옷을 두루 감싸 바삭함 느끼기 전에 고소당하는 그 기분은 플러스. 동순원 탕수육만이 안겨줄 수 있는 쾌감이라 해야 할지.
뒤돌아서자마자 다시 먹고 싶게 만드는 탕수육은, 살아생전 그런 탕수육 만나볼 수만 있다면, 혹은 이미 만났다면, 두 다리 쭉 뻗고 그 방향을 향해 큰절하자. 그리고 자주 찾아가자. 없어지고 후회하지 말자. 부모한테 잘하자.
기다린 시간은 보상이 적절할 경우 눈 녹듯 없었던 것이 되어 버린다. 다만, 눈을 걷어내도 그 근원인 물은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처럼 우리의 기다림도 보상을 통한 상쇄로는 해소가 안 되어 결국 찌꺼기를 남기게 된다. 처음부터 없던 것으로 치부할 순 없는 노릇인 게다. 그래도 뭐, 보상이라도 있는 게 어디야.
그렇다면 이것은 과연 적절한 상쇄 보상 간짜장이었는가. 누구든 물 반 짜장 반 목격했으면 그런 맛 내뱉지 못하겠지. 간짜장에서 물과 짜장의 조합은 잘못된 만남이기 십상이고, 동순원 또한 그 길 벗어날 리 만무하다는 편견에 사로잡힐 때쯤, 더 이상 못 보겠소 사라져 드리외다, 어딘가로 숨어 없어져버리게 물 반 짜장 반 간짜장을 면 위에 반 덮어버리기로 했다.
물은 숨바꼭질의 달인이었다. 기민하게, 앞선 눈치로 예상치 못한 변방에 자리 잡는 것이 숨바꼭질의 필승 전략인데, 의도를 크게 넘어서 아예 종적을 감춰버렸다. 이 정도면 술래만 내버려두고 다들 집에 갔다고 봐야 되는 거 아닌가 싶다. 어찌 숨었건, 중요한 건 남은 것들의 몫이니까. 없어진 것들은 없어져버린 채로, 있는 것들은 있는 채로.
몇 번 뒤적거렸을 뿐인데 금세 소스와 면이 하나가 됐다. 물이 어디 숨었나 했더니 여기 있었구나. 소스와 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었나 보다. 역시, 세상 모든 것에는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 덕분에 큰 힘 들이지 않고 쓱싹쓱싹 면 비벼냈으니, 보존한 만큼의 힘을 먹는 데 더 보태 써야겠다. 그럼, 볶음밥을 시켜야겠다.
8월의 제주도는 굉장히 뜨겁고 또 높다. 8월에 섭지코지 오르려면 큰 결심이 필요한 이유다. 다만 섭지코지에서 바라보는 절경은 드넓고 참 평화로워서, 막상 올라가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잠깐, 그럼 8월이 아니라 다른 날 가면 되는 거 아닌가.
섭지코지를 닮은 볶음밥, 그야말로 맛으로 빚어낸 맛동산이다.
나가는 길 발걸음에는 늘 회자정리. 만남과 이별은 꼬리를 무는 법이지만, 언제나 만나고만 싶은 동순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