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드디어 공부방을 오픈하였다. 3주간의 입문 교육을 거쳐 인허가 취득을 완료하자 개점 승인이 났다. 제주 이주한 지 한 달 만의 일이다. 놀라운 건 공부방 '준비'와 '오픈'의 경계가 종이 한 장 차이는커녕 거의 투명할 지경이라는 거다.
'개업할 땐 떡을 맞춰야 한다'는 엄마의 말에 그냥 그래야 되는가 보다 싶어 근처 아무 떡집을 찾아 주문한다. 한 시루 단위로 밖에 주문이 안된다는 떡집 주인의 말에 한 시루가 얼만큼인지 모르기에 그럼 그렇게 해달라고 한다. 당일날 막상 떡을 찾으러 가서 실감하는 떡의 스케일에 조금 당혹스럽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 제주. 개업떡을 맞춰야 한다길래 맞추기 했는데 이걸 누구한테 돌린다 말인가. 공부방의 입지가 상가가 아니어서 주변 상인들에게 돌릴 수도 없다. 그렇다고 오피스텔 주민들에게 돌리려 해도 제주 오피스텔의 특징 상 육지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비어있는 집들이 상당수다. 언제 돌아올지 모를 빈 집 문 앞에 걸어두기도 매우 애매하다.
괜히 생각 없이 맞췄다가 생각할 일이 많아진 떡의 존재에 심란한 마음을 엄마에게 화살을 돌린다. 그러자 엄마는 명쾌한 해답을 주신다.
"냉동해!"
급 가벼워진 마음으로 접시에 떡을 한 판 올리고 막걸리를 따르며 어딘지 모를 곳에 '잘 되게 해 주십시오~~' 막연히 빌어본다.
미신을 믿지 않는 내가 개업떡을 맞추고 고사까지 지낸 이유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남들 하는 데로 그냥 한다는 것'의 심리적 편안함. 다수라는 근거는 그 자체만으로 그것이 옳고 그르고 스스로 판단해야 할 피곤함을 덜어준다. 두 번째 이유는 막상 개업을 했는데 학생이 0명인 상황에서 아무 달라진 것이 없는 공허함에 대한 일종의 '폭죽' 같은 것이었다. 오픈 전과 후를 나누는 상징적인 뭔가를 하고 싶었다. 그게 뭐든.
학생이 0명이라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눈만 뜨면 온오프라인을 망라하고 홍보에 총력을 기울였다. 아직은 바깥 온도가 얼큰히 추운 2월의 겨울. 뜨끈한 순대국밥을 점심으로 먹으며 좀 잇다 인근 유치원 하원홍보를 어떻게 할지 토의한다. 지난번 풍선은 반응은 좋지만, 부는 기계 없이 생 입으로 불다 보니 볼이 아직도 얼얼하다느니. 이번엔 전단지에 아이들이 좋아할 간식류로 '마이쮸'를 붙이는 게 더 좋을지, '하리보'는 너무 단가가 높은 건 아닌지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이 상황이 객관화되면서 둘 다 웃음이 터진다. 멀리서 보면 모든 것이 희극!
언제까지 학생이 0명이어도 웃음이 나올 수 있을지, 그리고 잘 되긴 할지. 여러 의문들을 뒤로한 채, 시작하는 우리는 아직은 불안보다 희망으로 좀 더 기울어져 있었다.
허나 시간이라는 추는 지날수록 불안 쪽으로 쌓여 기울기 시작한다.
2주 뒤.
전날 밤 비가 어찌나 세게 내리치던지 잠결에도 바닥에 빗줄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하도 따가워 잠이 깼다가 뭐라 중얼거리며 다시 잠들었던 기억이 아침에 눈뜨자 어슴푸레 난다. 아침까지 여전히 비는 계속됐지만 간밤에 힘을 다 뺀 비는 조금 쳐져 있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비 예보에 외출을 접어두고 집콕을 하는 수밖에.
제주는 현재 겨울 장마로 며칠째 계속 흐리거나 비인 날씨다. 우리 가족은 4명 모두 심하고 덜 심하게 각각 감기를 앓고 있다. 그리고 오픈한 지 2주가 지나도록 학생은 커녕 문의 전화 한 통 없다. 겨울의 무색의 비 오는 제주. 그토록 아름답기만 했던 제주가 갑자기 흑백의 현실 터전이 되었다. 속은 기분이 든다.
못생긴 제주와 병약한 신체는 나약한 정신을 낳기 안성맞춤의 조건이다. 이럴 땐 어쩌겠는가. 정신의 기반은 신체요. 꿈의 기반은 현실이니. 거스를 수 없는 우울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마음껏 가라앉을 수밖에. 실컷 때리고 난 파도가 언젠가 해안가로 밀어 올려줄 때까지..
그 주 토요일. 남편은 이번 주도 대구 집 스테이 청소를 위해 대구로 가는 날이었다. 그날도 여전히 며칠째 계속되는 비에 강풍까지 더해갔다. 그런 음울한 날. 나는 남편이 없을수록 엄마가 더 기운을 내야 한다며 아이 둘을 데리고 '무민 랜드'에 갔다. 핀란드 만화 무민 캐릭터들이 전시된 사진 찍기 좋은 테마파크인데, 비 오는 날 실내 관광지로 저장해 둔 장소였다.
무민 랜드 입구에 도착하자 하얀색 캐릭터들과 대비되는 원색의 감각적인 세트장이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 귀여운 캐릭터와 나란히 서있는 귀여운 아이들. 엄마의 본능으로 다급히 핸드폰 카메라를 집어드는데.. 아뿔싸! 폰 배터리가 5%다! 사진 명소에 카메라 없이 한 시간 거리를 입장료 내고 들어오다니. 이건 뭐 실컷 전쟁 준비해 적진에 도착했는데 무기를 싹 다 두고 온 격이었다.
'에휴~... 남편이 없으니 내 빈틈을 채워줄 사람이 없군 ㅠㅜ'
남편의 빈자리를 메꾸려다 더 빈자리를 느끼면서 사진 맛집에서 예쁜 포토존들을 눈으로만 담아야 하는 씁쓸한 엄마와 다르게, 이런 안타까움을 모르는 아이들은 즐겁다.
관람을 마치고 차로 돌아오자 때마침 전화가 들어온다.
'으잉? 투폰 전화잖아?!'
여기서 투폰이란 한 핸드폰 기기에 두 개의 연락처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인데, 공부방을 오픈하면서 공부방 전용 연락처를 개설하였다. 공부방 오픈 2주이래 투폰으론 스팸 전화 외엔 울린 적 없었는데 일말의 희망에 두근두근 전화를 받는다.
"안녕하세요. 거기 000 공부방 맞죠?"
진짜 문의 전화다! 첫 번째 문의 전화!!
"네~ 맞습니다^^"
그렇게 10분가량 전화를 주고받고 당장 이틀뒤 월요일 4시에 상담 일정을 잡고 전화를 마친다.
평일 4시면 우리 아이들 하원시간이라 데리러 가야 하지만, 내일 일요일에 남편이 대구에서 비행기로 돌아올 것이다. 그럼 월요일 4시에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러 가고, 나는 상담을 하면 되는 완벽한 일정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집까지 한 시간의 길이 지겨울 겨를 없이 아이들은 차가 출발하자마자 입을 벌리고 곯아떨어졌다. 차창 밖으로 안덕 고원지대에 펼쳐진 목초지를 가로질러 한가로이 존재하는 말들이 군데군데 지나간다. 빽빽한 숲의 산간도로를 뚫고 치유의 숲 입구를 지나는 산록남로의 길도 눈을 즐겁게 한다.
다음날 아침. 아침 식사로 칼국수를 만들다가 감자를 깎던 중 그만 야채칼에 손이 베인다. 피가 후두둑 떨어지면서 쌀 한 톨가량 살이 움푹 파였다. 엄마의 호들갑에 아이들이 달라붙어 "엄마 괜찮아~? 아프겠다.." 하며 달래주는데도 놀란 마음이 영 달래 지지 않는다. 이럴 때 남편이 없는 게 문득 서러워져 굳이 스테이 청소하느라 고생 중인 남편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실컷 위로를 해주길 요한다. 그땐 몰랐다. 그게 드라마 속 그 흔한 복선이 될 줄은...
오늘따라 비바람은 더 심하게 불었고, 저녁 비행기로 돌아오기로 한 남편은 이륙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이상하게 전화가 안된다. 한참 뒤에야 전화가 온 남편은 '제주 강풍으로 비행기가 제주까지 다 와서 이륙하지 못하고 상공에서 기회를 엿보다가, 기장이 여러 번이나 목숨을 걸고(?) 시도를 하였으나 승객들에게 잊지 못할 비행 공포증만 심어주고 결국은 대구로 회황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남편의 이야기가 어디까지 사실이고 과장인진 모르겠으나 남편은 360도 도는 비행기 안에서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고 한다.
'그나저나 내일 내 상담은??'
남편이 살고 나니 떠오르는 현실. 4시에 잡힌 상담은 아이들 하원시간과 겹쳐서 남편 없이 불가능한 일정이었다. 그렇다고 첫 상담을 날짜를 미루자니 아, 학생 0명의 절박한 신규 원장 입장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 결정이었다.
'왜 하필 첫 상담에 비행기가 안 뜨는 거냐고오... 이놈에 제주 날씨.'
애꿎은 제주를 원망하며 월요일이 되고, 남편은 결국 월요일에도 제주로 오지 못했다.
상담을 미루느냐, 아이들을 늦게 데리러 가느냐.
난 결국 상담을 택했고, 어린이집에 너무 죄송하다고 오늘 하원이 늦어질 것 같다고 미리 양해를 구하였다.
첫 상담. 학부모는 지금 돌아봐도 손에 꼽히는 깐깐 아니 꼼꼼한 학부모였다. 나는 초보 원장임을 티 내지 않으려 애쓰며 학부모의 세세한 질문에 회사에서 갈고닦은 상담스킬과 임기응변으로 겨우겨우 상담을 마쳤다. 학부모는 고민해 보고 등록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상담을 잘했나 못했나 돌아볼 겨를도 없이 아이들을 데리러 30분 거리 어린이집으로 달렸다. 아슬아슬하게 어린이집 문 닫는 시간에 맞춰 도착하였다. 교실 안엔 우리 아이 둘 밖에 남지 않았다.
깊은 어둠이 내린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안 가득 어둠을 지우려 재빨리 불을 켠다. 천장등이 켜지자 어둠이 사라진 자리에 남편의 빈자리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여전히 강풍으로 돌아오지 못한 남편. 뒤늦게 되돌아보는 첫 상담. 고민해 보겠다는 학부모. 알 수 없는 낯설은 감정들에 오한이 들어 괜스레 양팔에 아이들을 더 꽈악 끼고 잠이 드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