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SWEET HOME

숲 집

by 킴 소여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고 긴 숲 길. 처음 오는 사람이라면 지도로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 이 길 끝에 뭐가 있긴 할까 가늠되지 않는다. 괜히 헛걸음을 하고 싶지 않아 몇몇은 확신이 들지 않는 길을 그냥 지나치리라.

'아니야, 정 아니면 돌아 나오자'는 굳은 심지의 용기 있는 자가 이 숲길을 한참 따라 들어가다 보면 장난기를 가득 머금은 다홍색 지붕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럼 그때부터 궁금증과 안도감에 발길이 빨라질 것이다.


그 장난기 묻은 다홍색 지붕 아래 아이보리색 벽돌 외벽과 청록색 나무 문이 과감히 매치된 색감에 잠시 동화에 나오는 '숲 속 마법사의 집'을 만난 건가? 착각이 들 수 있다. 흔한 판타지물의 도입부처럼 긴 숲길이 현실 세계로부터 당신을 마법의 세계로 인도한 통로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집을 조금 살펴보면 두 번째 의문이 들 것이다. '집이라기엔 너무 작은데?' 역시 길을 잘못 찾아왔나 싶어 돌아나가려던 찰나 우측에 여러 꽃과 풀들에 뒤덮인 작은 샛 길이 보인다. 그리고 허리춤 높이까지의 작은 여닫이 문 뒤로 어떤 공간이 있는 것 같아 한번 문을 밀고 가본다.

그러면 만날 것이다.


나의 HOME SWEET HOME.





"얘들아 오늘 무슨 날인 줄 알아~?"

아침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며 묻는다.

"무슨 날인돼~???"

두 아이도 궁금증 가득 안고 묻는다.

"오늘 어린이집 마치고 오면, 드디어 우리 진짜 집으로 돌아가~ 마당 있고, 캠프파이어도 있고, 다락방도 있는 그때 그 집~"

내가 들떠서 이야기하자, 첫째 아이가

"와~~ '숲 집'간다~~!! "

라고 만세를 부른다.

"숲 집? 거기가 이름이 숲 집이야??"

그렇게 이름을 지은 건 처음 들어 신기해 물어보자

"응! 집이 숲 속에 둘러싸여 있잖아~^^"

라고 단순 명쾌하게 말한다.

문득 3개월 제주살이 동안 살았던 다른 두 집도 이름이 궁금해져

"그럼 그전 집이랑 전 전 집은 뭔데??"

라고 더 물어보자

"전엔 '울타리 집', 그전엔 '수영장 집'."

이라고 바로 대답이 튀어나온다.ㅎㅎ


울타리 집과 수영장 집


너무나 직관적이고 명료한 아이의 작명 센스에 무릎이 탁 쳐지며 웃음이 터진다.ㅎ

어른들은 너무 복잡하다. 뭔갈 대단한 걸 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럴수록 결과는 혼탁해진다. 아이들의 순수함, 직관성은 그런 어른들의 복잡성을 비웃는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내려다 주고 나는 곧장 집으로 향한다.


우리 숲 집..!




제주 이주 준비를 하느라 한 달간 대구에 돌아가 있는 동안, 이 집은 다른 사람이 한달살이 숙소로 사용하였다. 우리가 처음 이 집에 머물렀던 11월의 정원보다 지금 1월의 정원은 다소 수척해져 버렸지만 키 큰 동백나무 방풍림들에 둘러싸여 겨울의 언 땅 아래 보이지 않게 살아있는 숨 쉬는 생명들이 숨소리가 느껴진다. 모든 것이 완성된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알고,

그걸 행하는 삶.

이 얼마나 충만한 삶인가!


인간이란 권태의 동물이라 이 감흥 또한 언젠간 무뎌질 것이고, 환경 하나 바뀌었다고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없던 영감도 샘솟게 하는 이 생명력 넘치는 정원에서 매일매일 다른 모습을 꺼내 보여줄 자연의 선물을 맛볼 생각을 하니 2024년 갑진년 한 해가 기대된다. (맙소사 이름까지 값지다!)


집주인도 우리의 재입주를 맞이하러 오신다고 했는데 보이지 않아 집 안으로 들어가 본다. 그런데

"으읭??!??!"

집이 엉망이다;;;;;;;;;


일단 어디신지 물어보려 전화를 드리자 '이불보를 찾아 빨래방에 갔다 돌아오는 길'이시란다.

전화를 끊고 방 전체를 둘러보니 방마다 온통 널브러져 있다.

"프하하하하하"

화는커녕 웃음이 터져 나온다.


주인과 아들이 들어온다.

이불 보를 새로 갈고, 원래 스테이 때는 잠가두었던 방까지 모두 내주기 위해 그 방의 도배 후 남은 뒤처리와 보관해 두었던 개인짐들도 챙겨 차에 싣으신다.


난 예의 있는 사람에게 정이 가지 않는다. 예의라는 겉화장으로 본심을 포장하는 사람이 고상하다고 사회에선 가르칠지언정, 그런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을 대하는 것은 피곤하다. 나 또한 예의 있는 척 연극으로 함께 응해줘야 하는 것 역시 더 싫다.


반면에 예의 없는 사람은 행동이 쌩얼과 같아서 마음이 투명해 가늠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예의=정'을 뜻하진 않는다. 아무 상관이 없다. 아니 오히려 반비례에 더 가깝다. 예의 있는 사람의 우호적 언행은 거짓일 가능성도 있지만, 예의 없는 사람의 우호적 표현은 거의 본심이다.


그래서 난 집주인분의 많은 면모 중에 이런 예를 갖추지 않는 인간적임이 참 좋다. 투박하지만 따듯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함께 집 정리를 하고 나도 캐리어에 넣어온 짐꾸러미들을 푼다. 오늘 남편은 대구 스테이 준비로 대구에 간 바람에 나 혼자 짐 챙기랴 아이들 챙기랴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덧 집 정리도 마무리가 되어가고 아이들 하원시간이 다 되었다.


주인분은 입주 파티를 해주시겠다며 아이들 좋아하는 바비큐를 또 구워 주신다고 한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마당 화로에 불길이 이제 막 자리를 잡고 있다.


오는 길에 차에서 꾸벅 잠이 들 뻔한 아이들은 좋아하는 이모와 캠프 파이어가 있다는 말에 신이 나 벌떡 뛰어나온다. 20대 초반의 180이 넘는 큰 키가 무색하게 과묵하고 순박한 주인네 아들은 짖꿎은 아이들이 놀아달라는 대로 목마도 태워주고 하늘 높이 던지기 놀이도 해주면서 대신 아이들에게 시달려 주는 동안, 운전수가 있어서 차를 안 몰아도 된다는 그녀는 나와 와인 한 잔을 부딪힌다.


어느새 언제 데려간 줄도 모르고 가버린 일몰의 부재에 서운함도 잠시, 밤은 온 세상을 한 색깔로 차분히도 덮어준다. 심플해진 숲의 품에 아늑하게 감싸 안아진 채 유일하게 우리 정원만이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로 밤의 포옹에 저항해 본다. 1월 겨울의 싸늘함에 더 달큰하게 익은 고구마를 화로에서 막 꺼내, 식기 기다리지 못하는 아이들은 호호 불며 뜨겁다고 야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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