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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 소여 Apr 14. 2024

서귀포 시내 탐방

본격 관광모드 ON

 매일 아침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자연처럼 소박하고 순수한 하루를 시작했다.
 우리는 다시 깨어나고 깨어 있는 상태를 지속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기계적인 도움을 받고 깨어날 것이 아니라 아침은 우리가 단잠을 자는 사이 우리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믿음과 함께 아침에 대한 무한한 기대감을 갖고 깨어나야 한다. 인간이 의식적인 노력으로 자신의 삶을 고양시킬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그 무엇보다도 나를 고무한다. 훌륭한 그림을 그리거나 상을 조각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행위는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영광스러운 행위는 그러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올바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며 이는 우리의 도덕적 능력으로 가능하다. 하루하루를 진실로 충만하게 사는 행위, 그것이 최고의 예술이다.
 _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中 ...




새벽 5시. 눈 위로 스며드는 옅은 햇살과 함께 잠에서 깨어난다. 침실에서 빠져나와 집에서 챙겨 온 책들 중 하나를 집어 밑줄 그은 부분들을 훑어본다. 오늘은 나의 경전과도 같은 <월든>을 읽으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6시 즈음 아이들이 하나둘 깨어나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발소리에 읽던 책을 얼른 덮고 부지런히 외출 준비를 시작한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퇴사날 제주로 야반도주한 지 5일째이자,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정상등원하는 첫날. 즉, 제주에서 하루를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보낼 수 있는 첫날이란 뜻이다. :D

남편과 서귀포 시내 쪽 몇 군데 장소를 관광하기로 계획해 두었다. 이틀 전 주말 집 근처 맛집으로 방문한 고기국수를 내가 너무 감명 깊어하자 남편이 자신이 좋아하는 진정한 고기국수 맛집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여 발단이 되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바로 서귀포 올레시장 내 유명 멸고국수집을 오픈런한다. 오픈런을 하였는데도 자리가 없어 조금 기다려야 했고, 적당한 웨이팅은 오히려 맛집임을 검증하며 기대감을 더욱 상승시킨다.

좌)고모네돔베, 우) 고씨네 천지국수

집 근처 '고모네돔베'에 고기국수는 육수가 곰탕 베이스에 고기는 얇고 야들야들하여 부드러운 국물에 부드러운 고기가 매우 조화로웠다. 그리고 국수집에 핵심은 김치라고 보는데, 첫 입 먹어보았을 때 공장 제조 느낌의 김치가 아니라 직접 담근 김치에다, 익은 정도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살짝만 새콤하게 쉰 상태였다.

반면에 올레시장 유명 맛집인 '고씨네 천지국수'는 완전 다른 느낌의 매력이었다. 육수부터 잔치국수용 담백한 멸치 국물 베이스에 고기는 앞의 야들한 고기와 달리 투박하고 두꺼운 시장 수육 느낌이었다. 김치는 역시나 직접 담근 맛이었으나, 푹 익어 김치만 단독으로 먹을 경우엔 상당히 시큼하였는데, 그것 또한 두꺼운 고기에 곁들이니 시큼함이 커버되면서 오히려 너무 잘 어울렸다. 앞의 국수가 부드러운 서울 남자 느낌이라면, 후자는 거친 마성의 매력을 가진 경상도 남자의 느낌이었다.


부른 배를 이고 바로 근처 대형 립도서관이 있어 '서귀포 중앙도서관'을 방문한다. 집에서 가져온 책은 모두 읽었던 책들 뿐이라 새로운 책을 몇 권 빌릴 겸, 제주의 도서관에 대한 호기심 충족 겸 방문한다. TIP! 사전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전국 공공 도서관들은 그 지역 거주자가 아니어도 원래 발급받았던 거주지 도서관의 회원증으로도 전국 통용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한 도서관의 스케일은 어마했다. 도서관 부지보다 대충 봐도 10배는 더 큰 공원 부지의 울창한 숲길 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 도서관 건물 입구에 다다랐다. 입구 부근에 큰 키를 자랑하는 열대나무가 도서관마저 관광지스러워 보이게 하여 또 내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외부 건물의 돔형태의 측면 구조도 굉장히 호기심을 자아냈는데, 내부는 리뉴얼을 한지 얼마되지 않았는지 깨끗하고 화이트 우드 감성의 인테리어로 들어서자마자 가슴이 콩닥콩닥 거린다. 지상 4층, 지하 1층으로 구성된 건물은 창밖 가득 공원뷰와 올라갈수록 잘 보이는 멀리 바다뷰까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딱딱한 도서관과는 거리가 멀어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고 싶어 진다. 그냥 제목이 이끌리는 책 2권을 대여하고, 양지바른 창가에 자리를 잡아 책을 펼친 우리는 따땃한 햇볕과 국수로 가득 찬 배부름의 조합에 못 이겨 그만 꿀잠을 자버린다.


그렇게 산뜻하게 낮잠도 잤겠다 상쾌하게 충전한 몸은 이제 신체활동을 즐길 준비가 되어 멀지 않은 곳에 '황우지 해변' 산책을 나선다. 이곳은 선녀탕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해수풀로 유명해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으나, 낙석위험으로 올여름부터 전면폐쇄되었다. 선녀탕은 구경도 하지 못하였지만, 해안산책로를 걸으며 기분전환을 하기로 한다. 그러나 너무 따뜻한 날씨는 따듯하다 못해 더웠고, 계속 걷다 보니 갈증은 나는데 주변에 마땅한 카페가 보이지 않자 조금씩 짜증 지수가 오르고 있었다.

얼른 지도를 켜 인근 카페를 검색하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유동커피' 본점이 근처 있다고 하여 차에 올라탔다. 커피맛도 좋고, 갈증도 컸던 터라 둘이서 시킨 커피 2잔은 순식간에 얼음밖에 남지 않게 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더 시켜 들이키고 나서야 창밖 오래된 내길 동네버스의 레트로한 컬러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제 뭐 하지 하며 켠 지도는 현 위치가 '이중섭미술관' 거리임을 알려줘, 망설임 없이 도보로 미술관으로 향한다.

카페에서 바라본 정겨운 서귀포 시내거리

 오르막 지형 가장 위쪽에 위치한 미술관 건물에 들어서기 위해 계단형으로 된 외부 정원을 지나야 한다. 풍부한 제주의 식생을 살린 짙녹색의 조경과 적당히 안정감 있는 높이로 이어진 돌담길은 차분한 포스를 내뿜으며 관람 전부터 거장의 품격이 느껴진다. 꽤 긴 계단이 이어지는데, 중간 위치쯤 이중섭의 생가를 보존해 두었다. 1.4평 남짓의 작고 소박한 그의 생가를 보며, 지금은 이토록 유명한 거장이 생전에는 얼마나 고단하였을지 짐작된다. 그렇게 아름다우면서 경건한 조경에 감탄하며 걷다 보니 금세 미술관 입구에 도착해 있다.

좌) 미술관 외부 조경, 우)이중섭 제주 피난시절 생가

미술관에 첫 전시물은 타국에 멀리 떨어져 있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보낸 그리움 가득한 편지로 내러티브를 시작한다. 젊은 나이에 놀라운 천재성을 인정받아 입상한 그는 기쁨도 잠시, 일제강점으로 계속되는 피난길에 오른다. 일본에 남겨둔 가족들과 이별한 채 홀로 지내며 가족들을 그리워하다 젊은 나이 40살에 병으로 쓸쓸히 죽는다. 그의 작품들엔 제주에서 가족들과 보냈던 추억들을 소재로 게, 물고기, 꽃 등의 자연과 어우러져 벌거벗고 노는 아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해학적인 소재와는 다르게 색채는 전체적으로 푸른 톤의 다운된 컬러감으로 결코 밝지 못하다. 웃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행복함이 아니라, 그리움이 느껴지는 것은 내가 서사를 알고 보아서일까..?


문득 우리 아이들 하원시간이 다되었음을 깨닫고 차로 향하는 발걸음이 즐겁다 :-)


이중섭 화가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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