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9일 화요일
혼자 여행이 처음은 아니다.
22년 전 첫 해외여행이 유럽 35일 배낭여행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좀 모아서 배낭여행을 갔다. 말 그대로 배낭을 메고서. 그땐 인터넷도 없었고, 경유하는 비행기가 몇 군데를 경유하는지도 모르고 출발했었다. 첫 도착지인 런던에 도착할 때까지 지금 내 기억으로는 한 3곳을 경유했던 것 같고, 그중 두 곳은 비행기를 내리지도 않고, 대충 청소하고, 완행버스처럼 사람을 태워서 다시 출발했었다. 비행기 탄 지 27시간 만에 런던 히드로에 내렸다.
그래도 그땐 비슷한 또래들이 유럽 배낭여행을 많이 하던 시절이었고, 한 열흘 정도를 제외하고는 일행이 생겨 여럿이 함께 여행을 했다.
그 후 짧게 2박 3일, 4박 5일 정도는 혼자 여행한 적이 있지만 이번처럼 15일을 완전히 혼자 여행한 건 처음이다. 혼자 여행하는 젊은 친구들은 인터넷을 통해 잠깐씩 동행을 구하기도 하지만 내 나이에 동행을 구하는 건 어려울 거라 생각해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여행 중 동행이 필요하다고 느끼지도 못했다.
새벽 4시 반쯤 눈이 떠졌다.
더 자길 바랬는데 하루 만에 시차 적응이 될 리가 없다. 같이 방쓰는 사람들이 있으니 누워서 뒹굴뒹굴하다가 6시쯤 씻고 나왔다.
어제오늘 뉴욕 날씨는 맑고 덥다. 짐을 쌀 때 마지막에 빼어 두었던 나시 원피스와 나시 티를 하나씩 더 넣었는데 오자마자 입고 있다.
생수통에 민박집에서 정수한 수돗물을 담고, 카누 미니 한 봉지를 넣어 들고 나왔다.
날씨가 좋다.
메디슨 스퀘어 파크에 쉑쉑버거 본점이 있다.
햄버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결혼 후 15년간 한 번도 햄버거를 먹은 적이 없다. 결혼 전은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마 별로 없을 거다.) Shake Shack 버거는 본점에서 한 번 먹어보고 싶다. 일찍 문을 연다고 하니 아침으로 먹을까 싶어서 숙소에서 다운타운 방향으로 걸어갔다.
또 나왔다. 노란 신호등.
딱 내가 생각한 뉴욕이다. 뉴욕 사진 한 장을 고르라면 이 사진을 고를 생각이다. 브루클린 브리지, 브라이언트 파크 사진 등 아까운 사진이 많긴 하겠지만.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사진기의 그 작은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고 싶지 않다. 여행 중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특히 어떤 장면을 보는 시간은 참 짧은데 그 시간을 오롯이 내 눈으로 넓게 보고 싶다.
그리고 난 짐이 많은 게 질색이라 카메라는 너무 무겁다. 언제나 사용하던 아이폰이 사진기를 대신한다. 여분의 배터리도 무거워서 안 가져 다니기 때문에 배터리 잔량도 신경 써야 하니 어두운 화면으로 대충 찍는다. 사진 자체도 많이 안 찍어서 여기에 올릴 사진도 적다.
쉑쉑버거 가게가 문을 열기는 했는데 사람이 너무 없다. 아직 테이블 세팅도 덜 되었다. 일단 계속 걸어 내려간다.
저 멀리 플랫아이언이 보인다.
교차로 갈림길에 삼각형 모양으로 세운 건물이다.
참으로 알뜰하게 공간을 활용했다.
아래 사진은 플랫 아이언 반대 방향이다. 길을 걸을 때 반대 방향을 보면 전혀 다른 느낌의 길이 보인다. 평소에도 걷다가 반대 방향을 종종 돌아보는 편이다. 가끔은 일부러 같은 길을 역으로 거슬러 걸어가기도 한다. 반대 방향은 구름이 적어 파란 하늘이다.
걸어서 15분쯤 떨어진 곳에 머레이 베이글이 있다. 거기서 아침을 먹어야겠다. 뉴욕에 와서 제일 먹어 보고 싶은 게 베이글이었다. 원래 베이글을 좋아하는데 뉴욕 음식의 상징 같은 베이글은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연어가 들어간 베이글이 유명하다. 그런데 평소 참치는 좋아해도 참치 샌드위치는 좋아하지 않아서(생선과 빵은 개인적으로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역시 연어는 좋아해도 연어 베이글은 별로일 것 같아 기본 베이글에 크림치즈만 발라서 먹어볼 생각이다.
빈티지 느낌 가득. 왼쪽 옥상에 삿갓을 쓴 물탱크같이 생긴 건 뭘까, 이 사진에서는 삿갓이 잘 안 보인다. 정말 물탱크일까.
500 6th Ave, New York, NY 10011
줄을 서는 가게라고 했는데 사람이 별로 없다.
에브리띵 베이글에 베지터블 크림치즈, 베이글은 토스트 했다. 맛있다.
그런데 먹을수록 딱딱해진다. 반쪽 먹고, 남은 반쪽을 들고 다니다가 저녁 무렵에 먹었는데 딱딱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다음부터는 토스트를 안 하는 게 좋겠다.
이제 화방 몇 곳을 돌아본다. 어떤 새로운 미술도구가 있는지 보는데 요즘은 한국에서 거의 대부분을 구할 수 있는 것 같다. 별로 새로운 게 없다.
Grace church
가는 길에 본 미국 성공회 교회. 높은 빌딩과 오래된 건물들 사이에 유럽에서 보던 교회가 나타나니 어색하다.
하루에 먹을 수 있는 카페인의 양에 제한이 있다. 너무 많은 카페인을 섭취하면 머리가 띵하다. 라떼든, 아메리카노든, 제대로 된 커피 한 잔에 카누 미니 한 봉지 정도가 하루 정량이다. 아침에 생수통에 카누 한 봉지를 타서 나왔으니 이제 제대로 된 커피 한 잔을 마실 차례다.
오늘의 커피는 Housing Works Bookstore Cafe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신맛이 강하다.
이곳은 중고서점이다. 영어를 잘 못한다. 혼자 여행하면서 생존할 정도일 뿐 친구를 사귈 정도는 아니다. 그러니 영어책은 그냥 검은건 글씨요, 흰건 종이다. 그래도 서점에 온 이유는 드로잉 관련 책들을 보고 싶어서다.
우리나라에서 어른들 취미 미술 관련 사업은 최근 몇 년 동안 급속하게 시장이 커지고, 배울 곳이 늘고 있지만 얼마 전만 해도 어른이 다닐만한 학원들이 적었고, 책의 종류도 적었다. 외국은 유명한 어반 스케쳐들이 많고, 어반 스케치 세미나나 모임도 많아서 책도 많을 것 같았다. 그런데 Strand Bookstore, Barnes & Noble, 미술관의 기념품 코너 등에서 드로잉 관련 책을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별로 없다.
커피를 마시면서 옆 테이블의 아저씨와 아가씨를 그리는 중이었는데 아가씨는 그리기도 전에 대화를 끝내고 가버렸다. 뭐 구도를 잘못 잡아서 아가씨 그릴 자리가 부족하기도 하다. ^^
둘 다 가버린 후 채색.
서점과 화방 몇 곳을 돌았더니 배가 고프다. 아침에 못 갔던 쉑쉑버거를 먹으러 간다.
야외에 있는 곳이라서 바람이 참 좋다.
쉑버거는 생각보다 작다.
고기는 숯불 향이 훅 끼치는 게 냄새가 좋다. 그런데 짜다. 고기 패티에 간을 한 느낌이 아니라 고기 패티 위에 굵은소금을 뿌린 것 같다. 엄청 짠 곳이 있고, 덜 짠 곳이 있다. 엄청과 덜의 차이일 뿐 짜다. 그래도 덥고, 땀도 흘렸으니 염분 보충하는 셈 치고, 맛있게 먹었다. 결혼 15년 만에 처음 먹는 햄버거다. 앞으로 15년은 안 먹어도 될 것 같다.
나무 그늘에서 먹으니 참 좋다. 하늘은 파랗고, 나무는 크고, 바람은 솔솔 불고, 나무 사이로 높은 빌딩이 보인다.
메디슨스퀘어 파크의 쉑쉑버거에서
이제 지하철을 타봐야겠다. 뉴욕은 메트로 7일권을 파는데 7일 동안 지하철 무제한 이용이 가능하고, 버스 중에서 M으로 시작하는 버스도 탈 수 있다. 오늘부터 일주일씩 두 번 사면 여행 기간에 딱 맞다. 카드 결제가 안돼서 현금으로 샀다.
뉴욕 지하철역은 입구부터 다운타운, 업타운을 구별해서 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모든 경우가 그렇진 않다. 구글 지도로 길 찾기 검색 후하라는 대로 하면 지하철 이용은 어렵지 않다.
뉴욕 공립 도서관으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브라이언트 파크 안에 도서관이 있다.
내 기억 속 뉴욕 공립 도서관은 스탠드가 녹색 빈티지 등이었는데 와서 보니 동으로 만든 상당히 큰 스탠드다. 내 기억이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기대했던 분위기와 달라 아쉽다. 하지만 기대와 달랐을 뿐 높은 천장과 자연 채광은 참 좋다. 오늘은 책을 가지고 나오지 않아서 그냥 그림을 그렸다. 다음엔 책을 가지고 와야겠다. 뉴욕에 살았다면 자주 왔을 텐데...
타미스 사무실에 가는 중이다. 빅애플 패스라는 몇 군데 입장권을 모아 약간의 할인을 해서 파는 걸 사러 간다.
타임스퀘어 근처에 타미스 사무실이 있다. 빅애플 5를 골랐다. 더 라이드 버스(퍼포먼스를 곁들인 버스 투어), 탑 오브 더 락 전망대, 모마(뉴욕현대미술관), 휘트니 뮤지엄, 구겐하임 뮤지엄, 이렇게 5개를 골랐다.
탑 오브 더 락 전망대 할인권으로는 성수기 선셋 타임에 입장이 안된다. 대략 3시부터 9시 사이엔 입장이 안된다는 것 같다. 해 질 녘에 노을부터 야경까지 보고 싶은 사람은 패스에 포함된 할인권이 아니라 제대로 된 티켓을 사면된다.
빅애플 패스에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포함시킨다면 하루밖에 입장이 안된다. 할인된 티켓이기 때문이다. 내 경우엔 뮤지엄에 가는 게 뉴욕 여행의 목적 중 하나였기 때문에 메트로폴리탄은 정상 티켓을 구입했다. 정상 티켓은 3일간 입장이 가능하다.(실제로 3일 모두 입장해서 구경할 만큼 전시 작품들이 대단했다.)
더 라이드 버스와 탑 오브 더 락은 구입하고 예약을 따로 진행해야 한다.
타미스에서 패스를 사고 그랜드센트럴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이 이렇게 멋있다니.
상당히 어둡다. 천장의 별자리가 예쁘다.
터미널도 역시 크다.
터미널 근처, 그리고 숙소 근처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하루를 마감한다.
숙소 근처 Toast라는 한국인이 하는 작은 마트에서 맥주 두 병을 사서 들어간다.
숙소 사진이 없는 줄 알았는데 한 장 있다.
커튼 아래가 내 침대, 파란색 캐리어. 오늘부터 3일간 2명이서 사용한다.
오늘의 지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