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를 떠올리게 한 부고

그리고 중력에 저항하는 노래

by 김호진

내일 이코노미스트 읽기 모임에서 다룰 글을 미리 익히기 위해 오디오를 틀었다.

프랑스 배우의 부고였다.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짐작했다.

육감적인 이미지로 소비되던 배우, 말년에는 동물권을 위해 활동했던 인물.

그 정도의 서사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식사 준비를 하며 오디오를 띄엄띄엄 듣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그녀는 단순히 ‘매력적인 배우’가 아니었다.

한 시대의 섹스 심벌이었고, 그만큼 강하게 대상화된 존재였으며, 동시에 끊임없이 논쟁의 중심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궁금해져서 사진과 영상, 기사들을 더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들은 더 복잡했다.

한국의 식용견 문화를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정치적으로는 극우 성향에 가까운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동물권 활동가이면서, 많은 이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정치적 언어를 사용한 인물.


그때 문득, 키르케가 떠올랐다.


내가 키르케를 단순한 마녀로 보지 않게 된 것은 매들린 밀러의 『키르케』 덕분이다.


밀러의 키르케는 『오디세이아』 속 조연이 아니다.

그녀는 신과 인간, 남성과 여성, 권력과 추방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 언어와 세계를 만들어가는 존재다.

매혹적이지만 불편하고, 강인하지만 단순히 영웅적이지 않다.

누군가의 여정에 봉사하지 않으며, 자신의 섬과 시간을 살아간다.


부고 속 배우도 그렇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름다움으로 소비되었고, 발언으로 비난받았으며,

어느 한 단어로는 정리되지 않는 사람.


아침에는 스포티파이에서 뮤지컬 플레이리스트를 찾다가,

우연히 상단에 떠 있는 〈위키드〉의 Defying Gravity를 눌러 들었다.

그리고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눈물이 흘렀다.


Defying Gravity는 단순히 하늘을 나는 노래가 아니다.

정해진 역할, 기대된 위치, 익숙한 질서에서 벗어나겠다는 선언이다.

키르케의 선택도, 부고 속 배우의 삶도, 각자의 방식으로 중력을 거슬렀던 시도였을 것이다.

그 선택이 언제나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단순하지는 않았다.


아마 그 노래 앞에서 내가 울었던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 속 인물들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마주한 지금의 나 자신의 질문 때문에.


나는 지금 어떤 중력에 붙잡혀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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