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경희씨, 시간
오냐고 확인하는 전화가 왔다.
소리에는 감정이 있다.
오는지 확인하는 전화기 너머 남자의 다급하고, 간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도착 전부터 마음이 가라앉는다.
비가 온다. 모두 비를 맞고 서 있다. 나도 그대로 비를 맞았다.
좀 거세진다.
우산을 꺼내 쓰는 게 괜시리 미안하다.
비가 약해져 바로 우산을 접었다. 그냥 함께 비를 맞았다.
어제 관련 기사를 두 번 읽었고, 아침에 또 한 번 읽었다.
틀리고 싶지 않았다. 그들을 온전히 이해한 기사를 써야 한다.
첫 기사를 쓰고 며칠 지나서 기자에게 연락이 왔다.
취재 요청이 들어왔는데 갈 사람이 없단다.
우리가 안가면 아무도 갈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한다.
갈 사람이 없다면 거긴 내가 갈 곳이다.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바로 간다고 했다.
엄동설한에 120명을 한 번에 해고한다니. 안 그래도 현장에 가보고 싶었다.
회사는 멈췄고, 주차장 구석에 천막이 있다. 여성도 보인다.
나를 보고 바로 기자라는 걸 알아본다.
단톡방에 진행 중인 지역 국회의원 기자회견장에 노트북을 켜 놓고 빈자리 없이 앉아있는 사진이 올라온다.
여기는 기자가 없다.
뒤늦게 MBC 카메라가 등장했다. 대통령이라도 온 듯 모두 비켜선다.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피해 다닌다.
현수막 끝자리에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두 발을 벌리고, 피켓을 들고, 비를 맞고서 기자회견 내내 흐트러짐 없이 서 있다.
바닥에 접착제라도 발라 놓은 듯하다.
노동자 아버지의 연약함, 비장함, 간절함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온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간단하게 인터뷰를 했다.
정제되지 않은 노동자의 목소리를 기사에 넣고 싶었다.
광장에도 비가 온다.
비옷을 챙겨가면 늦는다.
우산이 있으니 그냥 가본다.
경희씨가 나와 있다.
주말에 보내준 내 글이 마음에 들었는지 반갑게 말을 꺼낸다.
기자에게 전화가 온다.
잘 다녀왔는지 묻지만, 사실은 기사를 언제 쓸 수 있는지 확인하는 전화다.
소리에 감정이 있다. 급하다는 거다.
경희씨 집회는 마쳐야 한다.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내 배고픔은 중요하지 않다.
받아온 기자회견문을 요약하고, 녹음파일을 텍스트로 바꾼다.
발언자의 말속에 중복되는 것을 빼고, 차별되는 부분을 발췌한다.
기자의 카톡이 온다. 노동자들이 기다린다고 한다.
카톡에도 감정이 있다. 나도 덩달아 급해진다.
손만 빨라지는 게 아니라 호흡도 빨라진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더 바짝 차려야 하는데 자꾸 몽롱해지는 기분이 든다.
사진을 서른 장 찍었다.
건질 게 없다. 몇 개만 기사에 넣고 나머지는 원본을 보냈다.
약속한 마감 시간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