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사회의 경계에서
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늘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뜻일까?”
교회는 “예수를 통해 하나 된다”라고 가르치지만, 막상 세상에서는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신앙보다 더 중요한 기준처럼 작동한다. 주일학교의 아이들에게 신앙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학원이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졸업 후에는 유학을 가거나 자격증을 따거나 대기업에 들어가야 한다. 신앙이 깊은 사람은 세상에서도 성공해야 한다는 믿음이 너무 자연스럽다.
그래서 그런 길을 걷지 못하는 사람은 신앙이 약하거나, ‘예수를 제대로 믿지 못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몸과 마음이 불안한 사람,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은 공동체 안에서도 점점 거리를 두게 된다. 혹시 피해를 줄지 모른다는 이유로.
하지만 오늘날 교회에는 이런 취약한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양극화의 심화는 사회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교회의 문제다. 그들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거나, 몇몇 헌신적인 신자의 희생에만 기대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제는 공동체 전체가 함께 감당할 구조와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기독교는 2,000년 동안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신앙과 사회를 잇는 자원을 발전시켜 왔다. 한국 교회도 벌써 2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녔다. 그러나 여전히 장로교 중심의 개교회 구조가 강해, 보편적이고 체계적인 신학적·사회적 논의가 부족하다.
신앙은 결국 세상과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사람을 품는가—그 모든 것이 신앙의 자리다. 교회는 이제 ‘믿음의 깊이’뿐 아니라, 사회적 연약함을 함께 짊어질 지혜를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