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샤튜더의 집에 초대받다

by 킴 소여

나의 타샤튜더, 집주인의 집에 초대받았다. 앞에 [6화. 제주가 내게 타샤튜더를 보내주었다]에서 말했듯이 현재 제주에서 살고 있는 연세 집의 주인분은 거의 살아있는 타샤튜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원에 진심인 점, 그리고 그림, 도예, 옷 만들기, 요리, 목공 등 요즘시대에 가내수공업으로 직접 못하는 것이 없는 진정한 황금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존경하는 점은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삶의 무게중심을 내면에 가진 점이다. 두 자녀를 홀로 키운 50대의 키가 큰 서구적 외모의 그녀는 외모에서부터 단단한 아름다움을 이글이글 내뿜고 있다. 대체로 사람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지만, 그녀를 보는 일은 경이롭고 즐겁다.


오늘 드디어 성산에 있는 그녀의 집에 가기로 했다. 지도를 검색해 보니 남원에서 30분 거리였다. 그래도 초대받은 집에 선물을 사 가는 것이 예의란 생각에 며칠 전부터 어떤 것을 사가야 좋을지 고민하였다.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그녀에게 어떤 선물도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처럼 진심과 주도성으로 똘똘 뭉친 사람에게 일반적인 선물은 허례허식처럼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그런 요상한 부담감에 어떤 결정도 결국 내리지 못한 나는 당일 아침에 결국 인근 북카페에서 책을 선물하기로 했다. 그 책은 타샤 튜더의 이었다.




높은 돌담과 대문이 전면을 막고 있었다. 으리으리하지만 자연스러운 거대함. 이 집의 첫인상이었다. 집 앞에 차를 대고, 열려있는 대문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호기심 가득해 '이모~~~!!!' 소리치며 뛰어 들어간다. 들어서자마자 역시나 으리으리한 크기의 정원이 펼쳐져있다. 최근에 대거 가지치기를 하며 손질하고 정원 구조 전체를 갈아 엎있다며, 아직 제 모습을 펼치지 못한 나뭇가지들은 여름에 한껏 생명력으로 울창해질 정원을 그리게 했다. 좌측 정면에서 보이는 통유리 집과 그 뒤로 20년 됐다는 본채인 흙집. 그리고 그 흙집 앞 원목 마루에 벽을 둘러 유리창을 크게 내 돌출된 통나무집은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연상시켰다. 그런 집 주변을 둘러싼 넓은 정원으론 제주에서도 특별히 고운 색색의 나비와 새들만 드나드는 듯했다.


아이들의 요란한 입장에도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통나무 문을 두드려본다. 아무 대답이 없어 안달이 난 아이들은 문을 훽 잡아당겼다. 잠겨있지 않은 문은 기다렸다는 듯 번쩍 열렸다. 아이들은 우다닥 집으로 침입하였고, 순간 세상에 없는 맑은 울림소리가 들려 소리 쪽으로 고개를 번쩍 돌렸다. 청종이었다. 나무 원통으로 만든 소박한 외관과 달리 표현하기 힘들 청아한 화려함이었다. 그렇게 청종이 넋을 놓고 있을 때 대문으로 주인 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모다! 이모~~~~~!!"

하며 마치 우리 집인 양 먼저 와서 반대로 집주인을 맞이하는 우리 가족.

"왔어요~~^^ 요 앞에 맛있는 닭집이 있어서 따끈하게 먹이려구 시간 맞춰 포장해 오는 길이예요."

뒤에 첫째 아들과 둘째 딸까지 뒤따라 내리며 인사를 주고받는다.

"치킨 식기 전에 얼른 듭시다~~ 저희가 뭘 사 먹질 않는데 손님 온다고 정말 오랜만에 바깥 음식을 포장해 먹네요."




[어머니 닭집]이라는 성산의 오래된 닭 튀김집은 보통의 프랜차이즈 치킨집들과는 다른 순수함이 있었다. 포장도 상자 하나 없이 그냥 비닐에 툭 담아, 육질이 좋은 부드러운 닭으로 자극적이지 않은 튀김옷이 깨끗한 식감을 주었다. 아이들 용으로 준비한 치킨을 나눠 먹는 동안 고등학생인 둘째 딸은 주방에서 토마토 스파게티를 만들고 있었다. 스파게티 소스까지 직접 토마토를 베지근히 삶아 만들어 준 스파게티는 정말로 웬만한 레스토랑에서 먹은 파스타보다 훨씬 맛있었다.

배를 채우고 아이들은 바깥 정원으로 뛰어나간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남원의 집이 좀 더 정돈된 아늑한 정원이라면, 이곳은 말 그대로 누가 뭐라 않는 내 집 마당이어서 넓은 정원을 훨씬 다양한 식생들로 심겨 있었지만, 정돈된 다듬어짐 보다는 마음껏 자연스럽게 헝클어져 있었다. 이 넓은 정원을 거의 여자 혼자서 관리하는 게 참 놀라웠다.


대문에서부터 길쭉하게 뒤로 길게 뻗은 부지는 맨 뒤는 밭, 그 앞으로 좌측은 집, 우측은 정원의 구조이다. 아이들은 뒤편에 있는 밭에서 그 넓은 밭을 조그만 손으로 물을 준답시고, 꽤 진지하게 꼼꼼히도 구석구석 물을 뿌리고 있다. 뜨거운 정오의 햇빛과 만나 산란하는 물줄기에 뜬 무지개가 안 그래도 믿기 힘든 이 순간을 더욱 비현실적으로 만든다. 그때 눈에 딱 뛰인 배추애벌레 한 마리는 슬슬 물 주기에 지쳐가던 아이들의 좋은 다음 놀잇감이 되었다. 손에 올려 열심히 몸을 접었다 펴며 기어가는 애벌레의 몸짓에 즐거워한다.

그러다 이런 숲 속 뚝 떨어진 외딴곳에 옆집이 하나 있어 아이들은 단순한 호기심에 옆집을 가리키며 묻는다.

"저긴 누가 살아요~?"

"아~ 저긴 원래 우리가 살려고 지었던 집인데, 필요 없어져서 서울 사는 지인한테 팔았어. 세컨하우스라 자주 집을 비우는데, 밖에 한번 구경 가볼래? 저기 연못이 멋지거든."

이 집의 정원 구경만으로도 벅찬데 또 다른 구경거리에 아이들은 물론 나까지 호기심 가득하였다. 옆집과 풀담을 사이에 두고, 우리가 서있던 텃밭에서 바로 이어지는 개구멍(?)이 있었다. 정문으로 당당히 돌아 들어가도 되었지만, 집주인의 인솔 하에 괜히 담장을 몰래 넘어 들어갔다.


이제까지 이 집주인분의 집을 세 채를 보았다. 첫 번째는 내가 살고 있는 숲집. 두 번째는 집주인이 살고 있는 대 정원 집. 둘 다 빨간머리앤스러운 전원풍의 집들이 었다면, 이번 세 번째 집은 같은 사람이 설계한 게 믿기지 않는 다른 분위기의 집이었다. 안도 다다오의 글라스하우스 같은 현대적인 느낌으로 노출콘크리트 기법과 통창으로 구성된 외관은 내부를 모두 블라인드로 가려 놓았다. 'ㄷ'형태의 집은 중간에 나무데크와 작은 연못을 품고 있어 어느 방에서도 연못이 보이는 구조였다. 아이들은 연못을 가득 채운 연잎 사이로 꼬물거리는 올챙이들을 잡고 싶어 안달이 났다. 겁 없는 우리 둘째 찬이가 몸을 연못 쪽으로 자꾸 기울이자

"오! 조심해야 해! 여기가 작아 보여도 깊이가 꽤 되거든."

주의를 주며 찬이의 어깨를 꼭 감싼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까만 연못 사이로 다홍빛 금붕어가 통통히 오른 등살을 언뜻언뜻 매혹적이게도 내보인다.




거실로 돌아와 차를 마시기로 한다. 주방 한쪽 벽에 어딘가 낯익은 오래된 원목 서랍장이 조용히 포스를 내뿜고 있다.

"어? 저건..."

"네~ 맞아요.ㅎㅎ 한약방 약재 서랍이에요. 아는 지인이 한약방을 접으면서 얻었죠."

서랍장은 한약방의 권위 있는 클래식함을 그대로 가정집으로 옮겨와 주방의 기품을 더해주고 있었다. 집주인은 서랍 몇 개를 열더니 말려둔 꽃잎을 골라 꺼내 포트에 물을 끓였다.

부엌에 있다 거실 티비장으로 변모한 약재서랍

나는 지금이 좋은 타이밍이다 싶어 가져온 작은 선물을 꺼냈다. 타샤튜더 책과 함께 나눠 먹을 유명 베이커리 카페의 디저트였다. 차가 우러나는 동안 선물 포장을 뜯어본 그녀는 책을 보고 멈칫 놀란다.

"어머~ 고마워요~"

뭔가 미묘한 낌새를 캐치한 나는

"사장님을 보면 제가 존경하는 타샤튜너가 너무 떠올라서 골라보았는데, 혹시.... 이미 있으세요..???;;;"

"아~ 하하. 뭐 정원가들에게 이 책은 워낙 필독서라 있긴 해요. 그래도 좋은 책은 여러 권 두면 좋죠.ㅎㅎ"

라는 그녀의 말에 '하... 너무 고민하다 망했다'는 생각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쳤다. 내가 어디서 타샤튜더에게 타샤튜더 책을 주다니. 이건 올챙이가 개구리 가르치는 것과 같다는 생각에 너무 부끄러웠다.


그렇다. 그녀에게 난 한 없이 올챙이었다. 아직 뒷다리도 나지 않은 한 없이 먼 중생.

트렌드 따위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미를 잃지 않는 주도적 삶. 그녀의 철학의 집합체인 집에서 구석구석 순수한 자연의 미가 함께 깃든 공간을 보면서 또 한 번 배웠다. 주도적 삶이 만들어낸 행복은 누가 알아봐 주는 드러나는 빈 영광과 다르게, 숨겨진 정원의 연못처럼 깊고 가득 차다고.


율이가 집에 돌아와 그린 이모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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