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한 아이가 있었다.
그의 집은 묘지 근처였는데, 아이는 어른들의 장례 모습을 보고 그대로 흉내 내며 놀았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주변환경이 교육에 좋지 않다고 생각해 이사했다.
다음 집은 시장 근처였다.
이번엔 소란스러운 시장의 모습을 보고 아이가 장사꾼처럼 흥정하는 말들을 따라 하며 놀았다.
어머니는 여기도 아니라고 판단해 또 이사하기로 한다.
세 번째로 서당 옆으로 집을 옮긴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책 읽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머니는 교육을 위해 환경이 중요함을 한번 더 실감했다.
모두가 잘 아는 '맹모삼천지교' 고사성어 이야기다. 맹자의 어머니는 자식의 교육 환경을 위해 세 번 거처를 옮길 정도로 교육에 열성이었다. 유치원생 두 아들의 엄마인 나도 자식 교육이라면 한 열성하는데, 나의 교육관은 '아이는 노는 게 공부다'이다. 그 흔한 태권도, 미술 학원 한번 보내지 않고 노는 것에 진심인 교육 열성(?) 주의자다. 이런 나도 맹모만큼은 아니어도 아이를 위해 교육 환경을 두 번 바꾼 적이 있다.
첫 번째는 맏이 율이가 다섯 살이 되면서 유치원을 다니게 되던 해였다. 독서 중심의 교육관이 마음에 들어 선택한 유치원이었다. 다닌 지 1년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선생님이 전화가 오셨다. 유치원 생활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오가다가 '오늘 점심시간에 밥을 많이 남긴 아이들은 벌칙으로 '책 읽기'를 시켰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지나가다 하신 말씀이 내겐 화살처럼 꽂혔다.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벌칙으로 책 읽기를 시키셨다고요? 그럼.. 책을 안 좋아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라고 우려를 표하자, 선생님은 "어머니~ 사실 책을 좋아서 읽는 사람은 없잖아요." 라며 사람 좋게 웃으셨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교육관은 '아이는 노는 게 공부다'는 주의다. 그리고 '독서는 공부가 아니다. 노는 거다.' 이렇게 말하면 나를 돌아이라고 비판할지 모른다. 그럼 당신은 그 선생님과 같은 관념을 가진 이리라. 엄연히 따지면 이 일은 선생님의 잘못도 유치원의 잘못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모두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지식은 바꿀 수 있지만 관념은 바꿀 수 없다. 책을 맛있는 마음의 '양식'이 아니라 몸에 좋지만 쓴 '약'으로 여기는 고정관념은 학부모의 클레임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유치원을 옮겼다.
두 번째 이동은 제주에서였다. 제주살이 때부터 다니기 시작한 어린이집은 제주 자연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담은 참 아름다운 시골 어린이집이었다. 자연친화적인 수업에 만족하며 한 학기를 잘 마무리하는 중이었는데, 선생님이 또 전화가 오셨다. (선생님의 전화란 학부모를 늘 긴장시킨다. 반대도 마찬가지겠지만.)
반에서 한 친구의 장난감이 분실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장난감이 우리 아이 가방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네가 가져갔냐는 물음에 처음엔 부인하더니 결국 인정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놀랐지만 먼저 속상했을 친구와 선생님께 사과드리며 가정에서 잘 교육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최대한 차분히 왜 그랬는지 먼저 묻자 '그냥, 갖고 싶었다'라고 하였다. 평소에 소유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심어주지 못했나 싶어 부모로서도 깊이 반성하며 아이에게 잘 설명하고 가르쳤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아이가 이번엔 선생님 립스틱을 가방에 가져간 것이다. 그날이 딱 금요일이었는데, 두 번 연달아 이런 일이 발생하자 선생님께 너무 민망해 주말 동안 더 철저히 교육시키겠다며 다시 한번 사과하였다. 집으로 돌아와 이번에는 큰 소리로 혼냈다. 처음엔 몰라서 실수였다고 치지만, 나쁘단 걸 알면서도 저지른 건 훨씬 더 잘못된 거라며 방 문을 닫고 아이와 둘이 얼굴을 맞대고 꾸중했다. 긴 시간 대화 끝에 아이도 최소한 이 일이 심각한 사건임을 자각하며 눈물을 흘리며 깊이 반성하였다.
마지막엔 "엄만 율이를 믿어. 율이가 이제까진 남의 물건을 가져간다는 게 얼마나 나쁜 행동인지 제대로 이해 못 해서 그런 거 알아. 마음이 예쁜 율이는 이제 진짜 알았으니까 다시는 안 그럴 거라 믿어. 그래서 엄마는 이렇게 혼내는 것도 여기까지만 하고, 내일부턴 이야기도 꺼내지 않을 거야. 율이를 믿으니까." 라며 안아주었다. 그게 진심이기도 했고, 아이에게 신뢰를 보여주고 아이 스스로도 자신을 신뢰하기 바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잘 일단락이 되어 월요일에 아이도 즐겁게 등원하였다. 바로 아침부터 선생님이 전화가 오셨다. 나도 마침 주말에 충분히 이야기하고 아이를 이제 믿겠다고 하였으니 한 번만 더 믿고 지켜봐 달라고 말씀드릴 참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먼저 다른 말씀을 시작하셨다. 사건이 있었던 금요일 저녁에 전체 교사 회의를 열어 이 사건을 엄중히 토론하였고, CCTV도 공유하였다며 평소 예쁘고 순수하다고 여겼던 아이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물건을 가져가는 모습을 보는데 너무 놀라 '심장이 벌렁벌렁거렸다'라고, 지난 금요일에 아이와 제대로 이야기 나누지 못하고 하원했기 때문에, 오늘 다시 진중히 이야기하고 반성과 사과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아.. 부모에게 언지도 없이 원장과 담임선생님만이 아니라 전 교사에게 CCTV까지 공유하고, 거기서 우리 아이 표정을 보고 너무 놀라 심장이 벌렁벌렁하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사실 대응에 대한 아쉬움과 불쾌감이 앞섰다. 하지만 아이와의 신뢰감이 더 중요해 선생님께 한번 더 잘 말씀드려 보았다. 아이가 정말 깊이 반성했고, 아이를 믿는다고 약속했다며, 어린이집에서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믿고 기다려 주심을 부탁드렸다. 그러나 내가 과잉보호하는 부모라는 듯이 그냥 지나칠 문제가 아니라는 말만 반복했다. 잘못한 부모 입장인 나는 더이상 주장하기가 어려워 알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며칠간 묘하게 쓰라린 상처를 대충 덮어 둔 듯 특별한 일 없이 지나갔다. 어느 날 아이가 집에서 만든 '블럭 조립품'을 애정하여 어린이집에 꼭 데려가겠다고 가방에 넣어 갔다. 그리고 그날 오후 선생님이 전화 오셨다. '율이가 어린이집 장난감을 또 가방에 넣었다.'는 것이다. 히필 집에서 가져간 블럭이 어린이집 블럭과 같은 종류였고, 선생님은 집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아이의 말을 믿지 못한 것이다.
지식은 바뀌지만 관념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또다시 어린이집을 조용히 옮겼다. 참고로 그곳에선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이 같은 도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 해면 율이가 여덟 살이 되면서 초등학교 입학하는 시기가 다가온다. '노는 게 공부다'라는 교육 열성주의자인 나는 사실 공교육을 좋게 보아도 '인정받는 근로자가 되기 위한 칭찬받는 학생의 준비 과정'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홈스쿨링은 막막하고 대한민국에 사는 이상 다른 선택지가 없는 건가..라고 단념하려던 즈음! 때마침 제주에는 표선을 중심으로 IB교육 열풍이 불고 있었다. 이 소식은 나를 진정 맹모삼천으로 만드는 바람이 되는데... 이름하여 '율모삼천지교'! 학교 입학은 전입이 필수인 만큼 이번 세번째 이동은 진짜 이사까지 계획하게 되는데...
To be countinued.. in 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