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최근 대런 애쓰모글루의 『좁은 회랑』을 읽으며 다시금 정치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이 책이 말하는 ‘자유가 유지되는 좁은 회랑’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국가의 힘과 사회의 힘이 적절히 균형을 이룰 때 자유는 유지될 수 있다는 것. 문제는 이 힘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느냐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과연 그 균형을 만들어가는 일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은 내가 몸담고 있는 여러 정치적 활동들—정치학교 반전, 정치발전소, 스페이스 작당, 뉴웨이즈—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 모임들에서 나는 단지 지식이나 네트워크만 얻는 게 아니다. 정치가 말과 실천 사이에서 어떤 자세를 요구하는지, 혐오와 냉소를 넘어서기 위해 어떤 감정적 연대가 필요한지를 체감하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들어가는 마음, 체력, 시간, 돈이 커지면서 묻게 된다. 이 모든 투자에 대한 결과는 무엇일까? 출마를 하지 않으면 그냥 ‘정치에 관심 많은 사람’ 정도로 남을 텐데, 그렇다고 출마를 결심할 만큼 확신이 서는 것도 아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
박상훈 박사가 한국 정치의 근본 문제를 ‘말’의 부재에서 찾는다고 할 때, 나는 내 안의 ‘말의 부재’를 먼저 본다. 내가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하면 결국 주변에도 피해가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묵한다. 그래서 결정을 미룬다.
성당에서 주일 오전 봉사를 하며, 나는 조용한 책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와 샘이 보여준 헌신처럼, 누군가는 조용히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구별된 정치가 아닐까.
하지만 동시에 묻게 된다. 조용한 헌신만으로 충분할까? 더 큰 변화를 만들어가는 일에는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결국 내가 원하는 건 단순하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네트워크든 깨달음이든 성장이든, 그런 추상적인 것들이 아니라 스스로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고 확신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들. 그런데 그 길이 명확하지 않다.
계속되는 질문들
미국과 중국이 펼치는 정치 외교의 힘 싸움을 보면서도, 트럼프의 관세 협상을 지켜보면서도 묻게 된다. 그런 ‘강한’ 정치가 우리 삶을 더 낫게 만드는가? 아니면 삶에서 더 멀어지게 하는가?
나는 이 질문을, 내가 참여하는 작은 공동체들 안에서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그리고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확실한 건, 정치가 내 삶과 내 주변의 삶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그 출발점은 나의 말과 행동, 그리고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망설임도 결국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 나온다. 그 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마음이 단지 개인적 완결성에 머물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찾고 있는 정치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