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기에서 나아가기로

잠시 멈춰 선 자리에서 다시 길을 그리다

by 김호진

요즘 나는 일을 하면서도 자꾸 다른 곳을 바라본다.

여전히 매일 아침 컴퓨터를 켜고, 시스템 점검을 하고, 익숙한 코드의 흐름을 따라가지만—그 어느 때보다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이 길이 진짜 내가 원하는 방향일까?


사실 이런 질문은 피곤할 때만 찾아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게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일 때’ 더 크게 다가온다. 하루하루 무난히 지나가지만, 그 안에 성취나 의미가 선명하지 않을 때, 조용한 불안이 고개를 든다.


나는 꽤 오랫동안 “조용히 버티는 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성당 공동체와 시간을 보내며 마음의 균형을 잡았다. 문제는, 이 균형이 점점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균형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보다, 지금의 삶이 ‘휘지 않도록’ 관리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몇 달, 아주 단순한 깨달음을 얻었다.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익숙해질수록,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감각은 무뎌진다.


그래서 나는 작은 변화부터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정치를 공부하고, 책모임에 나가고, 글로 생각을 정리하고, 내가 어떤 문제에 분노하는지, 어떤 가치에 힘이 나는지 하나씩 짚어보기로 했다.

때로는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밀려오기도 하지만, 예전보다 확실한 점이 하나 있다.

의미는 멀리 있지 않다. 내가 조금만 용기를 내면 바로 시작되는 지점에 있다.


요즘 나는 다시 기록을 시작한다.

내가 왜 고민하는지,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앞으로 어떤 삶을 만들고 싶은지.

정답을 찾아야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원하는 삶의 모양이 조금씩 드러난다고 믿는다.


오늘 이 글도 그런 탐색의 일부다.

틈을 내어 나를 돌아보고, 다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한 작은 신호.

그리고 이렇게 적어두면, 내일의 내가 조금은 더 앞으로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아직 확실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요즘의 나는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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