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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탕상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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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할무니 Aug 02. 2019

만남과 이별의 꼬리물기, 동순원

탕상수첩, 열다섯 번째 기록

뭐든 맘에 드는 것을 찾기란 쉽지 않은 법이고, 그 이전에 내 취향이 무엇인지를 찾는 건 더 어렵다. 취향은 언제부턴가 알게 모르게 그냥 좋아하는 것이 되어버릴 수도 있고, 아니면 다 커서 학습을 통해 형성될 수도 있으니까. 학습으로 생긴 취향은 사실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취향이란 거 자체가 또 워낙에 변덕꾸러기다 보니까 딱 이거다라고 말하기 힘든 면도 있다. 아무튼, 취향에 맞는 무언갈 찾았다면, 질릴 때까지 탐닉해보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음식은 그럴 수가 없다는 거다. 위는 하나고, 받아들일 준비는 늘 되어 있는데, 모두 받아들일 수가 없으니 이거야 원.


설령 받아들일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게 내 옆에 있지 않으면 그건 그냥 그림의 떡, 상상 속의 음식이 되고 만다. 상상을 안 했으면 또 몰라요. 상상해버리니까 안 먹고는 못 배기잖아. 비슷한 거 찾아서 먹을라치면 아이고 내 입맛도 니 입맛도 아니네 이거. 배고플 때 맛없는 거 먹는 것만큼 기분 나쁜 일도 없을 텐데, 탕수육으로 그래버리면 더 기분 나쁘지. 이런 복잡한 일들 겪기 싫어, 갈 수만 있다면 얼른 가서 먹는 게 최고의 방법인데,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정수리에 닿을 정도로는 가까운, 동순원이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고.


잰걸음으로 발길 조심히 옮겨도 무더위 속에선 아무 소용이 없다. 무더위가 괜히 무더위겠어. 이럴 땐 뛰어가는 것과 걸어가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늘 걸어가는 걸 선택하기는 하지만. 힘에 부쳐서 그런 거다 생각 안 하고 탕수육 못 먹어서 그런 거다 생각하련다. 그럼 먹고 나서 뛸 거냐? 거 뭐 뜨뜻미지근한 소리를. 먹고 나면 당연히 배부르니까 못 뛰지. 그럼 언제 뛸 거냐?


건강하고 오래 살려면 운동은 필수다. 거 동순원까지 안 뛰어갔다고 타박하지 말고, 동순원을 향하는 내 걸음의 노동을 생각해주게. 전철이 다했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하하호호 동순원 가는 길은 늘 신나니까 이해해주게. 기대가 크고, 그 기대가 충족될 걸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탕수육은 탕수육, 노다웃, 의심의 여지가 없죠


소복이 담긴 탕수육의 자태가 가히 침즙을 자아내게 하고, 알맞게 익어 부드러운 양파와 더 알맞게 익어 아삭한 어슷 오이가 함께하니 이리 절묘할 수가 있나. 목이 빠진 목이버섯은 부드러울 수밖에 없고, 비타민 A 부족으로 야맹증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균형 잡힌 영양 섭취를 위해 당근을 올렸구나.


이리 짐작 저리 짐작하다 보면 탕수육은 어느새 뒷전. 급하게 한입 베어 물면 화씨 911 저리 가라, 혀 껍데기 다 벗겨질 듯 뜨거운 탕수육 튀김을 영접하게 된다. 고소한 풍미가 튀김옷을 두루 감싸 바삭함 느끼기 전에 고소당하는 그 기분은 플러스. 동순원 탕수육만이 안겨줄 수 있는 쾌감이라 해야 할지.


뒤돌아서자마자 다시 먹고 싶게 만드는 탕수육은, 살아생전 그런 탕수육 만나볼 수만 있다면, 혹은 이미 만났다면, 두 다리 쭉 뻗고 그 방향을 향해 큰절하자. 그리고 자주 찾아가자. 없어지고 후회하지 말자. 부모한테 잘하자.



후루루 짭짭 후루루 짭짭 맛 좋은 간짜장


기다린 시간은 보상이 적절할 경우 눈 녹듯 없었던 것이 되어 버린다. 다만, 눈을 걷어내도 그 근원인 물은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처럼 우리의 기다림도 보상을 통한 상쇄로는 해소가 안 되어 결국 찌꺼기를 남기게 된다. 처음부터 없던 것으로 치부할 순 없는 노릇인 게다. 그래도 뭐, 보상이라도 있는 게 어디야.


그렇다면 이것은 과연 적절한 상쇄 보상 간짜장이었는가. 누구든 물 반 짜장 반 목격했으면 그런 맛 내뱉지 못하겠지. 간짜장에서 물과 짜장의 조합은 잘못된 만남이기 십상이고, 동순원 또한 그 길 벗어날 리 만무하다는 편견에 사로잡힐 때쯤, 더 이상 못 보겠소 사라져 드리외다, 어딘가로 숨어 없어져버리게 물 반 짜장 반 간짜장을 면 위에 반 덮어버리기로 했다.


물반 짜장반 양념반 면반 스필반 아우토반, 간짜장은 반짜장


물은 숨바꼭질의 달인이었다. 기민하게, 앞선 눈치로 예상치 못한 변방에 자리 잡는 것이 숨바꼭질의 필승 전략인데, 의도를 크게 넘어서 아예 종적을 감춰버렸다. 이 정도면 술래만 내버려두고 다들 집에 갔다고 봐야 되는 거 아닌가 싶다. 어찌 숨었건, 중요한 건 남은 것들의 몫이니까. 없어진 것들은 없어져버린 채로, 있는 것들은 있는 채로.


몇 번 뒤적거렸을 뿐인데 금세 소스와 면이 하나가 됐다. 물이 어디 숨었나 했더니 여기 있었구나. 소스와 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었나 보다. 역시, 세상 모든 것에는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 덕분에 큰 힘 들이지 않고 쓱싹쓱싹 면 비벼냈으니, 보존한 만큼의 힘을 먹는 데 더 보태 써야겠다. 그럼, 볶음밥을 시켜야겠다.


 

바다와 산, 섭지코지 볶음밥


8월의 제주도는 굉장히 뜨겁고 또 높다. 8월에 섭지코지 오르려면 큰 결심이 필요한 이유다. 다만 섭지코지에서 바라보는 절경은 드넓고 참 평화로워서, 막상 올라가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잠깐, 그럼 8월이 아니라 다른 날 가면 되는 거 아닌가.


섭지코지를 닮은 볶음밥, 그야말로 맛으로 빚어낸 맛동산이다.


나가는 길 발걸음에는 늘 회자정리. 만남과 이별은 꼬리를 무는 법이지만, 언제나 만나고만 싶은 동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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