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먹고살기

인생 첫 자영업의 시작.

by 킴 소여

월요일 아침. 전날 낙상으로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다행히 타박상 외에 큰 이상은 없다고 한다. 눈 주위라 약도 조심스럽다며, 그저 시간이 약이라는 처방을 받는다.

내상은 입지 않았다는 말에 안심이 된 남편과 나는 다소 냉정하지만 아이들을 바로 어린이집에 데려다준다. 3개월의 제주살이 때부터 다니기 시작한 어린이집에 대구로 돌아가있는 동안 한 달째 결석하다가, 제주 이주 후 첫 등원하는 것이다. 첫날부터 눈이 팅팅 부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 민망하지만.. 오늘은 집에서 아이들을 볼 여유가 없다.


이제부터 본격 '생업 모드'로 돌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공부방 신규 교육 시작인 동시에 대구집 첫 숙소 예약준비해야한다.


브런치북[설섬행 비행기]20화에서 이야기한 대로 제주도로 이주할 때 본래의 대구 집을 그냥 비워두기는 아까워 숙박 플랫폼에 올려두었었다. 세를 놓으면 좋지만 빈집도 아니고 가전가구가 다 남아있는 아파트를 임대 놓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에, 되든 안 되는 올린 건데... 정말로 예약이 들어온 것이다!



MBTI가 한 자리만 다른 우리 부부.

남편은 INFJ, 나는 INFP다.

앞의 세 자리가 비슷한 덕에 남편과 나는 성향과 취향이 참 잘 맞아 이렇게 회사도 때려치우고 아무도 모르는 제주에서 자발적 고립을 즐기지만, 반면에 J와 P의 그 한 자리 차이는 행동에서 엄청난 차이를 불러온다.


이번 숙소 등록만 해도 그랬다.

모든 것을 완벽히 계획 후 실행하는 남편과 일단 시작하고 판단하는 나는 제주로 이주하기 며칠 전부터 이 문제로 갈등이 있었다.


남편: 아직 완전히 갖춰진 것도 아닌데 숙소 등록을 하려고 해~ 지금 짐 싸기도 바쁜데 숙소 사진 고만 찍고 짐이나 싸~! 등록은 나중에 다시 와서 준비를 끝내고 해도 늦지 않잖아~??


나: 제주에서 대구 오기가 쉬운 것도 아닌데, 지금 안 찍어서 안 올리면 어느 천년에 시작해?? 일단 대충이라도 올려놓고 진짜 이게 되는지 안되는지 간을 보고 준비하는 게 낫지~~ 그러려면 사진 잘 찍어 올리는 게 얼마나 중요하다고~~~!


일단은 나의 막무가내로 부족하지만 등록을 하였고, 가격을 인근 시세보다 저렴하게 올렸다. 그래서일까? 며칠 만에 예약이 세 건 들어왔다. 그런데 그중 하나는 당장 이번 주말 예약이었다!

아직 완벽하지 않은 지금. 예약을 거절하느냐 마느냐;;;; 한참을 고민 끝에 일단 우리에겐 4일의 시간이 남아있고, 시작하기로 한 거 GO~! 부딪혀 보기로 한다.


막상 시작하면 그 누구보다 완벽한 실행력의 남편은 즉시 내일 비행기를 예약하였고, 공부방 교육이 마치자마자 우리는 부랴부랴 더 필요한 소품들을 준비하느라 다이소, 모던하우스, 쿠팡 등을 다 털어 갖은 쇼핑을 다 한다.

조급한 쇼핑의 결과물..;


집에 돌아온 저녁. 녹초가 되어 아이들 어린이집 하원 시간을 겨우 맞춰 데리고 들어온다.

"아... 제주에서 나답게 살..려고 왔는데 왤케 힘드르지..?"

바닥에 쓰러지며 남편에게 푸념을 한다.


근데 참 이상한 기분이다.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한 게 아니라 일을 하느라 피곤한 건데,

일하느라 피곤하다는 결과만 보면 회사 다니느라 피곤한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데..

이 피곤함이

재밌다.ㅎ


먹고살아야지~ 제주에서라도.

나 혼자도 아니고 자식 둘이 있는데..

그런데.. 그래서 시작한 건데..

그래도 이왕 할 돈 벌이의 일이 비록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을 만큼 덕업일치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할 일을 내가 다 정하는 '자영업'을 처음 겪은 오늘 하루의 기분은

황야지에 홀로 던져져 내 집을 처음 짓기 시작하는 목수가 된 것 같았다.


남에 의해 업무가 정해지는 직장생활만 할 땐 몰랐던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고

한걸음 한걸음이 낯설고 힘들긴 한데

'이게 다 내 집이 될 거라는' 포만감.


힘들어도 내가 선택하고, 쉬어도 내가 선택하고

그리고 힘든 만큼 그 보상도 온전히 내게 다 오는

덜 일하든 더 일하든 월급이 고정인 직장과 달리,

노력과 보상이 어느 정도 비례하는

이 직관적인 자영업의 장점이자 단점이

순수 직장러에겐 하나하나 신기하게 다가온다.


허허~.. 아직 내가 배가 덜 고파봐서 그런가~


아직 나다운 삶이 뭔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적어도 내가 짓는 밥이 내 입으로 들어가는

자영업자의 보람감.

처음 겪어보는 몰랐던 즐거움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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