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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 소여 Apr 12. 2024

'안돼'는 안돼

아이의 '흉터'는 경험의 '훈장'이다.


제주에 온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 '교육'이었다.


이렇게 말하자 어떤 이는

"너너너~~ 욕심 없는 척하더니 국제학교 보내려는구나!!?"

하는 분도 있었다.

음.. 그렇다기보다는 국제학교는 일단 학비가 넘사벽이라 못 보내고;;

대한민국의 국영수 성적위주의 주입식 교육과 어린아이들조차 물질만능주의에 물들어

어느 아파트 사는지를 먼저 묻고 친구를 사귈지 여부를 판단하는 환경 속에 계속 성장시키는 것이 두려웠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싫으면 이민을 가면 되지 않느냐 싶을 수 있겠지만

또 그렇다고 한국을 뜨면서까지 교육에 모든 내 인생을 바칠 정도로 우선순위는 아니다.

부모로서의 교육관과 로서의 가치관을 공존할 수 있는 곳.

그곳이 우리에겐 '제주'였다.




지역을 '도시와 시골' 이중법적으로 나눈다면

제주는 관광지인 동시에 '시골'에 조금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①(자연친화적) 자연에서 뛰놀며 스스로 탐구하고,


②(반물질주의) 주소를 치면 집값이 바로 나오는 아파트가 아닌 곳에서 거주하면서

친구를 있는 그대로 보고 사귀고,


③(주체적 학습) 비록 여전히 대한민국 땅 아래라 교육 시스템은 같지만 도시보단 성적 압박을 덜 받으며

성적을 위한 학습이 아닌 순수히 학문에 대한 호기심으로 자발적 학습을 하기를 바라여 택한 곳이었다.  

유투브가 아니라 꽃과 동물이 궁금한 아이들

그래. 남들 다 학군 좋은 아파트로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이사 갈 때 역주행하는 우리.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린 괴짜다. 괴짜의 판정 주체는 사실 일반 대중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 기준에서 우리는 지극히 바람직하지만, 전체를 보았을 땐 우리가 일반적이지 않은 소수인 것은 팩트다.

남편과 나는 둘 다 주관이 너무 뚜렷하다 못해 '평범함'에 의구심을 품고, '사회 통념'이나 '관례'마저 무비판적으로 따르질 못한다. 스스로 납득하는 과정을 거쳐야지만 진리로 받아들이는 꼴통들이다. (이런 꼴통들이 어떻게 10년 넘게 정상인 연기를 하며 회사생활을 했는지 놀라울 따름..)


이러한 사상은 아이의 양육에도 적용된다.

과연 사회에서 흔히 아이들에게 내리는 훈육 규칙들이 정말로 다 맞는 것일까?

어른이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경험 아래에 아이들을 두는 것이 진정 아이들을 위한 것일까??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유교 사상은 만인은 평등함에도 기득권인 어른 중심의 강압은 아닐까?

왜 뛰면 안 되고, 왜 빗물 웅덩이는 밟으면 안 될까? 미성년이라 올바른 판단을 못할 거라고 기정 사실화시켜 아이들은 다치거나 더러워질 수 있단 걸 각오하고도 뛰거나, 밟아보는 경험의 선택권을 박탈당하는 것이 더 좋은 걸까!?


부끄러운 일인지 몰라도 우리 아이들은 늘 새 옷을 사줘도 금방 꼬질 해지고 생채기가 끊이질 않는다.

아이의 '상처'와 '꼬질함'은 경험의 훈장이다.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부모의 의무이지만,

과보호는 아이를 깨끗하고 예쁜 바보로 만든다.

아이의 '상처'와 '꼬질함'은 경험의 '훈장'이다.

 우리 부부는 스스로가 주관이 뚜렷하듯, 아이들도 스스로 배움을 통해서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였다. 

그런 우리의 교육철학은

'안 돼' 안 하기이다. 

최대한 많은 것을 저질러 보고, 스스로 깨닫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며,

그로 인해 자신의 행동에 자신감을 가지기 바라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이 너무 방임적이고, 태만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아이에게 '이건 돼, 안 돼' 가르치는 것보다,

믿고 지켜보는 게 부모 입장에서는 진심 더 어렵다.

물론 모든 걸 다 허용하는 건 아니다.

딱 두 가지, 자신에게 '위험'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만은 예외다.






제주에 온 지 4일째만에 드디어 어린이집 첫 등원!!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좋지만, 자녀를 돌보는 시간과 나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의 밸런스는 가족 모두의 행복을 위해 진정 필요하다. (대충 '어린이집=사랑'이라는 말..) 

그렇게 네 가족이 다 같이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첫 등원 길에 올랐다. 사실 첫째 율이는 괴물 친화력의 소유자로 어디를 데려다 놓아도 적응하는 아이라 전혀 걱정이 없었다. 반면에 둘째 찬이는 자신의 관심사(흙, 나무, 곤충, 상어 등..) 외엔 신경을 쓰지 않고 자연 속에선 천사, 자신을 막는 자에겐 악마가 되는 타입이라 예측이 되지 않았다.


집에서 40분을 운전해 언제 도착하냐며 기대 가득한 첫째의 투정을 뒤로하고 마침내 도착하였다. 나름 떨렸던 첫 등원은 등원 피크타임의 아이들 무리에 휩쓸려 우루루루 얼떨결에 끝이 났다. 남편과 나는 바로 근처 남원읍사무소에 어린이집 변경 처리를 위해 방문하는데,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온다. '찬이가 낯설어서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어머니가 오셔서 함께 들어가 달라'는 내용이었다. 행정 업무를 남편에게 맡기고, 나는 얼른 어린이집으로 차를 돌렸다. 가는 내내 조금은 의문스러웠다. 내가 아는 찬이와 '낯가림'은 매칭이 되지 않았다. 찬이는 자연 외에 사람에는 관심이 없는 아이인데, 관심이 없는 대상에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나? 아니면 내가 찬이에 대해 모르는 면이 있었나?? 여러 생각이 스치면서 어린이집으로 돌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해 보니 찬이는 "놀이터.. 놀이터어~~!!"라고 울부짖으며, 건물 입구로 들어가길 거부하고 있었다. 아파트 내 가정어린이집만 줄곧 다녀온 아이에게 이렇게 넓은 마당과 모래 놀이터가 있는 대형 어린이집은 처음이었다. 이런 멋진 곳을 두고도 지나친다는 것은 아이 기준에선 용납이 안되었던 것이다. 당연히 엄마도 안중에 없어 엄마가 왔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선생님께 '찬이는 낯을 가리는 게 아니라, 당장 놀이터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말씀드리자, 좀 있으면 야외에서 소방훈련 예정이니 그전까지만 찬이를 반으로 함께 유인해 달라고 하셨다. 하.. 이 대쪽 같은 아이를 어떻게 유인해야 할지 고민하다, 강제로 들어 옮기는 것이 가장 쉽지만 그건 나도 찬이도 원치 않는 방법이라, 찬이가 가장 좋아하는 '상어'가 어린이집 안에 있다고 (정확히는 '있을 거 같다'고;;), 엄청 크고 많다며 거짓말 아닌 거짓말(보통 어린이집에 상어 장난감 하나 없지는 않을 테니;;;)로 겨우 겨우 회유하였다. 그렇게 1차적으로 반 안에 들어오는 것은 성공하였고, 계속 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상어를 찾아 다행히 해양생물 피규어 상자를 발견해 건내 주었다. 그리고 그 '낯설어한다'는 아이는 상어와 사랑에 빠져 "상어가 거북이 먹었쪄!!! 캬아아아~~~"하며 주변 반 친구들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혼자 신나 있다.

어린이집 모래놀이 삼매경..


'그래, 휴우~.. 이 아이는 이런 아이지.'

 내가 알고 있던 아이의 고집스러운 모습에 아이러니하게도 안도감을 느꼈다.

최소한 내가 모르던 낯 가리는 모습은 아니니까.



   

좋아하는 것이 뚜렷한 아이   /   시키는 걸 잘하는 아이

   좋아하는 것을 반드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이 /   하지 말라고 하면 멈추는 자제력이 뛰어난 아이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주장이 강한 아이  /   뭘 해야 좋을지 몰라 지시를 기다리는 아이

칭찬에 무관심한 아이   /   칭찬받고 싶어 하는 아이


어른(지배층)에게 칭찬받는 순한 모범생, 그리고 어른에게 꾸중 듣는 내면이 단단한 말썽꾸러기가 있다.

누가 더 행복한 성인으로 자랄 확률이 클까?

사실 정답은 없다.

행복에도 정답이 없는 만큼.

하지만 이건 확신할 수 있다.

단단한 말썽꾸러기가 세상으로부터 더 많은 걸 배우리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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