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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 소여 Apr 07. 2024

해가 지면 자고, 해가 뜨면 깨고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기

음악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나는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배경음악처럼 계속 틀어놓는 습관이 있다. 평일에는 아침에 눈을 뜨고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의 아침 클래식, 출근길 운전 중의 라디오, 퇴근 후 식사와 함께 릴렉스한 재즈 음악 따위를 주로 듣고, 주말에는 거의 집에 있는 시간은 딱히 집중해서 듣지 않더라도 계속 무언갈 틀어놓는 편이다.

그런 나에게 제주는 음악을 트는 것을 망설여지게 한다.

낮의 다양한 새들의 지저귐과, 온 세상이 잠드는 밤이 되면 더욱 선명해지는 풀벌레 소리들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자연의 소리'로 일부러 검색해 찾아 듣곤 했던 소리들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것이어서, 다른 노래를 재생시켜 덮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워진다.   


오늘로 이곳에 온 지 3일째.

아직은 도시에서의 루틴이 더 익숙할 법도 한 데, 이틀연속 5시 근방으로 눈을 뜨게 된다.

 해가 뜨면 깨고, 해가 지면 자고.

 자연의 흐름대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기.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몸이 금세 자연에 융화되고 있는 듯하다.


짐 풀기를 거의 이틀에 걸쳐 끝내자 어떤 게 없고, 어떤 게 필요한지 보인다. 오늘은 오전부터 시내 쪽 다이소로 나가기로 한다. 집에서 10여분 거리에 조천점과 함덕점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해변도 구경할 겸 함덕점 다이소로 정한다. 지금 뒤돌아보면 여기서부터 문제였던가. 아이들을 데리고 바다를 구경만 하려 했다니. 먼저 장을 보고, 함덕해변 근처 후기가 많은 식당에 가서 크게 실망을 하고는 함덕해변을 향하였다.

역시나 실패가 없는 함덕. 언제 와도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 바다는 주말이어서인지 사람들로 더욱 북적이고 있었다. 해수욕을 하는 사람들도 몇몇 보였으나, 오늘은 간단한 산책을 목적으로 들른 것이어서 남편은 망고주스를 사러 상점으로 가기 전 나와 아이들을 해변에 내려준다. 야외에 풀어놓기만 하면 좋아하는 강아지처럼 아이들은 넓은 해변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탐색하고, 모래놀이를 하고 놀더니 자연스럽게 이동동선이 바다를 향한다. 그리고 처음엔 발, 발목, 무릎, 다리... 나중엔 풍덩 들어가 아예 머리까지 젖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여별옷이나 수건 따위가 없어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이럴 수도 있을 거라 예상을 아예 못한 건 아니어서 애써 침착하게 '그래, 안된다는 말을 안 하려고 제주에 왔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남편에게 음료를 사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수건도 좀 사 오길 청한다.

파도의 불규칙적인 밀침이 그저 재미있는 놀이기구 같은지, 아이들은 엎드려뻗쳐 자세로 밀물과 썰물에 목 끝까지 흠뻑 빠지다 때론 입에 바닷물이 들어가는데도 그저 신이 나 어떤 때보다 밝게 웃는다. '그래. 너희가 좋으면 됐지.' 싶을 때쯤, 흠뻑 젖은 면티가 몸에 무겁게 찰싹 달라붙는 것이 성가신 듯하던 둘째가 옷을 벗기 시작하더니 말릴 새도 없이 팬티까지 벗어던지고는 알몸으로 호다다닥 뛰어간다.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곳에서 나는 당황하여 제발 팬티라도 입자며 화도 내고 달래 가며 쫓아가 보았지만 얼마나 빠른지 모래 속에서 푹푹 빠지는 발로 도저히 잡히질 않는다. 엄마와 잡기놀이를 하는 줄 아는지 아이의 흥만 더 돋구었다. 다행히 사람들은 5살짜리 아이의 철없는 장난으로 여겨 웃으며 구경한다. 뒤늦게 남편이 와서도, 금세 말리길 포기하고 오히려 같이 장난을 치고 있다.

파도에 물을 먹어도 그저 조으심
알몸 둘째와 소라를 주워 골똘히 소리를 듣는 첫째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씻기고, 옷에 묻은 모래들을 물로 헹궈 빨랫줄에 널어둔다. 그렇게 신체활동을 한바탕 한 후라, 아이들은 바로 기절하여 낮잠 속으로 빠진다.

집에 와서부터 비가 쏟아지듯 내리고, 우리도 휴식이 필요해 Rachael Yamagata의 릴렉스한 목소리를 빗소리에 믹스한다. 통창 밖 나무들이 비와 바람이 미는 데로 부드럽게 춤을 추듯 머리를 흔든다. 물놀이 후의 노곤함으로 아이들의 숨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더 세게 새큰거린다.


목이 살짝 말라 커피를 내려먹으면 좋겠다 싶지만, 물놀이 여파로 몸이 안 움직인다.

그래 그냥 이대로 좋다.

비 오는 흐린 구름으로 옅어진 태양의 은은함.

온몸이 뻐근하지만 샤워 후 개운한 나른함.

내일이 월요일이지만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

그래, 모든 것이 여유에서 오는 만족들이 아닐까.


그 하나가 없어서 나 자신을 잊어버려야했던 시간들이 잠시 스쳤다 스르륵 눈이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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