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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Jan 22. 2023

캐나다의 새로운 알코올 가이드라인

한국이라면 큰일 날 기준

내가 처음 술을 입에 대었을 때의 기억은 없지만 대학 입학 전에는 별로 마셔본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아마 대학에 들어간 이후 자연스럽게 마시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 술은 어른한테 배워야 한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워낙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여서 집에서 함께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 그렇게 스스로 술을 배웠지만 다행히 남들 앞에서 부리는 주사는 없었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술이 약하지는 않았다. 술을 마셔도 얼굴색 하나 안 변하시는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나도 아무리 술을 마셔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또 술을 많이 마셔도 화장실로 달려가 정신을 차릴지언정 정신줄은 놓지 않았는데 그 덕분에 집에 못 찾아갈 정도로 망나니가 된 적은 없었다. 물론 그 정도로 많이 마시면 집에서는 인사불성이 되긴 했다. 어쨌든 그 결과 세상에서 가장 들을 필요 없다는 말 중의 하나인 '술이 세다'는 말을 곧잘 듣게 되었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했을 때는 나도 여느 직장인처럼 회식이 많았다. 특히 공장에서 근무했을 때는 아무리 못해도 주 2~3회 회식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 가정이 있던 아저씨들은 자식들 얼굴은 보고 살았을까 싶다. 봄에는 고로쇠 물을 마셔야 하니 회식을 해야 했고, 여름에는 복날이니까 회식을 해야 했고, 가을에는 전어가 철이니 회식을 해야 했고, 겨울에는 굴이 철이니까 회식을 했다. 1차로 끝나는 경우는 절대 없어서 저녁을 먹으며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신 후 2~3차로 맥주나 양주를 마시러 갔으니 정말 많이 마셨다.


하지만 캐나다에 와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회사에서 회식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캐나다에는 우리 가족 말고 아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함께 술을 마실 사람도 없었다. 게다가 어쩌다가 밖에서 맥주 한 잔이라도 마실 기회가 있으면 기본적으로 비싼 술 값에 세금에 팁까지 주어야 하니 맥주 한 잔에 10불을 훌쩍 넘겼다.


한 번은 예전 회사에서 모두 같이 식사를 할 일이 있었다. 1박 2일로 세미나를 했기 때문에 회사 돈으로 저녁을 먹었는데 특이하게도 맥주 한 잔까지는 마실 수 있다고 했다. 당시에는 캐나다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여서 설마 정말 한 잔만 마셔야 될까 싶었다. 여기 맥주는 오백 한 잔도 안 되는 양이기 때문에 에라 모르겠다 그냥 두 잔을 마셨다. 나중에 일어날 때 보니 추가로 마신 맥주 한 잔에 대한 계산서가 나에게 주어졌다. 정말 지겹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밖에서 술을 마실 일이 없어지다 보니 이제는 어쩌다가 집에서 맥주 한 두 캔 정도 마시는 수준이 되었다. 그것도 자주 마시는 것은 아니고, 온타리오에 비해 술값이 싼 미국이나 퀘벡에 갈 일이 있으면 코스트코에 가서 한 박스씩 사 온 것을 가지고 몇 주에 걸쳐서 마신다. 캐나다에 온 지도 벌써 8년이 넘었으니 그 사이 나의 간이 더 건강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술을 잘 마시지 않으니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그것은 주량이 말도 못 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어쩔 수 없이 마시던 좋아서 마시던 그냥 남들 맞춰줄 만큼은 마실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 맥주 3~4잔에도 속이 뒤집어지는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한 번은 예전에 살았던 리자이나에서 알고 지낸 지인이 오타와에 들를 일이 있어서 오랜만에 저녁에 식사를 함께 할 일이 있었다. 그날 맥주 3~4잔 정도를 마시고 헤어졌는데 겨우 그것을 마시고 취해버렸다. 와이프와 아이들이 자고 있던 호텔방으로 돌아와 아직 어렸던 둘째를 위해 요청한 아기용 침대(Crib) 안에 들어가서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 일로 인하여 와이프로부터 두고두고 놀림을 받고 있다.






최근 캐나다 언론에서는 캐나다 약물 중독 센터(Canadian Centre on Substance Use and Addiction)에서 새롭게 발표된 알코올 섭취 가이드라인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2011년 발표된 가이드라인에서는 일주일에 남성은 15잔, 여성은 10잔까지를 위험이 적다(Low Risk)고 했으나 최근에 발표된 가이드라인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일주일에 2잔을 초과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새로운 캐나다의 알코올 가이드라인. 상세내용은 글 아래 링크 참조



이때 '한 잔'의 기준이 되는 양을 Standard Drink(표준 잔)이라고 하며 대략 맥주 한 캔(341ml, 5%), 와인 한 잔(142ml, 12%) 정도이다. 물론 캐나다에서는 소주로 환산한 양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대략 계산해 보니 소주 2잔(86ml, 20%) 정도이다. 사실 남성의 경우 일주일에 15잔에서 2잔이라니, 너무 극적인 변화라 캐나다 내에서도 너무 낮아졌다던가 현실적이지 않다던가 하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중에 적당한 양의 와인은 오히려 건강에 좋다는 속설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기자가 전문가에게 지금까지는 하루 한 잔 정도의 와인은 심장병 예방에 좋다고 알려졌는데 이제는 무조건 일주일에 두 잔을 넘기면 건강에 안 좋다고 하니 어떻게 된 거냐 묻자 이렇게 대답을 했다.


예전에 실험을 했던 내용을 보면 와인을 마시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눴는데, 이때 마시지 않는 사람의 선정이 잘못되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 그룹에 건강하지만 전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질병으로 술을 먹지 못하는 사람, 그동안 과도한 음주로 더 이상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된 사람까지 모두 포함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보다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이 건강해 보이는 왜곡이 발생했다(아래 링크 중 팟캐스트 'The Decibel' 참조).


참 흥미로운 해석이 아닐 수 없었다.


어쨌든 전문가들의 말은 꼭 일주일에 2잔 이하로 마시라는 것이 아니라(그러면 물론 좋겠지만), 많이 마시면 마실 수록 건강에 좋지 않으니 이 가이드라인을 보고 현재 섭취하는 양보다 줄이면 무조건 좋다였다.


물론 한국에서 일주일에 맥주 두 캔, 소주 네 잔이 적당하다고 말을 한다면 사회생활을 하지 말라는 소리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알코올 섭취 권장량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정부 기관에서 제시한 양은 쉽게 찾을 수가 없어서 그냥 삼성병원 홈페이지에 있는 자료를 가져와 보았다.



2014년에 쓰인 자료인데 그러고 보니 내가 예전에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할 때 들었던 수치가 이것이 아닌가 싶다. 당시에 회식 자리에서 하루에 소주 한 병 정도만 마셔야 된다더라는 말이 자주 나오곤 했는데 어떻게 그 정도밖에 안 마실 수가 있느냐며 다들 2~3병씩 마셨던 기억이 있다.


이 자료에는 일주일 기준량은 없지만 맥주를 기준으로 본다면 남자는 하루 3캔이 허용량이다. 매일 마시는 것을 권장하지는 않을 테니 대충 주말을 쉰다고 했을 때 일주일에 15캔이 되는데 이는 캐나다에서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나오기 전에 일주일에 15잔까지는 괜찮다고 했던 것과 비슷한 수치이다.


아무튼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속속들이 발표되면서 캐나다에서는 드라마틱하게 알코올 섭취 권장량이 줄어들었는데 한국에서도 새로운 알코올 섭취 권장량이 발표될지 궁금하다.





어떠한 가이드라인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있든지 말든지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나 또한 그렇고. 그런데 이 새로운 알코올 가이드라인은 적어도 나에게는 은근히 효과적이다. 작년 말에 미국에서 사 온 맥주 한 박스를 사 온 것이 있어서 그것이 다 떨어질 때까지 하루 건너 한 캔씩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방송에서 계속해서 이 가이드라인 이야기가 나오니 나도 뭐 술이 좋을까 싶어서 하루 더 건너 한 캔씩 마시게 되었다. 그럼 대충 일주일에 2~3잔이 되겠지.


글을 마치려니 지난여름 한국에 갔을 때 만났던 친구가 생각난다. 그 친구는 이제 자기는 독한 술이 아니면 안 된다며 굳이 자기를 따라 마시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혼자 두꺼비(오랜만에 한국에 갔기 때문에 그런 소주는 처음 봤다)를 까서 계속 혼자서 따라 마셨다.


녀석에게도 이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보여주고 싶어지는 것은 친구를 걱정하는 나의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




참고자료

캐나다 알코올 섭취 가이드라인(2022)
https://ccsa.ca/update-canadas-low-risk-alcohol-drinking-guidelines-final-report-public-consultation-report

삼성병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알코올 권장량
https://bit.ly/3GZRIT9

팟캐스트 'The Decibel'
https://www.theglobeandmail.com/podcasts/the-decibel/article-one-of-the-sociologists-behind-canadas-new-drinking-guidelines/

팟캐스트 'Front Burner'
https://www.cbc.ca/radio/frontburner/how-much-booze-is-too-much-booze-transcript-1.6720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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