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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Oct 13. 2020

김검사 수치의 날

The whole truth, nothing but the truth

내가 거짓말이나 잘못된 정보를 무척이나 싫어하게 된 계기는 군대에서 비롯되었다. 


자대에 배치받은 후 한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후송을 나갔던 선임 한 명이 부대로 복귀했다. 나보다 6개월 선임이었는데 내가 자대로 배치받았을 때 그 사람은 이미 후송을 간 상태였기 때문에 그때서야 그를 처음 보게 되었다. 나와 같은 나이에 똑같이 행정병이었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처음 보았을 때만 해도 나는 그가 멀쩡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가 부대로 복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군대에 들어오기 전 여자 친구와 있었던 일을 말해 준 것이다. 벌써 16년도 더 된 일이기 때문에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이랬다. 


그에게는 두 살인가 세 살인가 연상이었던 여자 친구가 있었다. 자신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만났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의대에 가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자 친구 집에서는 자신의 딸이 의사와(또는 의사가 될 사람과) 교제하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여자 친구의 아버님이 의사였는데 어머님께서 너무 바쁜 남편 탓에 고생을 많이 하셔서 의사와 만나는 것을 결사반대했다고 한다(그렇다. 나도 알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이 되는 소리인가를. 일단은 참고 계속 들어보자). 


하지만 자신이 너무 의대에 가고 싶었기 때문에 그것을 말리는 여자 친구와 매일 같이 싸웠다고 한다. 결국 수능을 마치고 나서 그 문제로 여자 친구와 아주 크게 다투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쯤 갑자기 그는 나에게 밖에 있을 때 어디에서 살았냐고 물었다. 나는 (서울) 강북에서 주로 살았고 집이 4호선 미아역과 가깝다고 하였다. 그러자 그는 깜짝 놀라며 갑자기 어떻게 이런 우연히 있을 수 있냐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마침 그가 여자 친구와 싸웠던 곳도 미아역 승강장 맨 끝이었다! 우연도 어떻게 이런 우연히 있을 수 있을 수 있지!! 아무튼 그는 너무 화가 나서 여자 친구 앞에서 끼고 있던 반지(커플링)를 벗어 깜깜한 지하철 선로로 냅다 던져버렸다고 한다. 이후 여자 친구가 어떻게 반지를 다시 찾아왔고 그래서 화해를 했다나 아니면 그냥 헤어졌댔나... 결국 그는 그러한 사정으로 의대 진학의 꿈을 접고 다른 학과를 선택했다고 한다. 정말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가 없었다. 군대에서 만난 사람이 나에게도 매우 익숙한 곳에서 그런 엄청난 일을 했다니!!! 게다가 여자 친구를 위해서 자신이 가고 싶어 하는 의대도 포기하다니!!!! 


물론 그가 이야기를 할 때 내가 알고 있는 미아역 구조와는 뭔가 다른 듯하여 중간중간 질문도 하였지만 당시에는 입대한 지 겨우 3개월 정도밖에 안되었을 때라서 군기가 바싹 들어있었나 보다. 나의 질문에는 그저 '허허, 그랬나?' 정도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고도 나는 더 이상의 의심도 없이 그의 말을 믿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우리 동네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을 줄 알았다. 또 그가 당연히 공부를 잘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설마 조금만 캐봐도 앞뒤가 맞지 않은 이야기를 가지고 그렇게 태연하게 거짓말을 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뭐 이런 거지 같은 인간이 다 있나 싶었다. 겉에서 보기에는 하는 행동이나 말투, 성격 모두 제정신인 것처럼 보였는데 알면 알 수록 이상한 사람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미아역에서 가까운 곳에 살기는커녕 인천 출신의 사람이었고, 본인의 의지로 의대를 안 갔다고 하기에는 뭔가 이상하게도 알 수 없는 곳에서 불어를 전공하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더 흘러 나의 계급이 조금 올라가고 나서부터는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정말로 몸에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 부대는 전주에 위치하고 있었던 관계로 주말이면 두 명의 부대원이 밖으로 짧게 외출하여 비디오를 빌려 오고는 하였다(그렇다. 당나라 군대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실제로 부대원 중 빽을 써서 들어온 사람도 꽤 있었다). 어느 주말, 부대원끼리 이번에는 무슨 영화를 빌려오느냐 이야기를 하다가 공포 영화 이야기가 나왔다. 마침 내가 신문에서 보았던 일본 공포 영화가 있어서 사람들에게 그 영화는 어떻냐고 말을 했다. 문제의 그 선임도 관심이 있는 듯 나에게 무슨 영화인지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밤이 되어 소등을 하고 나서 부대원 한 명이 오늘은 '검은 물 밑에서'라는 영화를 틀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 선임은 편안히 누워 '어 그래 그거 빨리 틀어봐. 내가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야'라고 하는 것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나와 나누었던 대화는 벌써 잊은 것인지, 너무도 태연하게 그런 말을 하는 그를 보면서 저 사람은 평소에 자기가 거짓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이 날부터 나는 어쩌면 그는 자신이 하는 말을 모두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말로만 듣던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사람이었을까? 



어쨌든 그 사람은 이렇게 별 것 아닌 것부터 별 것인 것까지 하는 말마다 근거 없는 소리들을 했다. 예를 들어 사회에서 군 복무기간이 추가적으로 짧아진다고 결정되었단다, 병사들 월급이 얼마로 오른다더라 등등 온갖 이상한 소리를 시도 때도 없이 해서 정말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다. 


일 년 이상을 이런 사람과 함께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 이후부터는 거짓말, 근거 없는 소리, 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끔찍하게 싫어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들은 말이 약간 이상하다 싶으면 그것의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국내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한 번은 퇴직을 앞둔 부장님이 인터넷을 하시다가 '설악산에서 사람들이 장난으로 흔들바위를 밀다가 추락해서 사람이 다쳤대'라고 하는 말을 듣고는 뭔가 이상해서 바로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그와 비슷한 글들이 각기 다른 날짜로 검색이 되는 것이었다. 부장님이 낚였구나 싶었다(심지어 지금까지도 '흔들바위 추락' 속보가 뜨고는 한다. 가장 최근에는 2020년 만우절에 이것이 실검에 올랐다).






살면서 보니 내 군대 선임이나 트럼프처럼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사실 웬만큼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그러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기보다는 과장과 허풍, 남에게서 들은 이야기, 잘못된 뉴스나 인터넷 정보가 퍼지면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발생시키고는 한다.


1. 과장과 허풍

과장과 허풍의 대표적인 예로는 부모님들의 자기 자식 자랑이 있다. 순수한 자식 사랑에서 비롯되어 악의가 없다고는 하지만 제삼자가 듣기에 말이 안 되는 경우가 참 많다. 자기 아들, 딸이 일을 잘해서 이번에 성과급을 엄청 받았다, S전자에 다니는데 위에서도 인정받고 돈도 많이 받는다, 캐나다 가서 살고 있는데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 등등. 최근에는 본인의 자식이 캐나다 유학을 하면서 머물고 있는 집이 '대저택'이라는 말까지 들어보았다. 


양쪽 부모님들을 통해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그러한 소리들은 사실 과장과 허풍이 대부분이다. S전자든 어디든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는 것은 다 거기서 거긴데 인정을 받으면 얼마나 받고, 성과급을 받으면 얼마나 받을까 싶다. 그리고 해외에서 살아도 뭐 다 거기서 거기이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만다.


하지만 물론 나도 과장과 허풍의 대상에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몇 년 전 한국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가 상대방에게 우리 아들이 캐나다 연방에서 공무원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하시는 것이었다. 연방 공무원은커녕 한국 사람은 들어도 모를 사스카추완 주 정부 산하 기관에서 일하던(뭐 주 정부 공무원 노조 소속이긴 했다) 때였기 때문에 이것이 무슨 낯부끄러운 소리인가 싶었다. 어쩌면 나도 어머니 친구분들 사이에서는 캐나다에서 무척이나 성공한 슈퍼 인기 블로거일지도 모르겠다.


2. 남에게 들은 이야기

자기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 남에게 들은 이야기는 조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용접을 배워서 캐나다에 가면 영주권도 쉽게 받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더라는 이야기는 실체가 불분명한 이야기이다. 기술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은 것인데 아무런 경험도 없이 용접을 배운다고 캐나다에서 쉽게 성공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혹은 캐나다 대학(College)에서 무슨 학과를 전공하고 직업을 구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더라는 이야기도 참 많이 들린다. 아니 그러면 누구나 그 학과를 가서 직업을 구하고 영주권을 받겠지 왜 시골 동네에서 최저 시급을 받으며 온갖 고생을 하고 있겠는가? 


예전에 와이프 친구가 캐나다 조기 유학에 관심이 있어 유학원에 문의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유학원에서는 본인이 학교(College)를 다니면 아이들 학비가 무료이니 가장 쉬운 학과를 골라서 유학을 가라고 추천했다고 한다. 본인이 공부하면 애들은 누가 픽업하냐고 물어보니 그런 것은 학교와 주변 사람들이 다 도움을 줄 테니 걱정할 것이 없다고 했단다. 그 친구는 와이프에게 정말 그러냐고 물었다. 물론 정말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참 무책임한 유학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캐나다에서 살면서 정말 많은 뜬소문들을 들었다. 어느 자격증을 따면 취업이 잘 된다더라, 어디 동네는 한국 사람도 적고 살기 좋다더라, 어디는 사람이 살 곳이 못 된다더라, 어디 주로 이동을 하면 영주권을 쉽게 받는다더라 등등. 만약 이것이 듣고 넘기면 될 일이라면 모르겠지만,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는 남에게 들은 이야기만을 믿고 결정을 해서는 후회가 클 수 있다.


3. 잘못된 뉴스나 인터넷 정보

최근에는 인터넷에 너무 많은 정보가 넘쳐나기 때문에 도대체 어디까지가 광고이고 어디까지가 정보인지, 어디까지가 거짓말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구별하기 힘들 때가 많다. 특히 요즘에는 인터넷에 올라오는 뉴스의 경우 믿기지 않을 수준의 뉴스들도 많이 있다. 


최근에 어느 국가 연구원에서 쓴 글을 보았는데 심지어 그 글에도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있었다. 미국의 최초 유인 우주선 프로젝트인 머큐리 프로젝트(Project Mercury)에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도대체 근거를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미신에 기댄 이름도 있습니다. 바로 머큐리 계획에 활용된 우주선의 이름인데요. 우주비행사들이 지은 애칭에는 freedom7, liberty7 와 같이 공통적으로 7이 붙습니다. 그 이유는 예상하시는 바와 같이 “럭키세븐”! 7이 가진 행운의 기운을 받기 위해서였죠. 이름에 기운을 불어넣는 것도 모자라 우주비행사의 숫자로 7명으로 맞추었답니다. (출처: https://1boon.kakao.com/KARI/blog00002)


작년(2019년)이 아폴로 11호 달 착륙 50주년이었고 올해(2020년) 아폴로 13호 50주년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아폴로 프로젝트에 꽤나 빠져있다. 그런데 모든 책이나 자료에서 머큐리 프로젝트의 인원은 최초 6명을 선발하려고 했으나 고르기가 어려워(다들 쟁쟁하여) 최종적으로 7명을 선발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7명을 Mercury 7(머큐리 세븐)이라고 불렀고 이 '7'을 기념하고자 모든 우주선 이름에 '7'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누가 쓴 글인지는 몰라도 명색이 항공우주연구원인데 위키피디아 정도는 찾아보고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가짜 뉴스와 잘못된 정보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나 때문에 와이프가 고생을 많이 한다. 와이프가 인터넷에서 읽은 것을 나에게 말해 줄 때 가끔씩(혹은 자주?) 내가 그것은 조금 이상하다고 출처를 확인해 봐야 한다고 말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포털에 올라온 기사를 말해 주어도 위에서 설명한 이유로 내가 잘 믿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와이프 증언에 따르면 그럴 때마다 내가 항상 뉴욕타임즈나 CBC(캐나다 국영 방송)를 확인해 봐야 한다고 하니 꽤나 재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한 번은 와이프가 나에게 누가 이런 글을 썼다며 나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글쓴이에 따르면 자기 남편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Fact Check'가 필요하다며 사사건건 딴지를 건다고 하였다. 비록 그 글을 읽으며 나는 이 사람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부정했지만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 다르긴 뭐가 다르냐고. 혹시 그 집 남편이 나와 함께 당나라 부대에서 근무를 했던 사람일까?


하지만 최근 나에게도 엄청난 시련과 수치가 찾아왔다. 내가 잘못된 정보에 홀라당 넘어가서 사실 확인도 없이 와이프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며 신나게 이야기를 한 것이다. 


사건은 이렇다.


어느 분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자신 주변에 한국 유학생분이 한 분 계신데 그분의 자녀가 감기 증상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코로나 검사에서 음성이 나와야 다시 학교에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유학생 신분이라 온타리오의 의료보험이 없던 그분은 코로나 검사를 받는데 거의 800불이 들었다고 했다. 이 비용은 한국에서 들고 간 보험으로 돌려받을 수 있지만 어쨌든 우선 800불을 지불해야 했다고 한다.


물론 처음에는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코로나 초기부터 주 정부에서는 외국인이 검사를 받아도 검사 비용을 물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해외 노동자가 몰려있는 농장 지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엄청 퍼졌는데 당시 주 정부에서 불법체류자라고 해도 코로나 검사는 무료라고 어서 나와서 검사를 받으라고 했던 것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몇 가지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첫째는 이 이야기가 매우 최근에 일어난 것이라는 점이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학교가 개학을 한 후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아무리 오래되어도 1~2주 전의 이야기가 분명했다. 그렇게 최근의 일이라면 왜곡될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했다. 둘째는 검사를 받았다는 분이나 나에게 이 말을 해는 분이 굳이 뭐하러 거짓말을 할까 싶었다. 겨우 코로나 검사를 받는데 너무 많은 돈이 들었기 때문에 놀라서 이런 말을 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평소의 나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거나, 아니면 정확한 사실을 확인했겠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심지어 나를 합리화시키기까지 했다. 최근에 검사받는 사람 수가 늘어나서 주 정부 방침이 바뀌었을까?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뉴스에서 검사가 무료라고 이야기했던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네? 이렇게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고는 와이프에게 달려가 바로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유학생이 의료 보험 없이 코로나 검사를 받았는데 800불이나 들었대! 


그러자 와이프는 이 인간이 뭔 헛소리를 하나 싶어 했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사려 깊은 와이프는 나에게 바로 헛소리라고 말하지 않고 누가 그런 소리를 하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야기를 들은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 스스로가 이것은 헛소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었던 나는 코로나 검사를 담당하는 보건 당국에 전화를 해 보았다. 하지만 자동 음성 메시지를 들으며 기다리다 보니 별 것도 아닌 일에 바쁜 사람들 시간을 뺐는 것 같아서 우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마침 문자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번호가 있어서 문자를 보내보았다.


   



두 시간 정도 후에 온 답변은, 자기가 알고 있는 한 의료 보험이 없어도 돈을 청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혹시 그 사이에 바뀌었을지 모르니 검사소에 확인을 해보라고 하였지만, 주 정부에서 계속 이야기했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의료 보험이 없더라도 코로나 검사를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러면 도대체 800불을 냈다는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없던 일을 만들어 냈던 것일까? 아니면 코로나 검사가 아니라 응급실에라도 갔던 것일까? 아니면 나에게 그 말을 해주신 분이 없던 일을 만들어서 이야기했을까? 혹은 두 다리 건너서 들은 이야기라 과장되고 왜곡되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도대체 왜?






캐나다나 미국에서 인사 청문회를 하거나 증인으로 설 때 다음과 같이 서약을 한다.


I swear to tell the truth, the whole truth and nothing but the truth.
나는 진실을 말하고, 모든 진실을 말하며, 오직 진실만을 말할 것을 서약합니다.

이처럼 군 제대 이후 진실만을 추구하고 거짓 정보를 멀리한다고 자신했던 내가 한순간에 거짓 정보를 퍼트리는 사람이 말았다. 그 날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절대로 알 수 없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앞으로 2020년 9월 26일은 두고두고 김검사 수치의 날로 기억될 것이라는 점이다. 와이프는 물론 매우 통쾌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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