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실수록 목이 마른다.
우리가 어떤 행복을 얻으면 우리의 욕구는 그 압축기를 풀어놓고 멋대로 팽창해 나가므로 이때에 우리가 갖는 기쁨은 이 팽창 작용을 느끼는 데 불과하다. 그런데 이 기쁨도 고통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다만 욕구가 팽창되기까지 작용할 뿐이다. 그리하여 새로 넓혀진 욕구의 범위에 익숙해지면, 이에 따르는 모든 소유는 당연한 것으로 알고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게 된다.
돈은 바닷물과 같은 것으로, 마실수록 목이 마른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제주 이주를 결정한 이후, 비어있게 될 대구 본 집을 조금이라도 유용하게 활용해 보고자 여러 실험을 하는 중 가장 먼저 반응이 온 것은 '에어비앤비'였다.
아직 매뉴얼도 갖춰진 게 없는 우리는 여러 플랫폼에 집을 덜컥 등록하곤, 막상 진짜 예약이 들어오자 첫 호스팅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우왕좌왕이다. 우선은 손님에게 보낼 '사전 안내 메시지'를 만드는 것이 가장 첫 번째 일인 것 같아 급하게 멘트를 만들어 본다. 참고할 만한 자료로 예전에 이용했던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받은 안내 메시지들을 되찾아보며 폼으로 만든다. 여러 수정 끝에 우리만의 사전 안내 문자를 첫 손님에게 전송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보낸 메시지를 알리가 없는 손님은 자동 안내 메시지겠거니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메시지를 읽고는 따로 답변은 없다. 그리고 입실 당일이 되어 오전에 상세 주소와 현관 비밀번호 등의 내용이 들어간 '체크인 안내 메시지'를 미리 준비해 놓고 전송했다. 이번에도 입실시간인 오후 3시가 넘도록 '1' 표시가 사라지지 않더니 4시가 다돼서야 메시지를 읽고 역시나 따로 특별한 답장은 없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나도 대게 숙박시설을 이용할 경우에 안내 메시지들의 정보만 파악하느라 바빴지 특별히 호스트에게 답장을 보낸 일은 거의 없었다.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는 문의할 게 있거나 불편 사항을 제기하지 않는 이상, 숙소가 기대만큼 또는 그 이상일 경우엔 숙소를 즐기기에 바빠 따로 연락하지 않았었으니까.
그런 마음을 알기 때문에 첫 게스트의 무응답이 서운한 건 전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궁금한 마음까지 접을 순 없었다. 체크인을 한 시간부터 1박 2일의 게스트가 퇴실하는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나의 하루는 내 할 일을 하는 동안에도 마음의 일부는 스테이 생각으로 조금 떼어져 있었다.
'입실은 잘했을까?
우리 집은 마음에 들어 할까?
지금쯤이면 뭘 하고 있을까?
수건이 모자라진 않겠지?'
등등의 잡생각들이 첫 호스팅의 설렘과 긴장으로 가득 범벅이 되는 것이다.
오전 11시 퇴실 시간이 지나자 에어비앤비에서 팝업 메시지가 뜬다.
"옴마나? 자기야. 진짜 숙박을 하긴 했나 봐~ 알림도 뜨고, 통장에 돈도 진짜 들어왔어!"
첫 호스팅이 마냥 신기하고 아직 믿기지 않는 나는 유일한 동업자인 남편을 붙들고 호들갑을 떤다. 지금 몸이 제주에 있어 대구로 달려가 눈으로 직접 볼 수도 없을뿐더러, 손님마저 답변이 없으니 더욱 이게 진짜 제대로 이루어진 건가 와닿지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에어비앤비 측의 '축하 알림'과 그 무엇보다 현실적인 '돈'을 보니 그제야
'아~ 진짜 현실에 일어난 일이구나~' 싶은 것이다.
그리고 이 흐름에 힘입어 말 수가 없으신 첫 게스트님에게 메시지를 보낼 용기가 샘솟는다.
[숙소에서 좋은 시간 보내셨을까요~^^
혹시 부족하거나 불편했던 점 공유해 주시면 개선토록 하겠습니다~:)]
허나 게스트는 이번에도 묵묵부답이다. 보내고 나니 메시지 내용도 '부족하거나 불편했던 점'을 공유해 달라니. 너무 자신감 결여에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이쯤 하니 혼자만의 첫 호스팅 집착 놀이는 그만 떠나보내줄 수 있게 된다. 이제 다음 일을 생각하자~!
다음 예약은 일주일 뒤. 이번 첫 손님이 머물고 간 집 청소는 내가 직접 대구로 올라가 해 볼 요량이다. 지난번 남편 혼자 고생한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직 성에 차지 않는 인테리어 꾸미기를 보충하기 위해서다. 데코는 전적으로 내 담당이다. 대구로 올라가기 전까지의 며칠시간 동안 추가로 꾸밀 것들을 구상하며 소품들을 검색하는 동안, 또 새로운 예약이 들어왔다! 그것도 이번엔 일주일 예약 건이다!
첫 호스팅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들어온 장기 예약에 남편에게 달려가 환호성을 지른다. 무엇보다 제주와 대구를 오가며 관리 중인 아직 틀도 안 잡힌 초짜 호스트에게 왔다 갔다의 수고를 덜어주는 장기 예약은 더더욱 감사할 따름이었다. 기꺼이 예약을 수락하려는데!
무슨 신의 장난일까.
때마침 같은 기간에 중복으로 문의가 들어온다. 그것도 40일치 예약문의로!
말도 안 되는 우연으로 우리는 일단 일주일 예약 요청 수락을 잠시 뒤로하고, 40일 예약문의자에게 솔직한 심정으로 답변한다.
[안녕하세요~ 문의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현재 같은 기간에 다른 예약 요청이 먼저 들어와 아직 수락 전 상태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더 장기 예약인 게스트님에게 우선권을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예약 계획 중이시라면, 죄송하지만 빠른 예약 신청 바랍니다.]
새삼 '관광지도 아닌 대구에 예약이 들어오긴 할까?'라며 숙소 등록을 하던 때가 불과 몇 주 전인데, 예약 요청을 견주고 있는 지금 상황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내일 바로 결재를 하겠다는 40일 게스트의 답변에 신이 나 일주일 예약 신청 건을 바로 '거절'한다.
하지만 결재를 바로 하겠다던 40일 게스트는 다음날이 되어도 결재를 하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그제서야 손 안에서 놓친 일주일 예약 건이 너무나 후회된다. 내가 거절해 놓고 지금 와서 다시 예약을 해달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확실히 예약을 확정 짓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먹기 좋은 감이었던 일주일 예약을 놓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결재를 기다리며 3일 내내 우울히 지내고 있는 와중에..
신은 마지막 대어를 내게 던진다.
40일 게스트가 마침내 결재를 함과 동시에!
같은 기간에 새롭게 90일치 예약 문의가 들어온 것이다!!
참 내가 쓰면서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고, 그때 당시에는 몰랐는데 돌아보고 나니 그 시기에 대구의 EXCO에서 큰 컨퍼런스가 열리는 기간이라 그랬던 것도 같다. 아무튼 그 말도 안 되는 우연이 세 번이 겹쳐 일어났고, 그저 더 큰 감이 먹고 싶은 마음에 현명한 이성을 유지하지 못한 나는 똑같은 실수를 또다시 저지른다.
더 장기 고객인 90일 손님에게 우선권을 주려다 40일 손님의 예약 요청이 결제 시점으로부터 24시간이 지나 자동취소된 것이다. 그리고 유독 질문이 많은 90일 손님의 질문에 온 정성으로 답변을 기울이며, 이제는 절대로 성공시켜야 하는 가장 큰 감을 먹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데...!
갑자기 출장일정이 변경됐다며 예약이 어렵게 됐다는 90일 손님은 홀연히.. 떠나버렸다.
어느 하나 탐스럽지 않은 적 없던 내 좀 덜 크고 , 더 큰 감들을 모두 가지고서...
이건 뭐 폭풍 같은 3일의 혼란이 내 하루들을 다 집어삼키고 내게 남은 건 허무와 자책뿐이었다. 멍청히 내 멍청함들을 곱씹어 보고 있을 때,
"뾰롱!"
폰에 알림 하나가 뜬다.
[새로운 후기가 등록되었습니다.]
읭? 그간 전혀 말이 없던 첫 게스트가 3일이 지나서 갑자기 후기를 남겼다.
쿵.....!
온몸에 힘이 빠진다.
그놈의 돈이 뭐라고.
참.. 집을 꾸미는 자체가 '예술 행위'같다며 즐거워했던 시간은 어디 가고,
비워두는 집이 아까워 제주 집 월세만큼만 이라도 벌면 좋겠다는 '초심'은 개뿔 사라지고.
첫 예약의 기쁨도 잠시. 갑자기 동시다발적으로 던져지는 신의 장난 같은 미끼질에 정신을 놓고 눈을 부랄키며 허우적 대다, 결국 어느 하나 먹지 못하고 입천장만 너덜해진 짐승이 보인다.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자영업에서 더 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위다.
하지만..
그 '이익'이란 과연 얼마만큼을 말하는 걸까?
그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한도 없는 목표'인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 중 하나인 쇼펜하우어는 그랬다.
인간의 많은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돈'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지만
돈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실수록 목이 마르다..
그래서 참된 자아를 추구하는 행복이 사실 그 어떤 것보다 큰 행복을 준다...
안다. 머리로는..
그러려고 제주에 왔고.
하지만 여전히 내면의 참된 행복과 외부의 물질적 행복 사이에 균형을 잡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리고 특히나 눈앞의 유혹에선 속절없이 평정심을 잃는다.
요 며칠간의 일이
정녕 속세를 버리고 제주를 온 것이 맞는지
진정 해방에 이를 준비가 된 건지
나를 테스트하기 위한 신의 낚시질인 것만 같다.
그리고 다음날.
40일 손님이 재결재를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