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볼 수 있다는 건

메리 크리스마스

by 김호진

요즘 넷플릭스를 보고 있다.

이 말이 나에게는 조금 낯설다.


사실 나는 드라마나 시리즈를 거의 보지 않았다.

의식적인 선택에 가까웠다.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보통 두 시간이다.

끝이 보인다.

애니메이션이나 시트콤은 더 짧다.

20분, 30분이면 하나의 세계를 다녀올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다르다.

이야기 하나를 보겠다고 마음을 열면,

며칠 혹은 몇 주를 내줘야 한다.

인물들의 감정선에 계속 다시 접속해야 하고,

지난 화를 기억해야 하며,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건 나에게 늘 버거운 일이었다.

긴 이야기에 시간을 쓰기엔

집중력도, 여유도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더 빠른 것들을 선택해 왔다.

즉각적인 자극,

짧고 확실한 만족,

끝을 예측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든다.

보고 싶은 걸 찾느라

이리저리 떠돌며 흘려보낸 시간들 속에서,

차라리 한 편의 이야기를 진득하게 따라갔다면 어땠을까.


서사가 사람을 바꾸는 건 아니지만,

사람의 결을 조금은 넓혀주지 않나.

다른 인물의 선택을 끝까지 지켜보는 동안,

내 선택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순간들이 분명 있었을 텐데.


요즘 내가 드라마를 보는 건

긴 이야기를 감당해 볼 수 있을 만큼,

내가 조금은 느려졌고

조금은 버틸 수 있게 되었다는 신호 같기도 하다.


긴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삶을 대하는 속도가

조금 달라졌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직 추천으로 뜨는 작품의 첫 화만 이것저것 보는 중이다^^ 한편으로 그만큼 책에 집중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도 같고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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