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라는 꿈의 장소는 와버린 이상 현실이 된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감을 잡기 위해 나는 무언가 하거나 되지 않으면 안 됐다. 흔히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덕업일치'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일과 취미는 분리해야 한다'는 주의다. 일의 첫 번째 목적은 '돈'이며, '자아실현'은 덤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자유를 얻어서 좋아하는 것을 그저 취미로 직업 삼는다면야 가장 이상적이지만, 보통은 사는데 필요한 만큼의 돈을 얻기 위해선 일을 해야 한다. 그럼 반드시 내가 원하지 않을 때, 원하지 않는 만큼 일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자발적 사랑은 강요가 되는 순간 의무가 되듯이 취미가 일이 되는 순간 더 이상 순수해지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을 위해 어떤 일이든 해도 좋다는 건 아니다. 기왕 한다면 좋아하는 정도까진 아니어도 '싫어하지 않는 일'이라면 꽤 성공적인 직업이며, 심지어 '잘하는 일'이면 성과를 내기 좋아 목적하는 돈을 얻기 쉬우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으리라. 실제로 <작은아씨들> 삽화가로 많이 알려진 타샤 튜더도, 사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그린게 아니라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30만 평의 정원을 가꾸고, 생계자금을 마련하는 수단으로 자신이 잘하고 덜 싫어하는 그림을 선택한 것이라고..
그래서 내가 선택한 수단은 '공부방'이었다.
아이를 가르치는 것을 대학생 시절 과외나 교육봉사로 경험한 적이 있었는데, 꽤 잘했으며 보람까지 있었다. 거기다 공부방 창업의 초기 비용이 높지 않아 더욱 쉽게 시작해 볼 수 있었다.
오늘로 공부방 이론교육 3일 차. [이론-실기-본사교육] 3단계의 입문교육 일정 중 이제 첫걸음이다. 서귀포시에서 제주시를 오가며 지사에서 교육을 듣고, 중간중간 과제와 시험을 치르고 있다. 퇴사 4개월 차인 백수는 간만에 주어진 할 일이 활기를 준다. 그리고 모든 어른들이 어릴 땐 몰랐던 '공부가 제일 쉽다'는 진리를 되새기며, 노력과 결과가 무관한 불공정이 만연한 사회의 실상 속에서 공부는 참 공정하다 못해 정의롭게까지 느껴진다. 어쨌든 노력하면 되니까.
오늘은 교육이 마치는 데로 집이 아닌 '공부방'으로 향한다. 지난주 아이들이 방해될 것 같아 하지 못한 '공부방 초도 물품 설치'를 하러 남편과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먼저 택배 박스들을 하나하나 뜯는다. 그리고 뜯기만 하면 되는 완성된 가구들을 먼저 배치한 다음. 조립해야 하는 가구들은 남편이 공구로 만드는 동안, 나는 잔잔한 수업 교구들이 빠짐없이 왔는지 검품하고 적당한 자리에 배치한다. 그렇게 두 시간 남짓 부지런히 뚝딱뚝딱 정리하다 보니 어느 정도 공부방의 모습으로 자리 잡아간다. 이제 좀 허리를 펴보려고 하는데
"띵동 띵동~!"
때마침 인터폰이 울리며 기다리던 물건이 도착한다. 설령 공간이 좁아 책상 하나를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그것, 초록의 생명! 커다란 아레카 야자가 하늘하늘 손가락 같은 잎사귀를 흔들며 등장한다. 미리 점찍어둔 자리로 내려 놓인 순간! 드디어 공부방 1차 세팅이 완성된다.
텅 빈 공간에 가구가 놓이자 장소가 되었다. 제법 면학 분위가 조성된 공부방. 그리고 차차 더 채워져 나갈 내 일터.
에어비앤비 호스트, 공부방 원장, 작가.
무엇이 나를 가장 대변하는진 잘 모르겠다. 사실 그 모두이기도 하며, 어떤 것도 아니기도 하다. 다만 저 쉼 없이 밀쳐 오르는 파도와 같이 철썩철썩 여기저기 부딪히며 이 세상을 헤엄쳐 나가고 있음이다. 이는 뭔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한 끝없는 꿀렁임이며,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부딪히고 부서진다. 나라는 원소 덩어리들은 흩어졌다 모아 졌다를 반복하며 참자아를 향해 계속 헤매며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 해방이라 부르는 참된 나로 가기 위해 인간은 태어난 이래 많은 부딪힘 들을 겪어왔으며 그 과정 속에서 천천히 자신이 되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자신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는 '침잠의 시간'이 필요한데, 이를 현실에선 '여가시간'이라고 말하고, 돈은 이 여가시간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다만 그 이상을 원할 시 나를 위해 돈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되려 나를 제물로 바치며 결국 돈에 잡아먹히는 우를 범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직업, 돈 그리고 해방.
내가 잘할 수 있고 싫어하지 않는 여러 페르소나를 거치며 나로 가는 해방의 길을 느리더라도 나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