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한 변화의 힘: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민당의 과제』

by 김호진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의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민당의 과제>는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 가장 논쟁적인 질문을 던진 책이었다. 그는 혁명이 아닌 점진적 개혁을 통해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기존의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 책을 보면서, 한 세기 전의 논쟁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마르크스 비판에서 시작된 문제의식


베른슈타인은 세 가지 핵심 지점에서 마르크스를 비판한다. 첫째,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자 계급의 빈곤화’는 현실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자의 생활 조건은 점차 개선되고 있었다. 둘째, 자본이 소수에게만 집중된다는 예측도 빗나갔다. 중산층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다. 셋째, 자본주의의 필연적 붕괴는 오지 않았다. 주식회사, 신용제도, 법제도 개선은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조정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지적을 읽으며 질문하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믿고 있는 이론이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 이론을 수정해야 하는가? 아니면 현실을 강제로 이론에 끼워 맞춰야 하는가? 베른슈타인은 전자를 선택했다.


혁명 대신 진화: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주의


베른슈타인이 제시한 대안은 단순하다. “혁명이 아니라 개혁.” 그는 의회민주주의와 선거, 노동조합, 협동조합을 통해 점진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유명한 말, “최종 목표는 아무것도 아니다, 운동이 모든 것이다”는 여전히 강렬하다. 목표보다 과정, 이상보다 현실의 개선에 집중하자는 주장이다.


이 대목에서 잠시 멈췄다. 정치에서 이상과 현실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현실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상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이 진정한 진보일까? 베른슈타인은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그 길이 생각보다 길고, 복잡하며, 타협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비판과 현실, 그리고 고민


물론 그의 주장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그가 사회주의의 본질을 훼손한다고 공격했다.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불평등을 낳는 구조라면, 개혁은 언젠가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비판을 읽으며 오늘날의 상황을 떠올렸다. 복지국가의 위기, 양극화, 플랫폼 자본주의… 베른슈타인의 개혁론이 여전히 유효한가?


그 답이 부분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북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은 그의 비전을 어느 정도 실현한 사례다. 하지만 21세기에는 글로벌 자본과 디지털 플랫폼이 국가의 규제 능력을 넘어서는 문제를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베른슈타인의 길을 더 확장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혁명적 전략이 필요한가?


오늘의 정치에 주는 시사점


이 책을 덮고 난 후, 베른슈타인의 태도가 인상 깊었다. 그는 이론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눈앞의 현실을 직시했다. 그리고 불확실성을 감수하며 타협과 협력을 강조했다. 민주주의란 결국 이런 끈질긴 협상의 과정 아닐까?


한국 정치의 미래를 고민하는 오늘날 베른슈타인의 말은 울림을 준다. “운동이 모든 것이다.” 정치의 목표는 단순히 권력을 잡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지속적인 움직임이어야 한다. 혁명이든 개혁이든,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삶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구체적 실천이라는 점에서 그와 깊이 공감한다.


한 줄로 정리하면?


베른슈타인은 혁명 대신 개혁을, 이상 대신 현실의 개선을 강조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질문은 여전히 오늘날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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