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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Sep 18. 2020

혼돈의 스카이프 미팅

나는 기본적으로 집에서 일하면서 현장에 나가서 검사를 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회의를 할 일이 별로 없다. 아주 가끔씩 토론토에 있는 본사 건물에서 팀 미팅을 하거나 일 년에 한 번, 모든 인스펙터가 모여 세미나를 하는 것이 전부이다. 어쩌다가 클라이언트들과 미팅을 하기도 하지만 보통 30분을 넘기는 일이 없다. 내가 회의에 참석하면 참석한 시간을 상대방 회사에 청구해야 하기 때문에(이렇게 보면 변호사들이 시간당 금액을 청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도 뭔가 프로가 된 듯하다) 보통 회의가 길지 않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회의(미팅)이다. 내가 4년 전 이 회사에 면접을 볼 때도 스카이프로 면접을 보기는 했지만 그동안 회사 내에서 이 스카이프를 많이 사용하지는 않았다. 회사에 워낙 나이 든 사람이 많고(내가 아는 70대 인스펙터만 3명 이상이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보니 다들 만나서 하는 미팅을 선호했다. 


그런데 우리 팀의 경우 이것이 비효율적이기는 했다. 왜냐하면 스카보로(토론토 동쪽에 붙어있는 도시)부터 윈저, 나이아가라 지역을 제외한 온타리오의 모든 지역이 우리 팀이 담당을 하고 있기 때문에 미팅을 한 번 하기 위해서는 전 온타리오에서 인스펙터들이 모여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나마 가까운 편이라서 약 3시간 정도 운전하면 되지만 오타와에서 오는 사람들은 5~6시간 걸리고 썬더베이(Thunder Bay)에서 오는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와야 한다. 


한편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곧바로 락다운(봉쇄)이 되었기 때문에 일은 급격하게 줄어들고 말았다. 그런데 그 빈 시간을 틈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스카이프로 팀 미팅을 하기 시작했다. 미팅에서 긴박하게 돌아가는 회사의 상황을 들을 수 있어서 처음 몇 번은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슈퍼바이저(팀장) 아저씨가 여기에 맛이 들렸는지 2~3달 정도 시도 때도 없이 미팅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미팅이 많아지면 결국 한 소리 또 하고 또 하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다행히 6월 이후에는 다시 일이 많아지기 시작해서 더 이상의 미팅은 없어지고 말았지만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드디어 스카이프 미팅의 장점을 깨달은 계기가 된 것 같다. 우리 회사도 이제는 본사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어졌기 때문에 이제는 웬만한 일은 모두 스카이프 미팅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되었다. 앞으로 한 동안은 일 년에 2박 3일로 하는 인스펙터 세미나도 스카이프 미팅을 통해서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집에서 근무를 해 보신 분은 알겠지만 자녀가 있는 분들에게는 자택 근무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나가지 않으면 아이들도 돌보면서 일을 해야 하는데 스카이프나 줌으로 미팅을 해야 한다면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나도 팬데믹 초반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을 때는 밖에서 미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 화면을 보지 않아도 되는 경우에는 그냥 핸드폰에 이어폰을 꽂아서 잡초를 뽑으면서 회의에 참석했다. 


하지만 반드시 컴퓨터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차 속에 들어가서 회의를 해야 했다. 한 시간 정도 하는 회의라면 괜찮은데 한 번은 9시간 동안 회의를 하는 바람에 정말 고생을 했다. 날은 더운데 허리도 아프고... 그래도 그 시간 동안 와이프는 집에서 아이들을 보느라 고생한 것에 비하면 별 것은 아닐 것이다. 


최근 참석해야 했던 미팅 목록. 한국에서 일할 때 비하면 별로 많은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분기 당 한 번 회의를 하다가 이렇게 하려니 엄청 많아졌다.


아무튼 최근 회사의 IT 시스템을 완전히 바꾸고 있는데 하필이면 그 프로젝트에 참여해야 해서 무척이나 많은 미팅에 참석을 하고 있다. 이것은 항상 컴퓨터를 사용해야 하는 미팅이라 그냥 듣고만 있을 수 없어서 자리에 앉아서 참석을 해야 한다. 나는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9월부터 다시 학교에 나가기 시작해서 이제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있다(와이프는 나가서 하라고 하지만 참 갈 곳이 없다). 하지만 토론토에 있는 학교들은 아직 문을 완전히 열지 않은 곳들이 있는 모양인지 미팅을 하다 보면 온갖 아이들의 울음소리, TV 소리, 노랫소리, 비명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엄마, 엄마'를 부른다. 엄마가 답이 없으면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라고 정말 300번은 엄마를 부른다. 그런데도 엄마가 자기에게 오지 않고 계속 일을 하면 '엄마아아아아아아아!!!!! 엄마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하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 엄마는 재빨리 하던 말을 멈추고 잠시 아이에게 달려가 조금 달래주고는 다시 미팅에 등장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예전 같으면 이런 일은 상상도 못 했겠지만 다들 아이 키우는 입장이니 아무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매번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그 아이와 그럼에도 계속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그 엄마가 약간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것을 볼 때면 언제나 밥 벌어먹고 산다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아래는 회의 뒤로 들리는 한 아이의 울부짖음을 녹음해 본 것이다. 생각보다 아이의 긴박한 목소리가 잘 담기지 않았지만 팬데믹이 바꿔놓은 우리의 인생을 엿보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스카이프 미팅 중 들려오는 한 아이의 울부짖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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