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정원의 금메달

by 킴 소여

연두, 청녹, 카키, 올리브, 세이지, 민트. 초록색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중에서도 '여름의 초록'은 초록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환한 미소가 담긴 색이다. 우리 집 정원의 여름은 그런 한껏 환한 초록의 잔디와 여러 풀과 나무들로 싱그러움을 서로 경쟁하듯 빛나고 있다. 특히 가장 치열하다는 여름의 정원에서 금메달리스트는 '흰백일홍'이다. 오늘은 우리집 정원의 흰백일홍나무를 조금 자랑해보려 한다. 올림픽 금메달 감을 나만 독점하자니 우쭐하면서도 혼자 보기 아까운 연유에서다.


울창한 나뭇잎 사이. 새끼손톱만한 하이얀 꽃뭉치들이 곳곳에 다발다발 뭉쳐있다. 여름의 초록들 사이에서 혼자 순수한 그 흰 뭉치를 보고 있자면, 갓난쟁이 아기의 뽀얀 엉덩이를 보는 마냥 마음이 몽글해진다. 또 향은 어찌나 단지 정원에 많은 꽃들을 제쳐두고 모든 벌과 나비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현관을 나와 마당을 지날 때면 늘 백일홍 나무 아래에서만 행복한 벌들의 노랫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붕붕 울린다.


심지어 흰배롱나무는 지고 나서도 심장이 아릴 만큼 아름답다. 이건 보지 않고선 믿기지 않겠지만 결코 과장이 아니다. 현관문 앞 새파랗게 뻗어 올린 연둣빛 잔디풀밭 위에 배롱나무 아래에만 흰 눈이 소복이 내려있다. 녹지도 않는 저 소복한 눈꽃들을 지날 때면 나는 자동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한 번은 시원하게 여름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비에 갇혀 외출도 하지 못하고 거실창으로 바깥만 아련하게 쳐다보았다. 세상을 다 씻어낼 듯 굵게 떨어지는 부지런한 빗방울과 함께 주르륵 낙화하는 하이얀 꽃비! 이 예기치 못한 거실 통창 속 향연은 꽃잎의 낙화가 비극적이면서도 그 죽음이 너무 아름다워 공연이 끝날 때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아쉬움과 황홀함이 동시에 드는 절망적인 환호에 핸드폰 카메라만 안타깝게 들이밀던 나는 가련한 기술의 한계를 깨닫고, 이 순간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행동을 한다. 포트기에 물을 올려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릴 뿐.


백일홍나무는 7월부터 10월에 걸쳐 꽃이 한 번에 다 피고 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날에 걸쳐 번갈아 피고 진다. 그렇게 거의 100일 동안 긴 시간 꽃이 피어있다고 하여 '百日紅'나무라고 불리며, 비슷한 발음으로 배롱나무라 불리기도 한다. 주로 꽃의 색이 홍자색인데, 드물게 흰색 종을 '흰배롱나무'라 한다. 제주에 오기 전까지 도시에서만 살던 나는 자연을 우상하면서도 꽃나무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배롱나무도 이 집에서 처음 만난 것이라 모든 배롱나무가 흰색이고 다 이리 아름다운 줄 알았다.


후에 제주 곳곳에서 여러 배롱나무들을 보게 되었고, 알게 된다. 배롱나무는 내 배롱나무여서 특별하다고. 이 세상 아무리 많은 장미들이 있더라도 내 장미가 가장 아름답던 어린왕자의 마음을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정말 그랬다. 현재 이 글을 쓰는 1년이 훨씬 더 지난 시점에서. 그러니깐 다른 집으로 이사 가 겨울을 살고 있는 지금의 나도 '나의 배롱나무'를 떠올리는 순간 사랑에 빠진 듯 설레이는 걸 보면 말이다.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