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랜드 제주

by 킴 소여

제주에서의 첫여름. 대프리카 대구에서 나고 자라 나름 더위에는 이골이 났다고 생각했건만, 제주의 더위는 다른 매운맛이었다. 산으로 둘러싸여 분지인 대구가 '청양 고추'라면 바다에 포위된 섬 제주는 꾸덕한 '마라탕' 같은 더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가철인 여름이 되면 제주는 극성수기다. 저 많은 비행기들이 매번 잔뜩 여행객들을 싣어다 풀어놓고, 그런 여행객들은 하나같이 돌아가는 것이 아쉬워 현재를 잡아두고자 가는 곳마다 사진을 쉴 새 없이 찍어 저장용량이 부족하다.


남들이 갈망하는 환상의 섬 제주. 그런 곳에서 나는 돌아갈 필요 없이 계속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일종의 우월감이 들기도 한다. 허나 동시에 소외감도 든다. 다수에겐 일시적 이벤트인 휴가지에서 끝없이 계속 남아있다는 것. 모두가 늙을 수밖에 없지만 혼자 영원히 소년인 네버랜드 속 피터팬과 같은 아이러니였다.


특히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가 아닌 이주민이어서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고립감은 더욱 컸다. 허나 고립감 따위의 배부른 소리로 쭈그려져 있기에 네버랜드 제주는 너무 아름다운 섬이다. 우리 가족은 제주의 첫여름을 최선을 다해서 맞기로 한다. 매일매일 관광객의 마음가짐으로!





제주 이주 반년이 지난 지금. 경제적으론 떼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돈이란 건 욕심이라는 그릇에 따라 채워지느냐 마냐가 정해지는 것이기에 나의 작아진 욕심 그릇은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주고 있다. 직업적으론 공부방 주 4일 운영으로 아이 가르치는 일 자체가 쉽진 아니지만 4일 열일하고, 3일 쉬는 업무 강도는 할만했다. 거기에 네버랜드 제주. 적당한 돈과 시간 그리고 과도한 놀거리에 둘러싸인 삶이라니!


공부방이 쉬는 금요일. 오늘은 바쁜 일정을 계획하고 있다. 낮엔 남편과 아름다운 사진스팟으로 유명한 돈내코를 갔다가 아이들이 하원할 시간이면 함덕에 락페스티벌에 데려갈 일정이다.


돈내코는 아름다운 색깔의 선녀탕 같은 계곡으로 사진 스팟으로 매우 유명한 곳이다. 사진을 보고 너무 예뻐서 여름이 되면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특히 깊은 산속 험준한 곳에 위치해 있어 아이와 가기는 어렵다고 들어, 나는 쉬고 아이들은 등원하는 오늘 같은 금요일이 적격이었다.


입구에 가까워지자 도로를 따라 갓길 주차가 길게 줄을 이었다. 운 좋게 입구 바로 앞에서 마침 자리를 빼고 있는 차가 있어 주차를 하곤 돈내코 입구에 들어섰다. 래시가드를 입고 물안경과 튜브만 들고 가벼운 몸으로 걷는 길이 생각보다 걸을만 하다. 데크로 잘 닦여진 계단에 안도할 즘, 반대편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있다. 대체 어떻길래;;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길을 가는데 10분 정도 걸었을까. 가파른 각도로 꺽인 긴 계단이 아래로 한참 뻗어져 있다. 그나마 가는 건 가겠는데, 돌아올 때 왜 힘들어하는지 이해가 간다. 계단이 아래로 아래로 계속 이어진다. 한참을 돌아 내려가자 드디어 폭포가 보인다!


험준한 바위 골짜기 사이 원앙폭포 하류에 고인 계곡 돈내코. 깊은 골짜기 사이에 고인 작은 옥빛 못은 숨겨진 보석처럼 어찌나 희귀하고 아름다운 색깔을 품고 있는지. 넓지 않은 계곡에 왜 사람들이 득실거리는지 그중 한 명으로서 이해가 간다. 허나 아름다운 외모와 달리 쉽게 외부인의 입장을 허락하지 않는 살벌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암석이 험준하고 이끼가 끼어있어 사람들은 한 발 한 발 내딛기는커녕 균형 잡고 서있기도 어려워 비틀댔다. 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에 홀려 물속에 발을 들였다가는 세상 느껴보지 못한 냉기를 뼛속 깊이 느낄 수 있다. 정말 웬만하지 않은 차가움은 한참을 걸려 하반신만 겨우 넣는데도 발끝부터 머리까지 띵하게 아려왔다.


입수사진 한번 찍으려다 이 정도까지의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가에 대해 저울질하다 답답해진 남편의 선입수에 큰 용기를 내 온몸을 담그고 수영을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가도 적응이 되지 않는 냉기에 얼른 사진만 겨우 남기고 빨리 집으로 가 따끈한 온수 샤워가 간절해진다. 그제야 밖에 주차는 많은데 물 안 속엔 사람들이 많지 않은지 이해가 간다. 혹독한 수온은 관광객들의 체류시간을 줄여 방문객의 순환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 하원시간에 맞춰 샤워 후 환복을 하고, 아이들을 데리러 간다. 냉수 입수 후 피곤함이 몰려온다. 허나 다음 일정이 남아있다. 1시간 거리의 함덕해수욕장에서 오늘 저녁 열리는 '롹 페스티벌'을 보기 위해서다. 가는 길에 간단히 저녁을 먹고 행사장에 도착하자 저녁 7시가 넘었다. 일몰이 늦은 한여름의 바다는 자몽주스빛 구름이 하늘을 적시고 여전히 한낮의 더위가 가시지 않았다.


무대 위에 밴드 가수들의 공연이 대형스피커를 통해 사람들의 귀와 심장을 울렸다. 설치된 행사 부스들에선 다양한 행사가 진행됐다. 아이들은 악기 체험장에서 그럴듯하게 스틱을 갈겨대고, 경품 주사위 게임에서 상품도 타 왔다. 한 부스에서는 머리에 꽃띠를 매어줬는데, 머리에 꽃이 달리는 순간 제약이 풀린 듯 한껏 더 가벼운 마음으로 행사에 즐길 수 있는 마음가짐을 만들어 주었다.


머리에 꽃을 달고 훌라춤을 추는 아이들과 기타 스트링의 울림에 따라 떨리는 대정맥의 울림이 어우러진다. 좋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금상첨화의 행복이 온 공기를 감싼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아이들과 핑크 구름. 행복한 사람들. 네버랜드 피터팬은 매일을 여행가처럼 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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