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없어요

소제목도 없어요

by 김호진

글을 써야 내 생각을 할 수 있다. 내 생각을 해야 먹고살 수 있다.


동영상을 본다. 나 대신 춤을 추고, 나 대신 노래하고, 나 대신 공부하고, 나 대신 가르치고, 나 대신 책을 읽고, 나 대신 요리하고, 나 대신 밥을 먹는

글을 본다. 나 대신 생각을 하는


글을 그냥 쓰는 사람이 부럽다. 없는 시간을 쪼개 자기 글을 쓰는 사람이 멋있다. 60살이 되어 지금을 돌아보면 어떨까? 좋은 회사를 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내 일을 스스로 정의하고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아쉬움 없이? 후회 없이?

글쓰기가 어려운 것은 자신이 없기 때문이고 자신이 없는 것은 좋은 것을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글쓰기, 말하기가 두려운 이유는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드러내게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가득한 분노와 불만 때문.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글을 쓰면 변명만 늘어놓게 된다. 변명도 말의 앞뒤는 맞아야 하기 때문에 몹시 피곤하다. 항상 앞뒤가 촘촘한 변명을 쓰기는 어려우니까 어느 순간부터 같은 말을 넋두리처럼 반복한다.

무의식을 글로 쓰기도 어렵다. 내 안에 검열관을 죽이기 힘들다.


브런치 알람이 글쓰기를 꾸준히 하라고 독려한다. 글쓰기에 집중하기 위해 노트북을 비행기 모드로 변경했다. 방문도 닫았다. 핸드폰도 꺼야 할까? 창문은 활짝 열어 두었다. 이웃집 대화 소리가 들려오지만, 바깥공기를 포기할 수 없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그동안 브런치에 발행한 글을 핸드폰으로 다시 봤다. 오글거리고 불평불만도 많다. 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내용이 눈에 걸린다. 그래도 제법 기특한 생각을 여럿 했다.

나 자신을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생각했는데 뒤집어 보면 그것이 경쟁력이 될 수도 있다. 한 자리를 우직하게 지키는 것도 멋있고 다양한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도 멋있다.


공짜로 운동을 배우고 싶다. 돈 들이지 않고 스포츠를 배우고 싶다. 자세가 안 되어있달까? 무료로 의료 서비스를 받고 싶다. 나의 골반, 무릎, 발목의 상태가 달리기를 해도 되는지 확인받고 싶다. 알고리즘, 데이터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지식을 그냥 흡수하고 싶다.


추석이다. 추석 연휴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시기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함께 고생한 사람들과 서로 수확을 나누고 기쁨을 나누는 절기다.


가을이다. 애기똥 아니 은행 냄새가 코를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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