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삶과 소수가 되는 삶에 대하여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중
설 연휴 전날. 세상은 온통 연휴를 맞이할 준비에만 몰두해 일상을 잊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얼른 꾹 참고 때우는 하루로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직은 평일임에도 문을 벌써 닫은 가게도 있고, 열더라도 연휴 중 휴무를 대비해 재료를 조금만 가져다 놔 형식상으로만 문을 열어 놓는 식이었다.
우리 가족은 제주 이주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아 이번 명절은 따로 올라가지 않기로 한다. 온 세상이 설연휴를 향해 달려가는데 우리만 물살을 거스르는 듯하다. 세상에서 열외 된 느낌. 물론 우리가 자처한 거지만 기분이 묘하다. 다수를 거스르는 일이 반복되고, 선택한 길은 생각처럼 바로 술술 풀리지 않는다. 이제야 소수이길 택한 이 이정표 없는 길이 아주 위태로운 얇은 외나무 위였음이 보인다.
제주 이주 1개월. 퇴사 후 백수 5개월 차. 느는 것 없이 줄어들기만 하는 통장 잔고. 자신감에 가득 차 앞만 보던 때엔 보이지 않던 위험들이 조금씩 차오르는 불안과 의심들로 아래를 내려다보게 만든다. 다수에 소속된 안정감. '다수가 선택하는 것엔 다 이유가 있다'는 다수의 무적 같은 논리에 대항해 소수가 되고자 선택한 길. 그토록 자신만만히 무리를 이탈한 선택이었건만, 지금은 힘껏 노력해야만 흩어지는 자신감을 가까스로 붙잡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설 연휴 첫날. 복잡한 내 기분과 별개로 아이들은 언제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첫날부터 아이들을 위한 여행지로 일정을 잡는다. 아이들에게 가장 가고 싶은 곳을 물어 선택한 원픽 뽀로로 테마파크. 7살이면 뽀로로를 시시해할 법도 하지만, 미디어 노출이 적어서인지 우리 아이들은 아직도 뽀로로를 좋아한다. 테마파크에는 설 명절 특집으로 더 많은 이벤트와 인파가 있었다.
둘째 날은 설 당일날이므로 영상통화로 세배를 올린다. 양가 부모님들께 직접 찾아뵙지 못하는 대신으로, 지난 추석에 이어 두 번째 영상 세배에 불효자가 된 듯 죄송한 마음이 든다.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려고 제주에 내려왔나 의구심이 고개를 들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오래가지 못한다. 오늘의 행선지인 동백 포레스트로 꽃놀이를 나갔기 때문이다. 지는 순간까지 아름다운 동백꽃의 절개는 어두웠던 마음에 살충제 뿌려 박멸시킨다. 사진도 많이 남기고 카페에서 달콤한 디저트도 즐기고 즐거워진 기분으로 집에 돌아온다. 그 에너지로 명절기분을 내보고자 아이들과 함께 윷놀이를 하며 우리만의 설을 보낸다.
셋째 날은 애월에 새별프렌즈로 동물체험을 갔다. 얼굴만 검정인 양, 앵무새, 알파카, 깡통기차들을 보고 즐기며 잘 짜여진 알찬 프로그램들에 지겨울 틈이 없어 나중엔 진이 다 빠진다. 그렇게 3일을 연달아 최선을 다해 보낸 우리 가족은 집에 돌아온 저녁부터 다음날인 연휴의 마지막날까지 쭉 뻗어 집에서 휴식을 취한다.
연휴 마지막날 밤. 그 누구보다 충실히 제주를 즐기며 알찬 설 명절을 보내고, 나에게 남은 일은 잔뜩 채운 추억들을 일기장에 풀어놓는 것이다. 그런데 일기장을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인다 싶어 온 방을 뒤적이던 중, 차에 두고 왔던 것이 뒤늦게 생각난다. 허나 지금 2월 겨울밤, 칠흑 같은 추위를 뚫고 차로 걸어가 일기장을 꺼내올 용기가 선뜻 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글은 적고 싶을 때 적어야 가장 오롯한 내 마음을 그대로 옮길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곳에라도 적어둘 요량으로 책장에 꽂혀있던 아무 일기장을 하나 집어 꺼내 대신 남겨보기로 한다. 오랜만에 펼친 꽉 찬 일기장에서 글을 쓸 수 있을만한 빈 페이지를 찾아 넘기던 중 그 당시 2년 전 '제주 여행 때' 쓴 일기를 발견한다.
그때도 제주의 자연에 큰 감동을 느꼈고, 여행의 마지막날은 이곳을 떠나지 않아도 되기를 간절히 갈망한다. 그리고 현재. 2년 후, 갈망을 실행에 옮긴 지금의 나는 막상 갈망을 이루고도 이것이 맞는가에 대해 또다시 갈망하고 있었다.
잠시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본다. 밤하늘에 빼곡히 수놓은 별들이 보인다. 언제 보아도 처음 보듯 설레는 저 별들은 실제론 눈에 보이는 것 그 이상으로 훨씬 더 많이 존재하겠지. 그러나 그 많은 별들이 도시에선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 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자연. 밤새 꺼지지 않는 네온사인과 매연에 눈이 멀어 자연을 보지 못하는 문명.
도전. 새로움. 예측 불가능한 미래. 그리고 불안.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고, 그토록 원하던 갈망을 이룬 자신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이전과 다른 단조롭지 않은 매일매일과 한걸음 걸음들이 새롭고 알 수 없는 나날들에 스치는 거친 파도가 차갑게 느껴진다.
매달 월급이 나오는 '직장'이라는 계획 가능한 미래. 회사라는 거대한 유람선 안에서 수백 명의 선원 중 한 명이 되어 톱니바퀴가 되는 안정감. 그 안정감은 너무나 달콤하다. 내가 굳이 사고하지 않아도 되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남들 가는 대로는 가고 있다는 편안함.
그와 반대로 남들과 다르게 사는 개척하는 삶은 나룻배와 같다. 한걸음 한걸음이 다 내 노질에 의해 정해진다. 밤새 사고하고 사고하고 또 사고하며 깨어있어야 한다. 이는 모든 걸음이 나 자신이기 때문에 다음을 알 수 없고, 외롭고, 두렵다. 그렇지만 살아있다.
대부분은 안정감을 위해 살아있음을 포기한다.
편안하게 죽어있기를 택한다.
혼자 이 넓은 대양을 건너는 것이 두려울 때도 있지만, 모든 걸음들이 내가 택했다는 것이 나를 살아있게 한다. 한 걸음을 내딛고 잘못 딛지 않음에 안도하고, 실패했을 땐 좌절한다. 다음에 또 내딛을 걸음을 예측할 수 없어 너무 긴장되면서, 그만큼 나만 발견할지 모를 보물섬이 기대된다.
예측 불가능함으로 불안이 영혼을 잠식할 때도 있다. 요 며칠간 내가 그랬으니까. 하지만 불안을 피하고자 안정을 택하는 것이 맞을까? '안정된 삶, 성공, 타인의 인정'과 '나, 가족, 흘러가버리는 시간들'과 맞바꿀 만큼??
비록 난 안정감을 놓고 나머지를 얻었지만, 대신 이따금씩 꼬리처럼 따라오는 '불안감'을 완전히 잘라낼 순 없다. 불안감이 가끔 나를 덮치겠지만, 완전히 집어삼켜지지 않도록 이렇게 자연과 자아와 사랑이 주는 힘으로 이겨내면 된다. 그렇지 않고 안정감을 포기하고 얻은 모험에서 결국 불안에 잠식된다면, 모든 걸 잃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가 되겠지.
그래서 나 자신은 이 길이 진리임을 알더라도 함부로 주변에 권할 순 없다. 웬만한 멘탈과 단단한 철학이 없다면 안정감을 포기하고 소수가 되는 길은 아무나 할 수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양을 건너는 나룻배에서 파도와 상어 떼의 공격에도 전복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자만이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와 같이 청새치의 뼈를 이고 돌아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